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10시의 책수다. 예기치않게, 오늘은 묵직한 책들이 많이 나왔고, 이 모든 이야기들이 이어진다는 깨달음에 또 생각이 많아졌어요.
1, 2회 , 3회 , 4회, 5회, 6회, 7회, 8회 기록은 여기 있고요.
[독서가와 행동가들] 뭐 읽고 있니? epi 9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아주 평범한 사람들>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아이들의 계급투쟁> 브래디 미카코, <유럽의 죽음> 더글라스 머리, <우린 잘 있어요, 마석> 고영란, 이영,
<굿모닝 버마> 기 들릴, <세계는 왜 싸우는가> 김영미, <현장은 역사다> 정문태,
<아우스터리츠> W.G.제발트,
<홀> 김홍모, <1987 그날>, <사일구>, <빗창>, <아무리 얘기해도>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권김헌영
우연히 들어와, 막 읽기 시작한 책이라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꺼내주신 아름님. 영혼이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휘둘리지 않고 본질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만났다고요. 야근 많은 회사에서 괴물이 되는건 아닌가, 스스로를 찾기 위해 명상도 하고, 여행에서 자연의 섭리도 생각하고, 그렇게 만난 책이라니.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이 나치 수용소 시절을 돌아본 에세이라는데 번역자가 정신과의사 이시형님이네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사는게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때,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것 같을 때..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 맞다고요.
태형님은 이 책과 연결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추천했습니다. '자신이 목격하고 감내한 공포를 세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특유의 절제와 위트를 잃지 않는' 책. '그럼으로써 극한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과 생생히 마주하게 한다'는 책. 저는 레비의 다른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하나 밖에 못 봤지만, 여럿 보신 태형님의 원픽은 바로 이 책.
이어지는 배님의 추천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맞물릴텐데, 홀로코스트가 벌어지던 그 시절, 옆 마을에선 결혼식이 열리고, 학살도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되고.. 나치만의 범죄였다기보다, 공동범죄? 라는 의문이 떠오를법한 상황. 저자의 말에 이런게 있어요. ''학살자들의 이야기’ 같은 주제를 다루는 역사 서술은 관련자들을 단순히 악마적 존재로 규정하는 어떠한 시도도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고요. 학살자들이나, 이를 회피한 부대원 모두 인간. 동일한 상황에서 나도 어느쪽이든 될 수 있다는 걸 봐야 한다는 거죠. 동시에, 이해가 결코 용서는 아니라고요. 역사적으로 유대인 혐오는 주기적으로 발생했고, 나치 이전에 러시아의 포그롬 등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는 점에서, 개인의 혐오가 국가적 집단적 광기로 발현된 걸로 볼 수도 있다?
정훈님이 추천한 <랭스로 되돌아가다> 의미가 이쯤에서 더 커집니다. 코로나 이전 여행 다녀오신 랭스란 이름 덕에 고른 책이라지만, 푸코 평전 등을 낸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20살에 떠난 고향 랭스에 30년 만에 돌아가면서 쓴 에세이. 프랑스 국왕 대관식을 랭스 대성당에서 진행했을 정도로 유서깊은 도시 답게 보수적인 지역. 동성애자였던 저자에겐 배제와 차별의 도시였죠. 자신을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의 부음에도 찾지 않았던 고향입니다. 좌파 지식인인 저자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돌아보며 노동계급에 대한 자신의 혐오를 성찰합니다. 가까운 친척을 비롯해 예전에 공산당에 투표하던 이가 극우파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서, 지식인들 내면에 노동계급에 대한 혐오가 있던게 아닐까 살펴보게 되는거죠. 1981년 미테랑이 사회당 출신으로 처음 집권, 14년간 프랑스를 이끌었으나 사회당, 좌파의 이상에서 멀어져 경제, 사회 정책에서 타협했다는 지적은, 약자를 대변하지 않고 엘리트 부유층의 편이 되어버린 미국 민주당에 대한 분석과 겹칩니다...
여기서도, 이민자 혐오 얘기가 등장하죠.. 그렇다면, 유대인 박해를 비롯해 혐오와 차별이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있는 걸까요? 그런 경향을 통제한게 문명화 아니던가요? 태형님은 최애책 마이클 토마셀로의 <생각의 기원>을 인용, 협동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이 인종주의를 극복해왔다고 했습니다. 어떤 본성이 우세하냐 따질 문제는 아니고, 이것은 어떤 조건이냐의 문제라고요. 차별을 정당화하는게 기득권의 이익이 된다고 여기는 상황 같은게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과연 계급투쟁으로 진보정치가 성공을 거둔 이후, 정체성 정치라는 아젠다를 만나 전체적 사회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걸까요? 과거엔 십계명처럼 당연한게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원칙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내 생활이 시궁창인데 동성애자도 이민자도 다 괜찮다 할 수 있겠냐는 거죠. 개인의 욕망은 다양해지는데, 사회의 공동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이행기의 혼란일까요? 조너선 하이트 역시 롤스의 정의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거 아니냐는 얘기까지...와.. 듣다보니, 이건 새로운 사상가가 필요한 시점.
