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 시절 정동진까지의 여정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
나의 첫 정동진은 청량리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거의 6시간 가까운 시간을 타고서였다.
맥주와 간식, 식사거리를 잔뜩 실은 카트를 승무원이 수십 번을 왕복하고 기차 특유의 ‘처걱처걱’하는 소리가 귀에서 이명처럼 들릴 때쯤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정동진은 내 기억으로 플랫폼과 바다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역시 보통역과는 클래스(?)가 다르다. 외관에서부터 남다른 그곳은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동진은 기꺼이 허락해 준다.
뜨는 해를 보고 싶으면 오라고.
싱싱한 태양이 갓 닿은 모래를 밟고 싶으면 오라고.
마치 그렇게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매일 더 자고 싶은 태양을 억지로 깨워 끌어올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일어나기는 싫었지만 결국에 반기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얼굴에 태양의 표정도 그 뜨거운 색깔처럼 이내 밝아지는 것 같다.
정동진은 바다와 태양과 기차역이 한 세트이다. 어느 하나가 빠진다면 사람들은 그 수고를 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세 가지 모두에 사람들은 진심이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표정이 진심이듯이, 두 손 모은 그 감정이 간절하듯이, 밤을 견디고 새벽을 지새워서 응축한 그 하나하나의 소망과 바람들은 모두 기차역에서부터 모래 위 발자국에 새겨져 바다에 뿌려지고 태양까지 닿는다. 이 모든것이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다.
아마 잘 닦여진 도로와 잘빠진 탈것들로 예전보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 그 낭만과 간절함이 식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연연하고 그리워한다.
그래서 기꺼이 정동 쪽 끝까지 가서 내 그리움을, 내 연연함을 고백하고 풀어헤치고 내려놓고 올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동진의 태양은 아직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