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2일, 브런치 작가가 되다
2023년 2월 22일, 오늘은 제게 특별한 날입니다.
브런치에 글 쓴 지 벌써 1년이 되었어요. 1년 전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고 기록 차, SNS에 올렸던 짤막한 글(아래 이미지 첨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내 초심은 이랬었구나’ 새삼 느끼며,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2022년 2월 22일, 숫자 2가 무려 6개나 들어있었던 날. 퇴근 후 이메일을 열어보니, 저 멀리 한국 브런치 본사에서 날아온 따끈따끈한 '작가 승인'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마침 당일 저녁엔, 사랑하는 조카의 랜선 졸업식이 있어, 유튜브 라이브를 보며 캡처 뜨기에 손이 무진장 바빴었죠. 조카바보 이모 눈엔 아직 아가 같기만 한데, 졸업장과 상장을 받으러 씩씩하게 걸어 나오는 땡땡이를 보며, ‘아긍, 대견해라, 예뻐라~~’ 무한 하트 뿅뿅 연발, 심장이 녹아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많아서인지, 그날의 모든 기억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브런치 1주년을 맞아, 간단히 ‘안물안궁’ 셀프 인터뷰를 진행해 볼까 합니다.
1. 우선 1주년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1년 동안 53개의 글을 썼습니다. 1년은 52주니까 주 1회씩 글을 발행해 온 셈이네요. 지난 1년간 공감과 댓글로 응원해 주신 이웃 작가님, 구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년엔 제가 뭣도 모르고 미국 유학, 비혼, 외국어 공부, 가드닝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징그럽게 길게 썼는데(저도 알고 있어요), 긴 글을 숙제처럼 읽어주시고 가끔 독후감?!처럼 소감 남겨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2. 작가님, 브런치 활동한 지 1년이나 되었는데,
구독자 200을 조금 넘기셨네요. 좀 분발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브런치 1년 만에 구독자 1,000명, 5,000명을 휙휙 넘어가는 작가님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출간 제의에 협업 제안까지...! 신기하고 대단하고, 부러운 일이죠. 그래서 올해에는 주 2회 글을 올려볼까 생각도 해보았는데, 당분간은 본업에 더 충실해야 할 것 같네요. 아시다시피 지금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에서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거든요. 저는 생계형 직장인이라 이럴 때일수록 땅에 납작 엎드려, 그저 열심히 회사일을 하는 수밖에요. 하지만 주 1회 글 발행은 사수하려고 합니다.
3.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은 브런치 메인, 다음 포털 노출 경험을
종종 공유하시던데, 떡상했던 글이 전혀 없는 겁니까? 공개 좀 해주시죠.
으윽…… (왜 그러시죠?) 기자님이 정곡을 찌르셨네요. 몇 가지 글이 있긴 합니다만, 다른 작가님들처럼 몇 만 뷰 정도로 떡상한 게 아니라서요, 숫자 공개가 과연 의미가 있을지. 질문 주신다면,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베이비 떡상 글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4. 조회 수 가장 높았던 글은?
첫 브런치북 <직딩의 미국 유학 일지> 연재 글로 올렸던 에피소드 <고작 몇 개 지원했다고 벌써 포기야>인데, 다음 포털에서 직장인들이 많이 보는 특정 시간대에 노출된 듯합니다. 정확히 어디 떴는지는 제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네요. 작년에 올렸던 글이 대부분 7~8분 길이라, 어쩌다 4~5분 정도로 짧게 쓰면 그 글이 떡상하는 편입니다. ^^
5. 브런치북에서 가장 완독률 높은 글은?
브런치북을 발간하면 여러 통계자료를 볼 수 있어 흥미로운데요, <늦깎이 유학생의 애환>이 전체 17개 글 중 가장 완독률이 높아 놀랐습니다. 저처럼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30대가 넘어 유학 준비하시는 분들께 공감을 사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6. 라이킷 가장 많이 받았던 글은?
얼마 전에 쓴 <조카는 내게 모쏠이냐고 물었다>가 라이킷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이 또한 정확히 어디 노출되었는지 찾지 못했는데요. 조회 수 1,000이 넘어가는 다른 글들도 꽤 있는데, 이 글은 유난히 하트를 많이 받아 좀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언니와 조카와의 영롱한 기억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쓴 글인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공감과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이 기회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물론 요즘 늘어나는 1인 가구 트렌드에 ‘모쏠’이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조카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글씨와 그림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네요. (땡땡아, 고마워! 다 네 덕이다~~♡)
7. 가장 애착 가는 글은?