이쯤에서 거시적 이야기에 제동을 건 혜란님은 <아이들의 계급투쟁> 이란 책을 꺼냈습니다. 일본계 이민자로서 영국으로 건너간 브래디 미카코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서 2008~2010년 탁아소에서 일했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2015~2016년 다시 일합니다. 저자는 첫 시기를 '저변 탁아소 시절', 두번째 시기를 '긴축 탁아소 시절'로 칭합니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복지제도가 축소된 '긴축'이 어떻게 사람들을 피마르게 하는지,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제대로 살고 싶은 마음, 희망을 빼앗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고요.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면 미래의 빚이다, 나라 재정 다 써버리는게 아니냐며 불안을 부추기는 과정을 그 시절 영국이 겪었고요. 어려운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가워지고, 노골적 경멸을 숨기지 않게 됩니다..
혜란님은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푸드뱅크에서 식량을 지원받는 여주인공 장면에서, 재정긴축이 연약한 이들부터 무너뜨린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계급이 인종을 압도하고, 인종차별을 넘어선 계급차별이 노골적으로 일어나는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문제로군요.
정훈님은 'being poor is expensive'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과거 오바마 정부가 기저귀 지원 캠페인을 벌이게 된 배경은, 저소득층이 훨씬 비싸게 기저귀를 사기 때문이었다고요. 가장 싼 건 코스트코에서 벌크로 사거나, 아마존 최저가를 이용해야 하는데, 미국의 극빈층은 벌크로 사서 이동할 차도 없고, 아마존에서 구입할 신용카드도 없고, 택배 수령할 사람도 없고, 사실 벌크로 살 돈 자체가 없다고요.. 가난한 사람들이 더 합리적인건, 모든걸 다 계산해서 사야 하기 때문이라고요.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끝내 서로를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는 공동체의 저력을 그린다는데.. 음.
나리님이 마침 소개한 책은 <유럽의 죽음>. 영국의 저널리스트 더글러스 머리가 유럽의 이민 정책의 실패를 다룬 책인데요. 다문화를 추구하고, 노동력이 필요했던 영국이 대규모 이민자를 받으면서 겪는 부작용에 주목했나봐요. 대중의 반감도 문제인데다, 우리 경우에도 고숙련 노동자를 유치하겠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저숙련 노동자가 필요한 가운데 현실과 괴리된 이주정책이 목격된다고요. 미디어의 보도와 달리 국내 외국인 범죄는 그리 많지 않은데, 영국에서는 무슬림의 잔혹범죄 통계가 높게 나오는 것도 현실. 책 소개 보면, 2017년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생아 이름이 '무함마드'. 여성과 동성애 등에 대한 이민자들의 인식도 영국인과 다른 와중에 이민자 정책이 준비도 부족했고, 디테일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설명만 듣다보면, 무슬림 혐오를 다르게 포장한게 아닌가 싶은 띰띰함이 생기긴 하네요.
영국의 저널리스트 더글러스 머리가 유럽의 이민 정책의 실패를 다룬 책인데요. 다문화를 추구하고, 노동력이 필요했던 영국이 대규모 이민자를 받으면서 겪는 부작용에 주목했나봐요. 대중의 반감도 문제인데다, 우리 경우에도 고숙련 노동자를 유치하겠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저숙련 노동자가 필요한 가운데 현실과 괴리된 이주정책이 목격된다고요. 미디어의 보도와 달리 국내 외국인 범죄는 그리 많지 않은데, 영국에서는 무슬림의 잔혹범죄 통계가 높게 나오는 것도 현실. 책 소개 보면, 2017년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생아 이름이 '무함마드'. 여성과 동성애 등에 대한 이민자들의 인식도 영국인과 다른 와중에 이민자 정책이 준비도 부족했고, 디테일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설명만 듣다보면, 무슬림 혐오를 다르게 포장한게 아닌가 싶은 띰띰함이 생기긴 하네요. 이민자를 성공적으로 컨트롤한 나라로 캐나다가 꼽히긴 하는데, 그쪽도 중국인 이민자가 너무 늘면서 최근 고민. 미국도 이민자의 나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1920년대 이후 이민자 쿼터제를 유지해 유럽인은 잘 받고, 상대적 소수인 아시안은 배척한 과거가 있군요.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5년 이민법을 개정하기 전까지요. 외국인 노동자 많은 싱가폴은 거의 노예 취급한다는 문제가 있고, 곳곳에서 현재진행형.
