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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Dec 31. 2022

[2022 회고]그 길던 터널의 끝이 이제야 보인다

호시우보가 호시호보가 되는 순간

2022년도 지나간다

이제 나도 꽤 나이를 먹었나 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간다더니 진짜 올해는 시간이 빨리 갔다. 지난 2020년과 2021년은 내게 있어서 캄캄한 암흑기였다. 2020년엔 다른 수많은 자영업자들처럼 COVID-19 때문에 비즈니스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다들 마트는 코로나 때 반사이익을 본 것 아니냐고 하는데, 우리는 일반고객보다 요식업소나 구내식당의 매출비중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주요 매출처를 잃고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함께하는 감사한 사람들과 어려운 와중에도 계속 찾아주신 고마운 고객분들 덕분에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2019년 우연히 얻은 출간 기회가 내 인생의 강남스타일로 남지 않기를 바랐고, '새장 속의 새는 새가 아니다'라고  호기롭던 외치던 2016년의 나의 5년 뒤가 내가 보기에 초라하지 않았으면 하는마음이 컸다. 그래서인지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부담감이 꽤 컸다.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아 계속 답답하던 차에 본업마저 흔들려 버리니 굉장히 힘들었다. 어김없이 매장에서는 인력 문제가 계속 생겼고, 야심 차게 시도해본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는 본격적으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처참하게 마무리되었으며, 내게 의미가 굉장히 컸던 고사리 희망장터는 어른들끼리의 문제(특히 한없이 부족한 나의 인간성 문제)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한 발씩 나아가길 바라며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나만의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지난 2년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발버둥 친 결과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님께 내 인생을 뒤흔들 메시지를 받기도 했고(시궁창탈출 넘버원! 사장님 말씀), 막연하게 좋아하기만 했던 고기를 제대로 공부하며 Food Science에 대해 맛볼 수 있었고(고기를 좋아하세요...?), 무엇보다 내게 닥친 이 암흑의 원인과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행복해지는 법은 간단해요, 욕심과 만족 그리고 행복에 관하여,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 어떻게 살기 싫은지 생각해 봐!)


그리고 2021년 11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갔던 떠났던 제주여행(길은 가면서 만들어진다) 덕분에 2022년은 드디어 무언가 달라질 것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로컬 브랜드, 새로운 세계 그리고 가족

