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10시의 책수다. 1, 2회 , 3회 , 4회, 5회, 6회, 7회 기록은 여기 있고요.
오늘도 2시간 가까이, 책의 권수는 줄어든 대신, 책 하나에 대한 이야기는 더 깊게 나눴습니다.
[독서가와 행동가들] 뭐 읽고 있니? epi 8
<메타버스> 김상균,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다가오는 말들> 은유
<나의 비거니즘 만화> 보선
<초협력사회> 피터 터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가네코 후미코,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오스기 사카에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토요일 밤의 책수다, 진정 유익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트레바리 #디지털시대읽기 클럽 4월 책도 [독서가와 행동가들] 어느 밤에 Dan이 소개해준 덕분에 골랐어요. 디지털 지구에 대해, 우리가 사는 플랫폼 시대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었던 김상균님의 <메타버스>. 쉽게 읽히지만 생각 꺼리는 많아서 오늘 오후 토론이 무척 풍성했습니다. (정리를 하긴 해야할텐데ㅎㅎ) 일단.. 제 발제만 덧붙여 봅니다.
메타버스, 이미 일상>
- 포트나이트,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와 카카오, 배달의민족 같은 메타버스? 메타버스를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 더 행복하다면, 더 유능하고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메타버스가 더 중요해질까요?
- 우리가 실존적 존재라는 세계관이 메타버스와 만나는 건 어떻게 보세요? 장자의 꿈을 21세기에서 어떻게 해석해요?
- 일상에서 도피하는 걸까요?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걸까요? 그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메타버스, 더 상상해본다면>
- 일하는 분야, 관심 분야에서 메타버스는 어떻게 더 나아질까요?
- 메타버스 세계의 규칙과 표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 메타버스에서 놀이 뿐 아니라 노동이 구현된다면요?
- 더 나은 시민이 되도록, 바벨탑이 아니라 이데아를 만들고자 한다면어떤 논의가 필요할까요?
책수다 순서에선 끝에 나왔지만, 혜란님은 <메타버스>와 관련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을 함께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실용적으로 디지털 시대를 그리는 책에 이런 철학 책을 연결하는게 책수다의 즐거움이죠. 태형님은 "90년대가 미셸 푸코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는 보드리야르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가상세계가 현실에 침투하고, 현실이 가상세계에 녹아드는 시대의 근본적 사유를 담고 있다고요. 기왕 읽을거면 보드리야르의 책 중에서는 <소비의 사회>가 조금 더 잘 읽힌다고 하는데.. 와아아아.. 와중에 보드리야르 책은 읽다 졸았다는 증언도 나올만큼 사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매트릭스 영화 팬이라면 보라는 태형님 권유.
지난주 선거 이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한번쯤 생각해볼 책은
<선거는 민주적인가>. 태형님과 트레바리 클럽에서 함께 읽었던 책입니다. 귀족과 엘리트를 위한 선거는 민주적이지 않다고, 오히려 추첨제가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했던 배경을, 그리스 시대 이후의 민주주의 역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죠. 당시 살짝 흥분해서 남겼던 리뷰를 가져와봅니다. 선거에 대해 좋다 나쁘다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보완하거나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더 살펴보자는 겁니다. '최고의 지혜', '최고의 덕'을 가진 이들, 동료 시민보다 우위에 있는 이들을 뽑는게 선거라는 점도, '선택된 소수'는 견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도 새삼 다시 생각합니다.
우생님이 소개해준 책은 <다가오는 말들>. 은유 작가님 책입니다. '효리네 민박'에서 박보검 배우가 읽는 모습으로 화제였던 <쓰기의 말들> 그 작가님.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거의 읽지 않지만, 에세이야말로 글의 진검승부라 생각하는데 궁금하긴 합니다. 은유님 이름을 계속 스치고 있거든요. 에세이라고 해서 가볍고 편안하지만은 않다고요. 작가는 마사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을 인용해서, 공통의 인간성에 내재된 취약성을 인정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꼽았다는데, 인간은 취약하고 연약하고, 유약할 수 있고,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인정하는게 먼저라고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위에서 시작되는 거죠. 마사 누스바움의 저 책을 읽겠노라 작심한지 몇 년.. 책장에 고히 모셔놓고 있는데, 은유작가님을 먼저 읽는게 나을까요?
은희님이 소개해준 책은 <나의 비거니즘 만화>. 요즘 초등학생 5학년은 인권교육, 평화교육, 환경교육을 배우게 되고, 은희님 아이가 환경과 동물 문제를 탐구하면서 고른 만화책입니다. 460쪽 결코 얇지 않지만 내용은 술술. 그림은 엄청 귀여운데 내용은 그다지 귀엽지 않다고요ㅎ 재생에너지 비율이 50%에 육박하는 유럽과 달리 우리는 거의 원자력과 화력에 의존하고 있어 전기차조차 친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아이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려면 뭘 해야 할까 고민했고, 소고기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요. 이 만화를 통해 은희님 큰 아이는 비건이 됐고, 둘째는 고기를 좋아하지만 줄였답니다. 와중에 은희님은 키토비건 식으로 한 달 만에 6kg을 줄였다고 하셔서, 그게 더 궁금했지만 책수다 방이라 더 물어보지 못했... 무튼 책은 30분 만에 다 읽었는데, 다시 찾아보고 또 생각하는데 2주 더. [독서가와 행동가들]에서 벌써 3주나 비건 책을 다뤘다는 것도 기록해둡니다. 사회가 바뀌고 있어요. (고기주의자로서 점점 더 부끄러워지면 어쩌죠 ㅠㅠ)
원준님이 소개해주신 <초협력사회>는 '전쟁은 어떻게 협력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잇습니다. 원제는 'Ultrasociety: How 10,000 Years of War Made Humans the Greatest Cooperators on Earth'.
