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춘욱 Nov 23. 2022

"자본주의 이해하기6" - 열대지역이 뒤쳐진 이유는?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사회 발전 힘들어

오늘은 "자본주의 이해하기"에 대한 여섯 번째 서평으로, 이번 번에는 열대지방 국가들이 근대화에 제 때 동참하지 못하고 뒤쳐지게 된 이유에 대해 살펴 볼까 합니다. 혹시 이전 글을 못본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심 됩니다. 


"자본주의 이해하기1" -생산성 향상과 소득증가의 세계

"자본주의 이해하기2" -노동시장의 특수성

"자본주의 이해하기3" -효율임금은 어떻게 작동하나?

"자본주의 이해하기4" - 파이어스톤 사태와 효율임금

"자본주의 이해하기5" - 효율임금 말고 탈숙련화는?


아래 <그림>은 세계의 국가별 1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하 것입니다. 진한 녹색이 될 수록 부유하며, 붉은 색으로 근접할 수록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이 열대지방에 붉은 색으로 표시된 국가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열대지방 국가들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난한 것일까요?  


https://howmuch.net/articles/world-wealth-map-2018


이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이 있습니다. 바로 제도의 차이에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501쪽). 


1700년 멕시코의 일인당 소득은 (훗날 미합중국을 형성한) 동부 13주의 영국 식민지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쿠바와 바베이도스는 이보다 훨씬 부유했다. 18세기 말을 전후해서에는 쿠바의 일인당 소득이 미국보다 약간 더 높았고 아이티(Haiti)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을 것이다(노예를 포함한 일인당 소득에서). 그러나 21세기 초엽, 멕시코의 일인당 소득은 미국의 1/3도 되지 않고 아이티는 그보다도 훨씬 낮다. 


<그림> 1700~1997년 신세계의 1인당 국민소득(미국 대비) 추이


놀라운 일입니다. 운명의 역전이 나타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경제사학자 케네스 소콜로프와 스탠리 앵거만은 이렇게 설명한다. 설탕과 기타 플랜테이션 작물이 생산될 수 있었던 신세계 지역(쿠바, 아이티)이나 광물과 토착 노동력이 풍부했던 지역(멕시코)에서는, 경제 엘리트들이 노예 노동이나 다른 형태의 강제 노동에 의존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자신들만의 독점적인 기회를 누림으로써 권력과 물적인 특권을 공고히 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제도는 학교, 공유지, 특허, 사업의 기회, 정치적 참여에 대해 대중적 접근을 제한했다. 이 지역에서는 그 뒤로 수백 년 동안, 노예제와 기타 강제노동이 폐지된 다음에도 저축·혁신·투자에 대한 기회는 부자들만이 독점했다. 문맹률은 높았고 토지의 소유도 매우 집중되어 있었다.


즉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시스템이 쿠바와 멕시코 지역에 정착되었던 것입니다. 반면 설탕과 기타 플랜테이션 작물을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 즉 북미의 사정은 이와 달랐다고 합니다. 


부의 원천이 자연자원이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의 생산으로 바뀌자 쿠바 아이티 · 멕시코처럼 매우 불평등한 경제는 정체되었다. 반면에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토지·교육·창업의 기회가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촉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포용적인 경제국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신세계의 식민지들 사이에 이렇게 초기에 제도적인 차이가 발생한 것은 문화보다 지리적인 요인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혹시 영국이나 네덜란드의 문화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문화가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은 아닐까요? 


식민지를 건설했던 유럽 국가들의 문화와 정책의 차이는 이들 지역의 제도의 차이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벨리즈와 가이아나는 스페인이 지배했던 온두라스 콜롬비아와 같은 길을 걸었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바베이도스 자메이카는 쿠바 아이티와 같은 운명을 겪었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와는 달리, 니카라과의 해변 프로비던스 섬에 정착했던 청교도들은 자유주의적 정치 이상을 집어던지고 노예 소유주가 되었다. 청교도의 역사에 정통한 어느 저명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그곳의 청교도 정착인들은… 서로 모략을 일삼았고 다른 서인도 식민지의 노예제와 유사한 제도를 만들었다" 1641년 스페인이 이 섬을 점령했을 때 이곳에는 청교도보다 노예가 훨씬 많았다. 이 섬은 무척이나 부유해 보였기 때문에 배 두 척을 가득 채운 청교도들은 이곳이 매사추세츠보다 더 나은 곳이라고 믿고 이 섬에 정착하게 되었다.


결국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시스템인가? 아니면 자영농들이 평등하게 사회를 구성하고 자위를 위해 국가 기구를 건설했는가에 따라 사회의 발전 속도가 달라졌던 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중국 경상흑자 기조. 지속될 수 있나? - NY F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