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Aug 23. 2017

10년도 임용, 지금 행복할 수 있는가?

건빵의 임용고사 낙방기 7

작년엔 시험을 보고 절망을 맛봤다면, 이번엔 시험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 마지막 시험이기에 좀 더 느긋하게 이 순간을 즐기잔 생각으로 교실에서 맨 마지막에 나왔다.                




시험 끝나자 활기가 찾아오다

     

복도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경수 누나와 미연이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다들 오랜만에 만났기에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시험이 끝난 것이기에 한껏 들뜬 모습이 스민다. 

미연이의 남자친구는 미연이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더라. 처음 보지만 훈훈한 모습이 맘에 든다. 신기하게도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사귀고 있다던 남자친구다. 시험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함께 나가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올해가 마지막 시험이라 생각했기에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가기로 맘을 먹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미리 연락해서 바로 올라가겠다고 얘기를 해뒀다. 터미널로 가는 길엔 경수누나와 함께 했고 시청 근처 추어탕집에서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었다. 문뜩 2007년에 광주에서 임용 시험을 본 후 동기 한 명과, 후배 세 명과 함께 점심을 먹었었다. 당연히 임용시험이 끝난 후라 정답을 맞춰가며 밥을 먹는데, 체하는 줄 알았다. 정답을 얘기하는데 보기 좋게 모두 빗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자리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하면 올핸 맘이 한결 편하다. 단순히 시험을 잘 봤나, 못 봤나 하는 것보다, 마지막 시험을 마쳤다는 홀가분한 느낌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으로 시험이 끝난 날 먹는 점심이 꿀맛 같았던 거다.                



▲ 07년도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는데, 이번엔 엄청 맛있었다.




함께 모여 밥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서울로 향하는 길은 조금 밀리더라. 그래서 2시 40분 정도 걸리던 길이 3시간이 걸렸다. 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고 암사역으로 향한다. 세훈이네 집에 도착하니 7시 50분이 되더라. 들어가면서 아주 태연하게 “다다이마(세훈이는 일본어 전공이다)”라고 인사했다. 이미 이사할 때 와서 짐을 거들어준 적이 있기 때문인지, 우리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 있더라. 

세훈이는 커피숍 매니저인지라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아 오지 않았고 정훈이 형과 충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만난 적이 많으니, 세훈이가 없어도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얼마 지나지 않으니 세훈이가 왔고 저녁을 뭐 먹을까 했는데, 마트에서 고기를 사와 구워 먹자는 것이다. 그래도 나도 장보기 대열에 합류했다. 이런 기회에 서울을 밤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으니, 장도 보고 서울 구경도 하고 일석이조다. 이마트에서 고기와 상추를 사서 돌아왔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맘도 여유로워졌고 그저 모든 걸 하는 게 즐겁기만 하다. 우린 목살 한 근에, 삼겹살 두 근을 샀다. 장을 보며 토요일 오후의 한가로움을 만끽했고, ‘이런 게 사는 즐거움이야’라는 느낌이 뭉클뭉클 솟아올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세훈이가 하나하나 맛있게 구워줬고 난 심간 편하게 구워진 고기를 먹기에 바쁘다. 입에 착착 감겨오는 고소함이 시험의 중압감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어찌나 맛있던지 배 터지도록 많이 먹었다. 안다, 고기를 먹던 그 시간에 우린 누구 하나 ‘시험이 어땠냐?’, ‘미래는 어찌할 거냐?’라고 묻진 않았지만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게 우리들만의 우정을 표현하고 누리는 방식임을 말이다. 

고기를 다 먹고 나선 한강에 나가고 싶었다. 아무래도 서울은 낯선 곳이기에 여기저기 다니고 싶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들 엉덩이를 붙이고 가만히 있는 바람에 그런 기대는 무산되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컬트셉트’란 게임을 하다가 잠에 든 것이다. 그 순간이 되자 오늘 하루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더라. 매 순간이 고맙고 만족스러웠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만족하며 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서 관둔다 해도 후회 없는 도전을 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런데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배게도 높고 잠자리도 어색하니,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 세훈이가 고기를 굽고 난 사진을 찍는다. 뭐 이런 진상 손님이 다 있누.

