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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7. 2017

06년도 임용, 내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다

건빵의 임용고사 낙방기 1

어느덧 나도 오수생이 되었다. 장수생이라 할 수 있는데 나도 이렇게 긴 시간동안 공부를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고 솔직히 이런 느낌이 매우 생소하기까지 하다.                




어느덧 오수생이 되다 

    

처음 임용을 볼 때만 해도 동기 여학생들은 사수생이었다. 그땐 동기들을 보며 ‘무척 길게도 공부한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렇게 막연히만 생각했던 상황에 닥치게 된 것이니 놀랍다고 할 수밖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무신경한 만큼이나 시간은 흐르고 흘러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아 제발 돌아와줘’라고 외칠 건 아니다. 흘러버린 시간이 ‘임용합격’이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5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은 모두 소중했고 그 시간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걸 테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한다. 그런 만족에 덧붙여 꿈꾸던 임용합격까지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말일 뿐이다. 바로 이 순간, 다섯 번째 시험을 목전에 둔 순간이다.                



▲ 수도권으로 꼭 가고 싶었다. 그래서 첫 시험부터 경기도로 무작정 지원했던 것이다.




첫 시험에 스민 자신감언뜻 보이는 불안감

     

첫 시험을 볼 때만해도 크나큰 기대가 있었다. 이걸 『연금술사』에선 ‘초심자의 행운’이라 표현했다. 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왠지 모르게 내가 되리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끼워 맞춰 ‘모든 기운이 임용합격을 말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 특히 여자 친구와 헤어진 사건은 ‘합격을 위한 시련’ 쯤으로 합리화하기에 더 없이 좋았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근심과 걱정 속에 있을 때 살게 되며, 편안함과 즐거움 속에 있으면 죽게 된다(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告子」 下 15)’는 구절처럼 시련과 아픔이 나를 대성하게 만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첫 임용이지만 자신만만했고, 교사가 되더라도 수도권 근방에서 되고 싶었다. 그땐 고미숙씨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으며 ‘수유+너머’와 접속하여 ‘임용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삶을 바꾸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기롭게 경기도에 출사표를 던졌던 것이다. 

경일이 형 차를 빌려 타며 수원까지 올라왔고 버스를 타고 군대 친구가 살고 있는 시흥으로 갔다. 그 당시 경일이 형 차를 타기 전에 5층 로비에서 찍은 사진엔 자신감에 가득 찬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땐 일기장에 아래와 같이 썼었다.           



솔직히 조금 긴장만 될 뿐이다. 아니 오히려 멀리 놀러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이 가득하니 좋은 생각들로 가득 채워보련다. (2006.12.03)   


       

확신 같은 것으로 치장하긴 했지만 언뜻 불안감도 스친다. 아무래도 첫 시험이니 겉으론 태연한 척할지라도 속은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리라. 

정답 없는 문제를 풀러 떠났고 그곳에서 난 다른 세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만났다. 시흥에서 연거푸 들었던 노래는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면 돼!’라는 가사가 나오는 마야의 「나를 외치다」란 노래였다.                



▲ 경일이 형 차를 타러 가기 전에 5층 로비에서 찍은 사진.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다 

    

시흥에 사는 민호는 군 시절 내 후임으로 들어와 나에게 엄청난 갈굼을 당했었다. 군이란 시스템이 멀쩡한 사람도 이상한 사람으로, 잘 하려는 의욕적인 사람도 어설픈 사람으로 만든다. 나도 그 피해자고 민호의 그 피해자지만, 더욱 웃긴 점은 내가 민호보다 선임이단 이유로 짓누르고 바보로 만들었단 사실이다. 제대한 이후로 그랬던 과거들이 무척이나 후회가 됐지만, 그래서 민호도 내가 미울 법도 한 데도 자기 집에 기꺼이 초대해주고 하룻밤 잘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무척이나 고맙고 미안했던 순간이었다. 



▲ 민호를 만나기 전에 시흥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밤엔 자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냈고 아침이 밝자 차려준 밥을 먹고 수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흥에서 수원까지 가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리더라. 그래서 그때도 마야의 노래를 들으며 울컥울컥 무언가 올라오려는 마음을 달랬다. 

스쳐지나가는 광경들, 그리고 미지를 향해 내딛는 설렘이 하나로 뒤엉켜 마치 고등학생 때 수능을 보러 가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전주 농고에서 수능을 봤는데 그곳에 가기 위해서도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버스는 남부시장과 시내, 그리고 모래내를 지나 농고에 도착하는데 하필 남부시장을 지날 때 만감이 교차했으니 말이다. 남부시장은 늘 다녔던 너무나 익숙한 시장인데, 버스를 타고 지날 때 본 남부시장은 마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영 못 볼 법한 스산한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그런 느낌 때문인지 버스는 제 속도로 달리고 있음에도 남부시장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지나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수원으로 향하던 버스에 본 바깥 풍경이나 고3때 본 남부시장의 풍경이나 살아있기에 ‘뭔가 남다르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기에 감정이 얽히고, 익숙한 광경조차 낯설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때 일기엔 아래와 같이 썼다.           



맘도 기쁨으로 충만해져 있었고 마야의 노래 가락을 통해 ‘힘을 내야지’란 의지를 다지니까 정말로 못할 일이 없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중간 생략)

내가 좋아 선택한 것이고 돌아옴 없이 이 길만을 줄곧 달려 왔다. 후회를 한 적도 없었고 되돌아가자고 생각한 적도 없을 정도로 나에겐 기쁨을 주는 이 길이었다. ‘그래, 난 나의 길을 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길만을 갈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2006.12.03.)    


