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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7. 2017

07년도 임용, 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건빵의 임용고사 낙방기 2

2007년은 전반적으로 모든 것에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섶나무를 베고 의기를 다졌던 부차처럼, 쓸개를 잘게 잘게 씹으며 의지를 불태우던 구천처럼, 천하를 주유해야 했던 공자처럼 깊게 침잠해야 했던 시기였다.   



             

▲ 학교도 졸업했고 이젠 완전한 사회인이 되었다. 곤지중학교에서 한자급수 강사를 하던 때.




2007년은 변화의 때  


   

생각의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재검토를 해야 했다. 그 결과 26년 간 별다른 고민 없이, 어떤 의문도 없이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기독교란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건 필연적으로 불변의 진리를 좇아 완전한 것만을 추구하던 생각을 버리고 변화무쌍한 세상을, 감정이 들쭉날쭉하는 사람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변화야말로 삶이 주는 선물임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헤어진 여자 친구는 언젠가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안 될까?”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일요일이면 하루 종일 교회에 있으니 그런 부분이 섭섭해서 그런 말을 할 법도 했다. 그런데 나는 불 같이 화를 내며 “종교를 버린다는 건 단순히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에겐 인식의 틀, 생활방식까지 모두 바꾸라는 말과 같아.”라고 말했었다. 그만큼 종교는 나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고, 내 모든 걸 좌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던 기독교가 2007년을 기점으로 아무 것도 아닌 ‘수많은 종교 중 하나’로 바뀔 수 있었다는 건, 한강물이 전주천으로 흘러들어오는 것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만큼 과거와 결별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 한때는 기독교인으로, 한때는 무교인으로. 그리고 앞으로는??




시험으로 한바탕 노닐어 보자

     

그렇게 일상이 변한 만큼이나 임용에 대한 나의 생각도 변했다. 시험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활발발하게 소통하자고 생각했으며,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공격적인 자세는 버리고 당당히 일대일로 만나 한바탕 징하게 놀자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쁨은 여전하다. 맘껏 세상과 어울려 한 판 놀 수 있는 정겨움의 시공간, 그 속에서 난 올해 일 년의 밑도 끝도 모를 절망들을 이겨왔는지도 모른다. 생동감과 열정, 그게 날 일으켜준 결정적인 원동력이다. 

(중략)

떠남과 동시에 만남은 이루어지며, 이별과 동시에 재회가, 끝남과 동시에 시작이 이어진다. 그런 순환의 법칙 가운데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건 바로 시간들의 경계선 상에서 맘껏 노니는 것이다. 애초에 시간의 분절은 없었지만 의식의 분절만이 허용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떠나간 것에 대해 아쉬워하기보다 다가올 재회의 기쁨으로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거다        


  

07년 어느 때인가 썼던 일기인데, 지금 읽어봐도 그때의 절절함이 느껴지고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런 변화 덕에 07년 임용은 나에게 철학적인 의미까지 함께 있는 시험이 됐던 것이다.                



▲ [왕의 남자] 중 엔딩. "징헌 놈의 이 세상, 한 바탕 놀고 가면 그 뿐"이라는 대사가 심금을 울린다.




광주에서의 인연그리고 악연

     

07년도 임용은 광주에서 봤는데, 06년에도 군대 동기에게 부탁하여 하룻밤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처럼 이때도 광주에 살고 있는 군대 동기에게 부탁을 하여 하룻밤 머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의 나라면 ‘민폐 끼치기 싫다’라는 마인드로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꾸준히 연락하며 지냈던 것도 아님에도 무작정 연락을 하여 잠자리 부탁을 하는 것이니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이젠 어떻게든 어우러져 돕고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을 그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친구는 대대 군종병으로 중대 군종병인 나와는 좀 더 각별한 관계이기도 했다. 군대 생활만큼이나 신앙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생활했었다. 이 친구는 지금 전도사로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저녁은 여자 친구까지 함께 모여서 시내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 군대인연으로 하룻밤 묵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목사가 되어 열심히 사는 친구.