              



10년 지기 친구와 맛난 점심을   

  

세훈이는 피곤했는지 계속 자고 난 일찍 일어나 미국판 ‘응원단’이란 게임을 했다. 가혜가 정성껏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동물농장이란 티비 프로그램을 같이 보며 한 바탕 웃고 놀다가 집을 나섰다. 

강남으로 간다. 일전에 서울에 올라오면 진규네 집에서 자려고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상황이 있어서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기에 이번엔 별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너무 폐를 끼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전화가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것이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있지만 이른 시간임에도 거리로 나섰다. 정훈이 형, 충원이와는 강남역에서 헤어지고 무작정 걸었다. 완전히 더운 날이다. 햇살이 어찌나 뜨거운지 땀이 삐질삐질 날 정도더라. 조금 걸으니 서초 초등학교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축구하는 사람들, 야구하는 아이들, 아이와 놀러 온 부모님들,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 참으로 한가해보였다. 삶이 별 게 있나? 여유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꿈꾸던 미래 속에 살아가는 것임을. 

한참 앉아 있다가 한 블록 더 걸어가니 그제야 진규에게 지금 가고 있다며 연락이 오더라. 진규와 만나는 것은 작년 도보여행을 마치고 동대문 쪽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어제 잠을 잘 못 잤기 때문인지 피곤이 밀려와 집에 일찍 들어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진규와는 점심만 먹고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교보문고에서 진규를 만났고 뭐를 먹을까 하다가 라면을 먹기로 했다. 사이트에서 보니까 너무도 맛있어 보였기에,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로 했다. 

라면이 비쌀 거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정말로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진규가 먹은 라면은 7.000원이었고, 내가 먹은 라면은 9.000원이나 했으나, 웬만한 음식점에서 먹는 가격 이상이라 할 수 있다. 맛에 값어치를 어떤 식으로 매겨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약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다. 맛도 밋밋했고(그만큼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 있는지도 모른다), 건더기도 생각만큼 푸짐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 번 정도 궁금하기에 먹어볼 만한 맛이지, 두 번 먹을 맛은 아니었다. 

라면을 다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커피는 테이크아웃을 하고 어느 건물 뒷 편 그늘에 느긋하게 앉아 마셨다. 사람도 별로 없지, 하늘은 높고도 파랗지, 마치 세상의 모든 게 내 것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 라멘을 처음을 먹어봤다. 한국 라면의 자극적인 맛이 아닌 밋밋한 맛이다.




고통인 삶그걸 맛들일 수 있을까? 

    

진규는 요즘 여자 친구와의 결혼 문제로,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처럼 취업 준비생에겐 취업이 큰 고비이니 다른 건 미처 생각할 이유도 여력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취업하고 난 후엔 꽃길만 걷게 되고, 아무런 걱정 없게 되는 건 아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새로운 고민과 걱정거리가 찾아오니 말이다. 그래서 붓타는 ‘사람의 삶이란 모두 다 고통 뿐(人生皆苦)’이란 말을 했던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나 진규가 하는 고민이나 큰 차이가 없는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고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주 5일간 술을 마시는 적도 있다고 하더라. 업무 상 마셔야만 하는 술도 있겠지만, 현실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기 위해 마시는 술도 있을 것이다. 진규의 힘겨움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맘이 아파왔다.

진규와는 2007년부터 기독교 논쟁을 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같은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친한 듯, 그렇지 않은 듯 어울려 다니다가 2007년의 기독교 논쟁으로 더 긴밀해진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진규의 진취적인 생각 덕에 2009년엔 도보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과 같이 좀 더 다른 삶에 대해 희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진규와는 꿈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구장창 나눴고, 한 때는 밤까지 새워가며 나누기도 했었다. 우린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고, 정말 행복해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엔 그런 열망들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덧 30살이 되어버린 지금, 우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우리가 꿈꾸던 것들은 현실 속에 고이 묻혀 버린 것일까?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셨지만 진규는 그렇게 헤어지기 싫었나 보다. 낮술 이야기도 나오더니, 반포대교 쪽으로 가보자고 하더라. 시민공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근처에 살고 있는 기웅이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전주에서 함께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나왔던 친구들이 어느새 사회인이 되면서 서울에 이렇게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다들 대단하다. 

