수학과 가까워지기
지난 글에 이어서 눈길을 끈 피타고라스에 관한 이야기는 두 번째입니다.
피타고라스 정리가 가져온 부산물인 '무리수의 발견'이 자신들을 곤경에 빠뜨리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르면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는 √2 이다. √2 는 어떤 성격의 수일까? 피타고라스 학파가 주장한 '만물은 모두 수라는 표현에서 '수'란 정수 또는 정수로 표시할 수 있는 비율의 수, 즉 유리수(rational number)를 가리킨다.
피타고라스 정리가 교육과정에서 언제 배우는 것인지 찾다가 EBS 영상을 보았습니다. 구고현 정리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보다 500년은 앞서 쓰인 것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들 역시 그리스처럼 까닭을 묻고 정의하는 일의 중요성은 몰랐던 듯합니다.
후발주자인 그리스인은 이들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어떤 사물이든 그것의 근원을 파헤치고 증거를 찾으려고 했다. 이런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에 힘입어 그리스인은 수학 증명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룩했고 세계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제가 사로잡힌 내용은 피타고라스 정리 자체가 아니라 피타고라스 추종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피타고라스의 제자 히파수스(Hippausus)가 이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피타고라스 추종자는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 그를 바다에 빠뜨려 살해했다고 한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무리수'에 이런 비극적 일화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리수'는 '이치에 안 맞는 수'가 아니라 '비교할 수 없는 수(irrational number)이다.
<개념의 구성 요소: 원칙, 생각, 믿음>에서 손때[1]를 묻힌 대가로 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럴 만한 일로 여겨지니 이야기가 전해질 테니까요.
두 번째는 유클리드에 대한 부분인데, 먼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제국을 건설할 이후 만든 '무세이온'이 오늘날 박문관의 원형이 되는 동시에 유클리드의 기록을 낳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날 '박물관을 뜻하는 영어 'museum'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알렉산드리아에 세운 '무세이온'은 연구 기관이자 도서관, 교육기관의 복합체로 소장 도서만도 50여 만 권에 달했다. 이로써 무세이온은 단숨에 고대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 도약했다. 저명한 수학자 유클리드는 무세이온에서 수학 연구와 교육을 담당했다.
그리고 유클리드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워낙 많은데 아인슈타인의 글을 먼저 옮겨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명확성과 확실성은 내게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략> "바로 이런 논리 체계의 기적과 추리의 위대한 승리가 우리의 성공에 꼭 필요한 자신감을 가져다준다"라고 말했다.
자신감이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가능성을 시험(?) 해 볼 문구도 등장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렸을 때 유클리드를 읽고 학구열이 솟구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타고난 과학자가 아니다
역시 아인슈타인의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음 내용은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에 나오는 문구라고 합니다.
나는 열한 살 때 형에게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웠다. 이는 내 일생일대의 대사건이었다. 나는 마치 첫사랑을 하듯 여기에 빠져들었다. 그 당 시 나는 세상에 이토록 재미있는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유클리드에게서도 비과학적 믿음이 보이는 내용이 눈에 띕니다.
점, 선, 면, 체를 모든 존재의 근간으로 보았다. <중략> 유클리드는 모든 사물 간의 근본관계를 이러한 기본적인 기하학 요소 간의 관계로 보았다. 그는 신이 기하학 원리에 따라 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에 이 기본 요소의 기하학적 관계를 파악하 면 현실 세계에서 신에게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 천 년을 넘어 인류에 영향을 끼치는 원칙과 생각을 방법으로 만든 이상 과도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번 장을 읽으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충동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을 직접 읽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1]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3. 수와 숫자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