혜란님은 <우린 잘 있어요, 마석> 을 소개해줬어요. 국내 최대 가구공단이 있는 마석에 이주노동자 800여명이 모여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들의 자리가 원래 한센인 마을이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책은 이주노동자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그려냈다고요. 참 쉽지 않은게, 책 속 사진에 등장하는 분은 이미 본국 송환된 경우 등이라네요. 얼굴 드러내는 것도 누군가에겐 리스크 맞죠. '보이지 않는 이주노동자'의 이야기, 일상을 생생하게 관찰해 기록했다는 점에서 귀한 책이네요.
뭔가 홀로코스트 기록부터, 차별과 혐오, 이민자 얘기까지 계속 이어지는 토요일 밤 책 수다에서 피봇은 태형님의 몫. <굿모닝 버마>.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하는 부인을 따라 만화를 그린 저자의 그래픽 노블. 분쟁지역 르포르타쥐는 조 사코 작품 처럼 참혹하게 그려내는 경우도 많은데, 이분은 약간 생활툰. 자연스러운 일상의 에피소드에 그 나라 이야기를 살짝 녹여내는 솜씨가 무척 좋다네요. <굿모닝 예루살렘>, <평양> 같은 책도 내셨군요!
분쟁지역 기록? 혜란님은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전쟁과 평화 연대기'라는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추천하셨고, 저는 정문태님의 <현장은 역사다> 추천. 오래된 리뷰 가져와봅니다.
https://jjlog.tistory.com/66
원준님은 패티 스미스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W.G.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 를 추천했습니다. 아름답다는 표현 만으로는 부족한, 장중한 문장이 이어진다고요. 그래서 가져와봤습니다.
'속이 메스꺼워져서,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가끔씩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 모두가 비슷하게 군청색 양복을 입고 줄무늬 셔츠와 번쩍거리는 넥타이를 매고 이 초저녁 시간에 그들의 익숙한 술집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 도시의 금광에서 나온 노동자들을 잠시동안 관찰했는데, 어떤 우화에도 기술되지 않은 이 동물류의 수수께끼 같은 습관, 이를테면 서로 밀착해 서 있는 모습과 반쯤은 사교적이고 반쯤은 공격적인 태도, 잔을 비울 때면 식도를 드러내는 것, 점점 더 흥분해 가는 뒤섞인 목소리들, 이 사람 저 사람이 갑작스럽게 넘어지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 갑자기 흥청거리는 무리의 가장자리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내가 그 순간 알아차렸던 것처럼 거의 20년 동안 보지 못한 바로 그 사람, 아우스터리츠였다.' (46쪽)
이게 한 문장이라니. 이런 글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만든다는 건, 진짜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죠. 2001년에 나와서 극찬 받은 책인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저자가 그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군요. 뭐랄까, 알지 못했던 작가를 알게 된 밤.
저의 오늘 선택은 <홀>. 부제는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입니다. 어제 책을 받고서, 잠시 멈칫했어요. 7년 전, 날마다 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뉴스를 챙겨보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같이 슬퍼하는 것 외엔 할게 없던 시절처럼,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않을 수 밖에 없잖아요.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이들을 구했으나, 더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로 고통받았던 김동수 씨의 실화를 담은 그래픽노블입니다. 그의 가족을 만나고, 그의 이야기, 두 딸, 부인의 입장의 이야기를 같이 엮었어요. 뭐랄까, 글쓰고 그린 김홍모님도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었나보다 싶어요. 기억하고, 같이 보는 것이 저로서는 최선이네요. 책이 출간되도록 도운 1000여명의 이름이 앞뒤 표지 안쪽에 빼곡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고통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김홍모 님의 또다른 작품 <빗창>을 비롯해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 추천도 당연히 이어졌습니다. 보신 분들이 많은건지, 그런 분들이 토요일 밤 책 얘기를 나누고 있는건지.
망고님의 추천은 권김현영님의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여러 글을 통해 페미니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데, 2009~2015년 무렵에 언론사에선 여성면이 사라지고, 뭐랄까, 페미니즘이 지워졌던 시기를 발견한게 오히려 다른 포인트. 망고님은 이런저런 백래시 현상을 보면, 아무도 젠더를 말하지 않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걸 생각하게 됐다고요. 다시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가 된 2015년 무렵의 사건이 메갈리아 였다니... 이 책은 정말 잘 쓰여져서, 중년의 남자에게도 권할만 하다고요. 제가 예전에 중년 남자에게 권하는 페미니즘 책을 물었던걸 기억해주셔서 감사한데, 전 요즘 20대 남자에게 권할 책도 궁금합니다. 이건 다음주 [독서가와 행동가들]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