아침밥까지 잘 먹고서 드디어 고사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건 바로 작년에 헤어진 여자 친구와 한 교실에서 시험을 보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난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 아인 뒷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이상은 마주칠 일이 없으니 말이다.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렇게 한 교실에 있다는 것은 역시나 어색한 일이더라. 그 때문이었을까, 맘이 심하게 요동쳐 왔다. 시험이란 불안, 전 여자 친구를 만났다는 미묘한 감정이 뒤섞여 형용할 수 없는 마음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책상에 앉자마자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정신을 통일하여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신체를 조성하는(2007.12.02)’ 것이다. 회피하지 말고 모든 실력과 모든 지식을 까놓고 시험지와 일대일로 진실하게 만나고 싶었다. 모든 불안, 근심, 걱정, 설렘, 기대는 잠시 놓아두고자 했다.                



▲ 역시 이곳을 지날 때 시험을 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축제가 한 순간에 저주로

     

막상 시험지를 대하고 있으니 지금껏 느껴졌던 모든 감정들은 사라지고, 긴장도 풀어져 갔다. 그게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올해 연습한 결과라면 결과라 할 수 있다.           



역시 시험장에서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라는 끈기다. 바로 그게 밑받침이 될 때, 저력이 생기는 거다. 바로 그 자세로, 그 효과를 끄집어냈으니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0%의 미흡함은 역시 마무리까지 확실히 하지 못한 나의 한계에 있다. 어찌 보면 그 자세를 유지하여 끝마무리까지 확실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2007.12.02)   


       

시험은 흡족하게 봤다. 결과 여부를 떠나서 느낌이 그랬다는 거다. 하지만 문제는 지레 포기하는 끈기부족이라 할 수 있다. 난 시험지의 권위마저 넘어선 것은 아니었던 거다. 그러니 맘 한 구석으론 불안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 광주에선 5명의 교사를 뽑는다.



시험이 끝나고 학과 후배들과 점심을 먹게 됐는데, 그런 불안증은 그 자리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내가 쓴 답들이 이미 틀렸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비참한 느낌이 들었고, 그만큼이나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도 사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초월한 듯, 태연한 듯했던 내 자신도 별 수는 없었다. 역시 아직도 그 뻔한 현실적인 장벽들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말만 거창한 그런 속빈 강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상동) 


         

시험의 실패가 마치 인성의 갖춰지지 않음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시험만 끝났을 뿐인데도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처참한 심정을 느껴야 했으니 말이다. 내리는 비를 보며 난 1년을 곱씹고 있었다. 

시험의 결과는 낙방이었지만, 더 충격적인 건 과락이라는 사실이었다. 과락, 내가 제일 행복하고 치열하게 살았다고 느끼던 그 때에 난 내 인생의 오점을 선물로 받았다. 말로 할 수 없이 절망적인 느낌이었다. 



▲ 그렇게 2007년도 지나가고 있었다.




목차     


1. 06년도 임용내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다

어느덧 오수생이 되다

첫 시험에 스민 자신감, 언뜻 보이는 불안감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다

첫 시험이라 떨렸을까, 너무 큰 기대가 있던 시험이라 떨렸을까

초심자의 행운, 그렇게 떠나다     


2. 07년도 임용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2007년은 변화의 때

시험으로 한바탕 노닐어 보자

광주에서의 인연, 그리고 악연

축제가 한 순간에 저주로     


3. 08년도 임용기분 좋은 떨어짐

암울하게 시작된 2008년

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빛이 찾아오다

2008년에 바뀐 임용제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는 마음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힘

과정에 만족할 수 있던 08년 임용     


4. 09년도 임용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한 해 동안 잘남과 못남을 동시에 느끼다

전북에서 시험을 보게 된 이유

시험의 위력에 휘둘려 꼬꾸라지다     


5. 10년도 임용마지막 시험에 임하는 자세

임용시험 3일 전, 마지막 시험을 코앞에 둔 심정

임용시험 2일 전 아침, 사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었지

임용시험 2일 전, ‘盡人事待天命’의 자세     


6. 10년도 임용오수생 마지막 임용시험을 보다

마지막 시험이라 외치다

파도와 같던 나의 마음을 붙잡다

온고을 중학교와의 인연

마지막 임용시험의 풍경     


7. 10년도 임용지금 행복할 수 있는가?

시험 끝나자 활기가 찾아오다

함께 모여 밥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10년 지기 친구와 맛난 점심을

고통인 삶, 그걸 맛들일 수 있을까?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다     


8. 때 지난 임용 낙방기를 쓰는 이유

사람은 밤하늘과 같다

실패했을지라도 그것만으로 좋은 경험이다

찬란한 과거를 현재의 자양분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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