처음으로 브런치 메인에 떴던, <캘리포니아 식집사의 그린그린한 일상>, <비혼, 풍요의 정원을 가꾸다>입니다. 각각 8분, 10분짜리인데, 요즘 식물, 비혼 등에 관심이 많으셔서 그런지, 긴 글임에도 조회수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춤과 글쓰기,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취미 생활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을 담아 두 가지의 공통점을 대비해 본 <춤과 글쓰기의 공통분모 5가지>도 애착 가는 글입니다. 이런 말은 좀 식상하지만, 영혼을 갈아 썼습니다. ㅎ
8. 작가님은 글은 좀 긴 편인데, 가장 긴 글은 뭔가요?
(찔림) 길게 한 꼭지를 써오라고 하면 아마 A4 20장도 쓸 수 있을 겁니다. 하핫. 마르셀 프루스트나 김혼비 작가님처럼 만연체로 글 잘 쓰는 작가를 신기해하고 좋아합니다. 이건 순전히 개인 독서 취향이고, 지금 제 필력으로 만연체에 좋은 글을 쓰기엔 넘사벽이죠. 가장 긴 글은 12분짜리 <파친코, 내 안의 K-내러티브를 깨우다>입니다. 지금은 글이든 영상이든 숏폼이 각광받는 시대이고, 일기가 아닌 이상, 글은 읽히지 않으면 효용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짧으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
9. 최근 3인칭 시점으로 갈아타셨던데, 심경의 변화라도?
심경의 변화까지는 아니고, ‘나'로부터 잠시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나’라고 하면 모두 팩트여야 하기 때문에 조금 답답하기도 했어요. ‘지나’란 캐릭터 덕분에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직딩의 미국 유학 일지> 브런치북 글은 모두 1인칭이었는데, 그게 가능했던 건 오래전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나’와의 시간적 거리가, 감정적 거리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죠. 지난주에 막 시작한 매거진 <실리콘밸리에 혼자 삽니다>에서 ‘지나’는 저의 필명이기도 하지만, ‘지난날의 나’라는 뜻도 있습니다 (현재의 나는 과거 수많은 경험, 실수, 선택의 결과이며 미래의 나도 그럴 테니까요). 지난날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지나가 이곳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10. 라이킷, 댓글 반응에도 신경 쓰시나요?
아니라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일 겁니다. 신경을 끄려고 노력하는 거겠죠. :) 저처럼 출간 작가도 유명 작가도 아닌 많은 브런치 작가님들이 독자님들의 ‘관심’을 먹고 살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저 글이 좋아서 쓰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회사 신경 안 쓰고 유일하게 놀 수 있는 주말을 털어 글을 쓰는 거니까요. 하지만 글쓰기가 즐거워서 하고 있으니 오해 마셔요. 한국에서 데려온 '월간 채널예스'에서 <파친코> 저자, 이민진 작가님 인터뷰를 읽다, 올해는 이런 마음으로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해 준 문장이 있어요.
Q: “작가를 꿈꾸는 여성 또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A: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대상에 아주 솔직해져야 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있을 겁니다. 출판 시장은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건 시장에서 통하는 것이 뭔가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미국 출판 시장에서 성인 독자들을 위해 한국과 일본에 대해 쓴 소설은 하나도 없었어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전 고집이 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책을 꼭 끝내고 싶었어요. 돈을 못 벌어도 어쩔 수 없지만 아름다운 책을 쓰고 싶었어요.”
월간 채널예스 1월 커버 스토리, 이민진 작가 인터뷰 중
11. 올해 계획은?
일단 많이 읽는 것입니다. 글 쓰면서 가장 자괴감이 들 때가, 내 생각이 언어로 촘촘하게 표현되지 않을 때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얘기는 가득한데, 어휘력과 표현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머릿속 안개가 자욱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올해는 틈틈이 인풋을 늘려 보려고 해요. <시선으로부터> 저자 정세랑 작가님이 ‘유퀴즈온더블럭’ 인터뷰에서 “읽는 사람은 죽기 전에 천 번을 산다." (‘왕좌의 게임’ 인용)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문장이 뇌리에 박혔어요. 책이 없었다면, 저는 평생 지나의 삶만을 살겠지만, 책 덕분에, 세계 방방곡곡, 수많은 시대를 누비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여행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당분간 <실리콘밸리에 혼자 삽니다>를 써 나가며, 가끔 캘리포니아 일상과 조카와의 에피소드도 풀어볼 예정입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작가가 된 것인가? 싶을 정도로, 글 잘 쓰시는 작가님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 많은 글 중 제 글을 읽어 주시고, 재치 있는 댓글로 소통해 주시는 글벗님, 구독자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