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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Sep 26. 2023

"핀을 뽑아요? 지금요?"

깁스만 풀면 되는 줄 알았다.

골절 수술을 하고 4주가 흘렀다. 드디어 통깁스를 풀기로 한 날. 핀은 6주 차에 뽑는다고 했으니 아직 다 나은 건 아니고, 통깁스를 풀자마자 다시 반깁스를 해야 하니 깁스가 끝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산 하나 넘는 느낌이어서 손꼽아 기다린 날이었다. 꿈이는 깁스 자르는 기계가 무서운 모양이었지만, 거부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통깁스 푸는 것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병원에 갔다.


일단 엑스레이를 찍었다. "아주 잘 붙고 있어요. 이제 통깁스 빼고 재활하면서 반깁스 2주 더 하고 2주 뒤에 핀 뽑으면 될 것 같아요. 이야, 근데 진짜 잘 붙었다. 맘 같아서는 핀까지 뽑고 싶은데?" "아, 정말요?" "음, 하지만 혹시라도 다시 부러지면 그때는 애가 훨씬 더 많이 고생하게 되니까 계획대로 2주 더 있다 뽑읍시다."




그리고 처치실.


일단 통깁스부터 잘라내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어? 이거 반깁스 못하겠는데?" 당황한 선생님의 목소리. "으음, 이거 어쩌지. 핀이 너무 튀어나왔는데." 그랬다. 통깁스를 풀자마자 내 눈에도 들어왔던 핀. 아이가 부러지고 수술할 당시에는 팔이 많이 부어 있었다. 분명 그때는 바깥으로는 손잡이만 딱 나오도록 끝까지 꽂아놓은 핀이었다. 그런데 4주가 지나는 동안 부기가 다 빠져버렸고 거의 2센티 정도씩 핀이 밖으로 돌출되어 버린 것이다. 통깁스가 너무 헐렁해져 지난 드레싱 때 다시 통깁스를 할까 하다가 붕대를 끼워 넣어 고정했었는데, 똑같은 이유로 핀도 문제가 된 것.


"우리 이렇게 합시다. 지금 핀을 뽑읍시다. 많이 붙어서 뽑아도 될 것 같아요. 재활은 2주 뒤로 미루고 반깁스를 하고 있다가 2주 뒤에 와서 반깁스 풀고 재활도 같이 시작합시다."


"아, 지금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 앞으로 2주 더 살얼음판 같은 날들이 펼쳐지겠군. 하지만 그런 걱정은 찰나의 것. 곧바로 들려온 겁에 질린 아이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아파요? 안 아프죠? 아픈 거 아니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안 아프죠? 안 아픈 거죠?"


아이는 계속해서 물어대고 의사 선생님도 처치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사실 처음 수술 설명을 들을 때 내가 궁금해 의사 선생님한테 물었었다. "그럼 나중에 핀을 뽑는 건 힘들지 않나요?" "아이, 그거 처치실에서 10초면 뽑는 거예요. 간단해요." 아프지도 않은 게 맞냐고 재차 묻지 못한 건 상대방을 귀찮게 하기 싫어서이기도 했지만, 안 아플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10초면 된다잖아. 그게 뭐 그렇게 아프겠어? 이렇게 믿고 싶었던 게지.


그런데, 아이의 "안 아파요?"에 아무도 답하지 않는 몇 초를 지나며 선명히 알았다. 아프다. 그래. 핀을 뽑는 건 아픈 일인 거다. 그저 10초면 끝나는 '간단한' 일일 뿐, 아프지 않은 일은 아니었던 거다. 하아, 골절된 그 순간부터 지금껏 수없이 반복했던 말을 또 해야 할 시간이댜.


아이의 머리를 꼭 안아 핀이 박힌 팔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말했다. "꿈이야, 좀 아플 수는 있어. 그렇지만 핀은 빼야 하잖아. 아프면 소리 질러도 되고 울어도 되는데, 절대 팔은 움직이면 안 돼." "알아. 나도 해야 되는 건 알아." 아이가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아무리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참으면 지나간다는 사실 아닐까.


스르르르르륵 뽀옥. 아이를 안은 내 몸에도 느껴지던 진동과 소리. 진짜 소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 오감이 그걸 느꼈다. 기다란 핀이 나오는 동안 '스르르륵' 하더니 마지막에 팔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뽀옥'. 와인병 코르크를 딸 때 나는 소리, 딱 그거였다.


한 개의 핀이 몸 밖으로 나왔다. "이제 다 된 거예요?" 묻는 아이에게 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하아, 아직 두 개가 남았다. 두 개 째에서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세 개를 모두 뺀 다음에는 다 끝난 거냐고 다시 묻더니 말했다. "엄마, 나 근데 아직도 여기 아픈데 왜 그런 거야?" "아, 핀이 있던 곳에 상처가 있거든. 상처를 건드렸으니까 아픈 건데 금방 괜찮아질 거야. 정상이야. 걱정하지 마."


그렇게 4주 간 아이의 팔에 박혀있던 핀이 뽑혔다. 그리고 더 살얼음판 같은 날들이 시작되었다.


통깁스를 잘라내고 반깁스를 하기 전에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그때 팔을 조금이라도 닦아주려고 물티슈도 준비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핀을 뽑은 자리를 지혈하느라 살필 틈도 없이 솜을 감아야 했고, 고정을 위해 바로 붕대도 둘러버렸다. 혹시라도 흉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까, 핀을 뽑은 후에는 메디폼 같은 거라도 붙일 수 있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다 쓸데없는 일이 됐다. 핀 뽑은 자리에 그냥 솜을 붙여서 혹시 들러붙는 건 아니냐고 하니 곧 딱지가 생길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아마도 솜과 피가 범벅이 된 딱지가 되겠지. 으으음, 그 딱지는 거칠게 떨어질 테고 흉이 꽤 진하게 남겠구나 싶었다. 뭐, 어쩌겠는가. 팔만 잘 붙으면 되지. 이제 앞으로 2주, 반깁스를 절대 풀면 안 되고 혹시라도 다시 부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핀뽑고 반깁스하고 나오자마자 들른 이마트. 어려운일 했으니 선물 하나 사주기로 했었는데, 그리고보니 그거 아직 안 사줬네??


* 이 글은 아래의 글에서부터 연결되는 시리즈글이에요. 아직 안보셨다면 함께 읽어주셔도 좋습니다.^^

 1. https://brunch.co.kr/@jsrsoda/169

2. https://brunch.co.kr/@jsrsoda/170

3. https://brunch.co.kr/@jsrsoda/171

4. https://brunch.co.kr/@jsrsoda/172

5. https://brunch.co.kr/@jsrsoda/173

6. https://brunch.co.kr/@jsrsoda/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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