      

그런 충만한 기분으로 수원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버스 정류장엔 인파들이 넘쳐난다. 가장 많은 교사를 뽑는 경기도답게 수험생이 택시를 잡기 위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이 매우 좋았던지, 바로 내 앞에서 보란 듯이 택시가 섰고 난 지금 막 도착한 사람임에도 택시에 무작정 탔다. 다행히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더라. 정말로 ‘초심자의 행운’이 있긴 있나 보다.                



▲ 너무도 익숙한 이 광경이 수능을 보러 갈 땐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출처 - 다음지도)




첫 시험이라 떨렸을까너무 큰 기대가 있던 시험이라 떨렸을까

     

시험장에 도착했다. 첫 시험이기에 낯선 광경들과 낯선 사람들. 설렘보단 떨림이, 기대보단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나만의 축제의 장소에 도착했고 날 위해 준비되어 있던 그 자리에 앉았다. (2006.12.03)    


     

그래서 일기엔 위와 같은 말이 쓰여 있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다잡아지는 건 아니지만, 말로는 할 수 없는 희망이 어리긴 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받았던 문자들을 생각하며 파이팅을 다졌다.           



내 자리에 앉아 있으니, 자신감이 물밀 듯 솟아오른다. 바로 이 자신감이 중요한 것이다. 헤어짐을 통해 얻어낸 값진 선물이며 이 자신감을 통해 흔들림 없이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걸 입증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헛된 자만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조급해지지 않고 마음이 안정되는 순간이었으니, 최상의 컨디션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상동)        


  

어찌나 불안했던지 자꾸만 마음을 가다듬는다. 속으론 ‘괜찮다, 괜찮다’를 외치지만, 겉으론 태연할 수가 없다. 내면의 힘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잡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외부에서 오는 힘을 의지하며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축제는 시작되었다. 07~09년까지 치열하게 책도 읽고 고민도 하며 ‘삶을 즐기는 법’에 대해 나름 생각하게 되며 ‘삶=축제’라 인식하게 된 줄만 알았는데, 첫 시험 때부터 시험을 축제라고 인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걸 보면서 ‘나의 인식틀은 어느 순간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렇듯 하나하나 갖춰져 간 게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첫 시험을 봤던 곳. 이곳에서도 전주대 한교과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초심자의 행운그렇게 떠나다

     

첫 시험치고 잘 풀었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꽤나 만족했던 듯싶다. 경기도 임용시험의 경우엔 다른 지역의 시험과는 달리 2차에서 보는 교육학 논술시험을 1차에서 미리 본다. 교과 시험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후에 교육학 논술시험까지 모두 본 후에 끝나는 것이다. 그만큼 타지역보다 시험 시간이 긴데도, 술술 잘 풀어갔다. 그래서인지 시험이 다 끝나고 나서도 ‘이번엔 정말 합격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 자신 있어라 했던 그 모든 것들이 허울 좋은 자만에 불과했군’이라고 자조하면 어떨까 하고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올 수 있었으니, 그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상동)          

위의 일기처럼 자신에 가득 차 있었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첫 시험이었지만 내가 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날만큼은 모든 게 내 맘보다도 더 특별하기만 했다. 기대에 들뜬 마음으로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잘 돌아왔다. 

그러나 첫 시험은 실패로 끝났다. 초심자의 행운도 딱 거기까지였다. 어찌 보면 첫 시험이기에, 아무런 경험도 없기에 기고만장했는지도 모른다. 실패 또한 경험의 한 단면이라 한다면, 무작정 슬퍼할 일도 무조건 낙담할 이유도 없다. 더욱이 경기도에서 시험을 보는 경험을 통해 민호도 다시 만나게 됐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도 키울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게 아닐까. 



▲ 시험이 막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싸이월드에 남긴 글.




목차     


1. 06년도 임용내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다

어느덧 오수생이 되다

첫 시험에 스민 자신감, 언뜻 보이는 불안감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다

첫 시험이라 떨렸을까, 너무 큰 기대가 있던 시험이라 떨렸을까

초심자의 행운, 그렇게 떠나다     


2. 07년도 임용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2007년은 변화의 때

시험으로 한바탕 노닐어 보자

광주에서의 인연, 그리고 악연

축제가 한 순간에 저주로     


3. 08년도 임용기분 좋은 떨어짐

암울하게 시작된 2008년

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빛이 찾아오다

2008년에 바뀐 임용제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는 마음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힘

과정에 만족할 수 있던 08년 임용     


4. 09년도 임용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한 해 동안 잘남과 못남을 동시에 느끼다

전북에서 시험을 보게 된 이유

시험의 위력에 휘둘려 꼬꾸라지다     


5. 10년도 임용마지막 시험에 임하는 자세

임용시험 3일 전, 마지막 시험을 코앞에 둔 심정

임용시험 2일 전 아침, 사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었지

임용시험 2일 전, ‘盡人事待天命’의 자세     


6. 10년도 임용오수생 마지막 임용시험을 보다

마지막 시험이라 외치다

파도와 같던 나의 마음을 붙잡다

온고을 중학교와의 인연

마지막 임용시험의 풍경     


7. 10년도 임용지금 행복할 수 있는가?

시험 끝나자 활기가 찾아오다

함께 모여 밥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10년 지기 친구와 맛난 점심을

고통인 삶, 그걸 맛들일 수 있을까?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다     


8. 때 지난 임용 낙방기를 쓰는 이유

사람은 밤하늘과 같다

실패했을지라도 그것만으로 좋은 경험이다

찬란한 과거를 현재의 자양분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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