팔이 긴 사람이 싸울 때 유리했던 시절을 거쳐 활이 발명된 이후에야, 체격이 작은 이가 덩치 큰 이와 평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니. '초사회성(ultrasociality), 즉 큰 무리를 지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 이유를 밝혀낸' 책이라고 합니다. 50년 주기로 갈등이 심화되고, 그게 2020년 무렵으로 꼽혔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자세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어요. 뭘까요. 무튼 '인간을 협력하는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도, 엄청난 규모의 거대 국가를 만들면서 극도의 불평등의 시대를 연 것도, 그리고 또다시 모든 이들로 평등한 권리가 확대되기 시작한 것도 전쟁'이라니.
선거 이야기 나눌 때, 20대 여성이 언급됐습니다. 15%가 소수 정당에 투표한 집단이란 것도 사실 놀랍지만, 제 딸이 비혼을 예전보다 더 강력하게 선언했거든요.... 유리님은 이와 관련, 가네코 후미코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추천했습니다. 영화로 조금 알려졌지만, '박열의 동지이자 아내이며 조선을 사랑하고 일본 제국에 맞선 아나키스트'. 1903년에 태어난 그는 가부장제와 제국주의에 반발하며 19세때 박열과 동거를 시작했고, 함께 본격 아나키스트 활동에 나섰다가 20세에 투옥됩니다. 23세에 결국 옥중에서 숨졌습니다. 책은 재판에 참고가 될 만한 과거 경력을 써내라는 판사의 명에 따라 기록한 옥중수기로 사후에 출간됐다고요. '비상한 기억력과 문재 넘치는 묘사력으로 20세기 초반의 일본과 조선의 다양한 풍경과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는 책입니다.
매 순간 차별을 느끼는데, 그걸 증명까지 해야 할까? 유리님은 10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가네코 후미코의 고민에 공감했다고 했습니다. 태형님은 자신에 욕망에 충실했고 탁월했으나, 여성이라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점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를 연상시킨다고요.
20대 여성으로서 또래 남성과 젠더 갈등을 겪어보지 않은 여성은 없다는 유리님의 말이 깊게 남습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군에 복무하는 남성들의 사회적 박탈감과 반감이 그 제도 대신 20대 여성에게 향한다고요. 저는 남녀모두 '사회복무'하는 방식을 상상합니다. 군대 뿐 아니라 돌봄노동 등 대체복무까지 다양해지는 걸 전제로요. 모병제와 관련, 자기 선택으로 군에 가는 이들은 전쟁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한 원준님 설명도 인상적입니다.
일본 사회는 '여자력'이란 잣대로 여성성에 대한 희한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를 어제 써니에게 듣고 깜짝 놀랐는데, 가네코 후미코 같은 여성은 지우려 한다는 지적도 그냥 넘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항하는 이들이 왜 없었겠어요. 혜란님은 1920년대 일본 아나키스트 운동을 이끌었던 이의 일생을 담은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을 소개했습니다. 아나키즘의 저항정신을 용인하지 않았던 당시 일본에서 이분 역시 1923년 관동대지진 와중에 헌병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고요. 그의 죽음은 일본 아나키즘 운동의 불씨가 되었는데, 혜란님의 문제의식은 이래요. 역사는 이렇게 불씨가 되어 사라진 이들 대신 살아남은 자들의 시선으로 기록되는게 아닐까?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가들과 제국주의 사회의 아나키즘 운동가들. 잃을게 없는 이들은 무서울게 없이 싸웠고, 잃을게 많은 이들은 조심스럽게 사회 변화를 모색했는데, 우리가 아는 역사는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을까요. 당대에 위험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던 이들에 대해 이렇게 책이 남아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영화 <박열> 도입부에 나오는 노래가 월북 무용가 최승희가 직접 부른거란 에피소드도 놀랍습니다..
친구와 함께 [독서가와 행동가들]을 듣다가, 친구 아이폰 통해 등장하신 안드로이드폰 이용자 태희님. 일 잘하는데 관심 있는 이로서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와 <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필요 없는 일은 과감히 포기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시간을 쓰는 법, 실무에 더해 지식근로자의 주된 업무인 의사결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조언을 얻었다고요. 태희님이 피터 드러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피터 드러커의 경영책 외에 철학책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신 선생님 말씀 덕분이라니, 교육이란!
훌륭한 CEO로서 조직을 이끄는 태형님은 (의외로) 경영서적도 많이 탐독하셨는데, 지난 10~15년 나온 이런 종류의 책이 피터 드러커의 얘기들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레이 달리오가 강조하는 투명성 역시 피터가 다 얘기했던 것. 이후 데이터를 더 채우고 주제를 선명하게 한 책들의 뿌리가 피터 드러커에 있었다니, 이분야 책을 잘 모르는 제게는 재미난 사실입니다. 일은 곧 삶, CEO의 자세에 대한 언급도 흥미. 피터 드러커의 책은 제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주워들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래서 [독서가와 행동가들] 뭐 읽고 있니? 질문을 나누는게 재미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