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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Mar 05. 2022

이십 년 동안 스물네 번의 이사

과연 우리 동네는 어딜까?

3월 첫번째
나는야 우리 동네 홍보대사
"우리 동네들을 소개합니다"



스물네 살 이후 이십 년 동안 스물네 번 이사했다. 인천과 고양, 양주와 포천, 대전과 이천, 영천과 홍천, 서초와 송파, 분당과 파주 그리고 티르까지 짧게는 육 개월에서 길게는 이년을 보내며 다양한 우리 동네를 가질 수 있었다. 큰 딸은 아홉 해를 살며 여덟 번 이사를 통해서 다섯 개 동네를 가졌지만, 태어난 양주와 지금 사는 고양 그리고 허세 가득한 분당 정도를 우리 동네라고 말한다. 세 곳에 살아 본 다섯 살 둘째는 분당만 이야기한다. 아빠와 언니나 분당을 좋아하는 아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부터 글을 쓰면서 우리 동네에 대해서 여러 번 썼다. 태어나고 자란 인천과 우연히 자주 살아 본 일산에 대해서도 각각 한편씩 글을 썼다. 반년 동안 살았던 레바논은 브런치 북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작년 시월, 공모전에 도전하려고 열심히 썼지만 응시일을 잘못 알고 공모조차 하지 못한 소중한 글도 동네와 연관된 이야기이다. 그만큼 살면서 우리 동네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



글쓰기 플랫폼에 썼던 동네와 관련된 글을 다시 읽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부끄럽지만, 우리 동네에 대한 진심은 묻어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룬 각자 동네에 대한 글을 읽으면 애틋함, 그리움, 자부심처럼 사랑 가득한 내용이 대부분이며 동네 자랑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서 살고 싶을 정도이다. 이러다 평생 가볼 일 없던 하동까지 가게 생겼다.



"우리 동네로 오세요"라는 카피는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마을 주민들이 힘차게 외친다. 힘들고 지친 하루를 사는 사람들도 생활터전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가진다. 범죄가 많고 열악하거나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 않더라도 우리 동네는 소중한 장소가 되는 마법이 펼쳐진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거나 자라면 결속력이 강해지고 우리는 그것을 지연이라 칭하며 여기저기 가져다 붙인다.


동네를 생각하니까 마을과 시내도 연상되는데, 대학 때 지방에 사는 친한 친구들에게 장난쳤던 기억도 있다. 시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이다. 포항과 목포에 사는 친구에게 주로 어디서 노냐고 물었는 데, 둘 다 시내라는 대답을 하길래 같은 동네 이름이 각각 있는 줄 이해하다가 대화를 한참 주고받으면서 문화와 상권 중심지를 시내라고 칭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방과 비 지방을 나누는 기준을 시내로 삼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물으며 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라는 단어는 함께, 같이와 잘 어울린다. 소속감과 단결심을 통해서 불안을 해소시키며 안정되고 안전한 느낌을 주는 고마운 단어이다. 하지만 우리라는 단어로 인해서 가끔은 마찰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라는 표현은 울타리라고 할 수 있는 가상 선을 연결하여 안과 밖을 나눌 때 안쪽 영역을 표현한다. 말장난 같지만 소, 돼지, 말 등 가축우리가 연상된다. 세상을 헤아릴 수 있는 그릇 크기와 신념과 단호함 또는 너그러움에 따라서 울타리 크기와 높이가 달라지겠지만, 생물은 본능적으로 우리와 너희를 나눌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와 우리가 아닌 존재로만 나누면 문제가 될 리 없지만, 두 존재는 각자 우리가 되면서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탓하는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조직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같은 소속 상급자임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문제라고 지적하거나 너희들만 왜 그러냐는 등 이질감을 완벽하게 느끼게 하는 표현 '너희'를 쓸 때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몇 해 전 친한 선배와 프린트 사용 문제로 마찰이 있었는데, 우리란 말에 민감한 내가 선배 성질을 건드렸다. 같은 소속이지만 다른 사무실이라 프린트를 각자 사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예산은 함께 사용한다. 우리 사무실 프린트 고장으로 선배 사무실에서 사용하려다가 우리 프린트를 왜 사용하냐며 다그치는 말에 감정이 상해서 "우리란 범주는 동일 예산을 쓰는 과까지 넓혀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있었던 터라 벼르고 이야기한 내 못된 심성이 선배를 당황하게 했을 것이다. 그 일로 한참 동안을 대화 없이 지내다 결국 술 한잔 하면서 풀었는데, 내 기억 속에도 뚜렷하게 남은 것을 보면 분명 우리란 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 새기고 사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제 것은 엄청 챙기는 사람이다 보니 스스로 위선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혈연, 지연, 학연, 근무연까지 모든 연을 다 따져가면서 엮는 것도 좋아한다.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관심을 갖고 다가가면서 울타리 밖 사람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그래서 나름 해결책으로 울타리를 낮추자고 다짐했다. 어쩌면 그게 다름을 인정하는 작은 가치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편하거나 좋지 않은 상황과 마주하면 '쟤들 왜 저래' 또는 '쟤네들은 원래 저렇지'라는 선입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금껏 익힌 관습과 문화로 인해서 형성된 본심이 바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본심이 그렇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인식하고 잠식시키려는 노력은 한다. 그러다 보니 악하지 않은 진심이 있다고 자각하지만, 아직까지 본심과 진심 중 무엇이 우선인지 잘 모르겠다.


아쉬운 점은 우리가 아닌 너희 입장에 놓이게 될 경우 고통과 아픔을 수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한 행위가 너희에게 가혹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 플랫폼에서 한참 집중하다가 느슨해졌는데, 정점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명확한 사실과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우리를 찾다 보니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 일이 있었다. 결국 더 높고 단단한 울타리를 쌓았고, 희미하게 연결되었던 끈도 끊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일들이 사실인지를 묻고 싶지만 서로 알고 있는 진실은 다르기 때문에 그냥 다름을 이해하고 각자 울타리 안에서 지내면 된다는 생각이 커졌다. 언제라도 담을 부수고 싶은 심정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말을 건네거나 손을 내밀고 싶은 생각 그리고 용기도 수그러 들었다. 그렇게 울타리는 서로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아졌고 결국 이 공간에 오래 머물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 연유에서 우리 동네란 말이 친근하고 좋지만 가끔은 무겁게 다가온다. 그냥 좋아하고 사랑하는 우리 동네를 기분 좋게 소개하면 되는데, 부정적인 생각과 답답한 이야기로 풀었다. 최근 복잡하고 바쁜 일상으로 인해서 어두운 그림자가 덮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밝은 기분의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진솔하지 못한 글을 쓰거나 전에 썼던 글을 다듬어서 발행하고 싶지 않았다.


 글은 절대 다른 누구를 향하는 글이 아니다. 아직 글을 통해서 누구향하거나 헤아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머리와 가슴속에 머무르는 생각과 감정을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다져지면 언젠가는 독자를 위한 글이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공부도 하고 꾸준하게 끄적여야겠다. 그냥 혼자서 내뱉었던 말인데, 나를 돌아보게 한다. '글은 삶과 다르지 않다'.



덧+) 지난 글 중에 이번 주 주제와 가장 어울리는 글이 있습니다. 당시 글을 쓸 때 홍보글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 동네에서 좋아하는 장소를 다뤘습니다.

* 여보 생일 축하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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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주민이 쓴 글입니다.(지연)


* 우리 동네 주민이 쓴 글입니다.(지연)


* 거의 우리 동네 주민이 쓴 글입니다.(연)


* 시장과 친해  우리 동네가 될 곳입니다.(근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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