얼마 지나지 않으니 기웅이가 왔고 기웅이네 집 근처 삼겹살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작년 도보여행을 마친 후에도 이렇게 모여 닭한마디를 먹었었는데, 올해 또 이렇게 모이게 되니 기분이 색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진규가 여자 친구에게 잘못된 길을 알려주어, 여자 친구가 화가 많이 났고 진규에게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며 성질을 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친구도 평화로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친구는 최선을 다하고자 택시를 타고 여자 친구가 헤매고 있는 장소로 갔고 거기서 잘 해결되어 다시 고기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때 기웅이 여자 친구도 합석하게 되어 드디어 제대로 인원이 갖춰졌다. 그래서 밥을 먹는데 분위기는 가볍기보다 무거웠다. 진규네 커플은 아까 일로 감정이 상한 상황이었고, 기웅이네 커플은 기웅이가 최근에 일을 그만두게 된 것 때문에 뼈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어중간하게 끼어 있는 나는 불청객이나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아야 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다 

    

어찌 어찌 저녁 만찬은 끝났다. 아무래도 사귄 지 꽤 지난 커플들과 저녁을 함께 먹다 보니, 이젠 마냥 좋기만 하고 가슴 떨리는 게 아닌 현실이 더 중요한 커플이 되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바꾸어 가고 있는 것이다. 

9시 버스를 탈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남부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9시 버스표는 모두 매진되었더라. 그래서 하는 수없이 고속터미널로 가서 9시 35분 차를 타고 전주에 왔다. 지금까지 5번 임용고사를 보면서 한 번도 시험이 끝난 후에 이토록 즐겁게 놀아본 적은 없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은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도보여행을 하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하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도 할 수 있었던 거다. 

삶이 흐른다. 알고 있다,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삶이 얼마나 풍족하고 알찬지 보여주는 증표라 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살고 싶었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시험은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다채로운 감정, 그래서 매순간이 소중하다는 깨우침을 줬다. 어느 순간이고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다고 한다.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다르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싱그럽고 특별한 것이다. 과연 내일은 어떤 하루가 시작될지 기대되고 설렌다. 



▲ 전주천의 모습.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가 없다. 그처럼 같은 날을 여러 번 보낼 수도 없다.




목차     


1. 06년도 임용내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다

어느덧 오수생이 되다

첫 시험에 스민 자신감, 언뜻 보이는 불안감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다

첫 시험이라 떨렸을까, 너무 큰 기대가 있던 시험이라 떨렸을까

초심자의 행운, 그렇게 떠나다     


2. 07년도 임용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2007년은 변화의 때

시험으로 한바탕 노닐어 보자

광주에서의 인연, 그리고 악연

축제가 한 순간에 저주로     


3. 08년도 임용기분 좋은 떨어짐

암울하게 시작된 2008년

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빛이 찾아오다

2008년에 바뀐 임용제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는 마음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힘

과정에 만족할 수 있던 08년 임용     


4. 09년도 임용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한 해 동안 잘남과 못남을 동시에 느끼다

전북에서 시험을 보게 된 이유

시험의 위력에 휘둘려 꼬꾸라지다     


5. 10년도 임용마지막 시험에 임하는 자세

임용시험 3일 전, 마지막 시험을 코앞에 둔 심정

임용시험 2일 전 아침, 사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었지

임용시험 2일 전, ‘盡人事待天命’의 자세     


6. 10년도 임용오수생 마지막 임용시험을 보다

마지막 시험이라 외치다

파도와 같던 나의 마음을 붙잡다

온고을 중학교와의 인연

마지막 임용시험의 풍경     


7. 10년도 임용지금 행복할 수 있는가?

시험 끝나자 활기가 찾아오다

함께 모여 밥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10년 지기 친구와 맛난 점심을

고통인 삶, 그걸 맛들일 수 있을까?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다     


8. 때 지난 임용 낙방기를 쓰는 이유

사람은 밤하늘과 같다

실패했을지라도 그것만으로 좋은 경험이다

찬란한 과거를 현재의 자양분으로 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