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시절, 나 혼자 사무실을 지키던 중 손님이 방문했다. 현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와 관련 있던 사람이었는데 약속 없이 갑자기 온 것이다.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에 처음 와본 듯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차 드시겠냐는 형식적인 인턴의 응대에 손사래 치며 테라스 자리로 갔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흑발로 염색한 머리와 두툼한 풍채가 그의 나이를 교묘히 감춰주고 있었다. 잠시 햇볕을 쬐려는 듯한 그 사람을 두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회사에 손님이 오는 일은 꽤나 자주 있는 일이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커피 타는 법, 다과 내가는 법 등을 꼼꼼하게 배웠다. 당시 나는 디자인팀으로 들어갔는데 이런 일을 왜 배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전형적인 ‘커피 타는 여직원’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회사 대표는 여자분이었는데 그런 편견을 매우 싫어해서 남녀 직원 가릴 것 없이 손님에게 차를 타도록 했다.
그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내 자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지만 대부분의 신경은 바깥으로 향해 있었다. 연세가 많은 손님은 어쩐지 좀 어려웠다. 왠지 과하게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필요한 게 있진 않을까 싶었다.
“아, 나 신경 쓰지 말고 일 봐요.”
엉거주춤 서 있던 나에게 손님이 말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달칵거리고 있는데 그가 나를 불렀다.
난생처음 듣는 호칭으로.
“이양, 그 커피 좀 타오게.”
‘이...... 양? 이 양?! 나를 말하는 거 맞지?’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머신에 원두를 부었다. 분명 자주 타던 커피인데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인턴 이해니와 이 양의 간극은 무엇이었을까. 한편으로는 ‘미스 리’가 아닌 게 어디냐며 자기 위로를 하려는 내가 느껴졌다. 악의 없는 돌멩이에 귀를 맞은 개구리는 묵묵히 커피를 타서 그에게 갖다 주었고 그날 하루는 에스프레소처럼 씁쓸했다.
사실 이것이 충격받을 일인지 아닌지도 긴가민가해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폄하할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 사람이 통과한 시대가 남긴 습관적인 말버릇이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도 막상 듣고 나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은 엄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일하던 사무실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나오는 모습 딱 그것이었다. 치마 유니폼을 입은 단정히 입은 여직원들이 다과를 준비하기 바빴다. 엄마는 머리가 명석해서 계산을 꼼꼼하게 잘했고 일머리가 좋아서 시키는 일을 척척 잘 해내는 직원이었다. 그런 엄마를 거슬리게 한 것은 바로 커피 심부름이었다. 중요한 일을 하다가도 탕비실로 자꾸 불려 가야 했던 것이다. 묵묵히 주어진 일로써 그저 받아들이기엔 마음속에 억울함이 일었다. 콤플렉스였던 학벌이 문제인가 싶었다. 고졸이라서, 가방끈이 짧아서 잡일을 더 시키는 거라 생각했지만 가만 보니 아니었다. 그날부터 숙희 씨는 관찰과 분석에 들어갔다.
“내가 대학을 못 가서 커피를 더 타오게 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지켜보니까 나랑 똑같은 고졸인 남자 직원들은 안 하더라고. 그때 알았지. 아, 내가 ‘여자’라서 그렇구나.”
다과를 준비하는 건 여자직원들뿐이었다. 그 외 자잘한 일들을 하는 것 역시 그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미스 김’, ‘최 양’ 같은 호칭은 일상이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라서 바꾸자는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일찌감치 깨어있던 숙희 씨의 속만 타들어갈 뿐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거지. 당연하다는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으니까.”
엄마는 나를 ‘이 양’이라 부른 손님이 나쁜 뜻으로 그런 건 아닐 거라 했다. 그저 오랜 세월 동안 습관처럼 굳어진 말버릇이고 주변에서 누구 하나 고쳐야 한다고 말해준 적 없었을 거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 또한 엄마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런 호칭이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고 혹자에게는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본인이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남은 평생 모르고 살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내가 굳이 나서서 불쾌함을 남겨가며 지적해야 할 의무도 없다. 저물어가는 해는 그냥 두면 알아서 산 너머로 사라질 테니까.
서로 다른 타임라인 속 20대였던 ‘김 양’과 ‘이 양’은 비슷한 걸 겪었지만 그래도 사회는 발전하고 바뀌어 간다는 걸 목도하고 체험했다. 느린 듯해도 조금씩은 변해간다는 걸 엄마가 조금은 경험해서 다행이다. 상처받은 80년대 아가씨의 마음에 시대가 위로를 건넨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