2022년에는 로컬 브랜드 케이스 스터디를 시작했다. 로컬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살고 있고, 판매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브랜드를 고객에게 소개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로컬 브랜드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 친구가 내게 '로컬 케이스 스터디를 더 진지하게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해줬던 것이 생각났다. 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님, 성심당 임영진 대표님, 이성당 김현주 대표님 모두 아무것도 없던 내가 브런치에 케이스 스터디 글을 쓰면서 이어진 인연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케이스를 발굴하고 잘 다듬어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선보이는 건 내가 자신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로컬 브랜드 케이스 스터디는 내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성심당, 테라로사, 삼진어묵 같은 전통적인 로컬 브랜드뿐만 아니라, 모모스커피, 오느른, 해녀의부엌 같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뉴 로컬 브랜드, 그리고 디앤디파트먼트,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오틀리 같은 해외의 로컬 브랜드들을 깊이 있게 공부하며 지금 이 시대의 새로운 로컬 브랜드는 어때야 할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로컬 브랜드 케이스 스터디 글들은 공개될 때마다 좋은 반응을 얻었고 바이럴을 타고 지금까지 약 33만 명의 사람들에게 읽혔다.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시고 공유해주신 덕분에 이성당, 성심당에 이어 올해는 삼진어묵과의 인연도 생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케이스 스터디 글을 엮어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으나,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브랜드 이야기를 모으기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너무 조급하게 출간만을 목표로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출간을 목적으로 시작했으나 더 큰 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브랜드 케이스 스터디를 진행하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취미는 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테라로사가 왜 좋은 커피회사인지를 말하려면 단순히 '테라로사는 스페셜티 커피를 한다'라는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테라로사의 원두가 다른 스페셜티 커피회사 원두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내가 직접 느껴야만 했다. 처음에는 깊이 있는 케이스 스터디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으나 곧 커피의 매력에 빠졌다. 덕분에 김용덕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커피 한 모금에 충격과 감동'하는 순간도 가져볼 수 있었다. 또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도 커피 한잔만큼은 내 마음대로 내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좀 더 내 중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커피를 깊이 있게 마시다 보니 차도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게 됐다. 호전다실의 클래스를 듣고 다양한 종류의 차를 직접 마셔보며 세상에 차는 녹차, 홍차가 다가 아니라 6대 다류(백차, 청차, 녹차, 황차, 홍차, 흑차)라는 분류가 존재하고 또 6대 다류 외에도 대용차 안에서도 다양한 종류 그리고 맛과 향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커피 한잔의 여유라는 기만적인 단어를 대체할 차 한잔의 여유를 알게 됐고, 머리가 시끄러울 때 조용하게 마음의 평안을 찾게 해주는 티하우스들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향과 향수에도 관심이 생겼다. 파르품삼각의 올팩티브 져니를 통해 수많은 향수들을 시향 해보며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지금까지는 향에 대해 무감하게 살았으나 내 삶 주변에 다양한 향을 내는 제품들을 놓기 시작했고 조금씩 다양한 향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특히 다양한 브랜드들이 어떻게 향을 활용해서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지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각종 럭셔리 브랜드 하우스들이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리고 어떤 향을 통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전통 럭셔리 브랜드들과 경쟁해야 하는 새로 떠오르는 니치 향수 브랜드들은 어디를 빈틈으로 보고 파고들었는지를 공부하며 브랜드의 새로운 차원을 느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올해 내게 가장 큰 사건은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또 가장 사랑하는 가족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는 것이다. 올해 7월에는 동생이 결혼을 했다. 남의 결혼식과 내 가족 결혼식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남의 결혼식에서는 그렇게 지루했던 주례사도, 결혼식에 성혼선언만 있으면 되지 뭐가 이렇게 많냐고 생각하게 했던 축가나 이벤트도 내 가족의 일이 되고 나니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또 결혼식을 위해 시간을 내준 사람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게 되기도 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꽤 든든한 일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나마 동생이라도 결혼을 해서 다행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쯤엔 '곡기를 끊는다'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말이란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기만 했고 아무것도 잘해드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모든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참 마음이 많이 아팠다. 게다가 마지막 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본인 편한 대로 가시는 게 아니라 모든 가족들을 배려하신 것같이 느껴져서 더 슬펐다. 나는 그렇게도 제멋대로 살고 있는데 마지막까지도 지멋대로인 손자를 위해서 희생하신 것만 같아서. 장례식 내내 살면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인줄만 알았는데 장례를 치르면서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말로 다 표현 못할 슬픔 속에서도 내가 얼마나 가늠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았는지 그 감사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이상 언젠가 다 죽을 운명이긴 하지만, 내 인생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아직도 받아들이기 슬프다. 내게 한 가지 그 사랑을 갚을 길이 있다면 아마도 할머니께서 보여주셨던 따뜻함과 다정함을 최대한 닮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어떻게든 실천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올해에는 큰 사건들이 많았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또 다른 형태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들 덕분에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처음으로 조금 여유를 가지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며 친구들과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너무도 감사하게도 이해인 수녀님같이 내 인생의 북극성이 되어주시는 분, 김아린 대표님처럼 내가 정말이지도 닮고 싶은 분도 직접 만나 뵐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다.



2022 호시우보가 2023 호시호보가 되는 순간

차석용 부회장님이 여러 번 강조하셨던 말 중에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말이 있다. '범처럼 예리하게 노려보며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간다'는 뜻이다. 지난 2년간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계속 머릿속에 떠올렸던 말이었다.


당장은 막막하고 나아갈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의 걸음처럼 우직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반드시 오고 내가 호랑이의 시선으로 준비하고 있으면 미세한 빛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그렇게 쌓아온 작은 걸음들 덕분에 이제는 나름의 기회가 보인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제 점점 더 그 걸음에 속도가 붙어 호시우보에서 전력질주로 달려야 할 호시호보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낀다.


올해 로컬 브랜드를 케이스 스터디하면서 사랑받는 로컬 브랜드에 대해 나름의 답에 도달했다. 2023년에는 이제 나만의 답을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여정에 함께하는 감사하고 든든한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 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내 색깔을 가득 담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 싶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고 세상은 공부해야 할 것투성이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여전히 욕심은 실력을 추월한다. 하지만 대단하지는 않아도 이제 나의 색깔과 템포를 조금은 찾았고 이 중심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고 믿는다.


2013년에 인턴으로 비즈니스 세계에 들어왔으니 2023년은 내게 있어서 비즈니스 세계에 입문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도 어떻게든 더 나은 모습이 되어있지 않을까. 2023년은 내 10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반드시 나오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난 앞길이 무지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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