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대한민국 산업역군, 충남 브라더스

by UX Writing Lab

브런치 매거진 연재: 30년대생 아빠 이야기


1. 30년대생 아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2. 논산 총각의 어린 시절 / 3. 60년대 대한민국 혼담사 1 / 4. 60년대 대한민국 혼담사 2 / 5. 60년대 대한민국 혼담사 3 / 6. 70년대 세운상가 비즈니스






60~70 년대 충남 전기가 활황을 이어가면서 아빠의 회사에는 계속 사람이 필요했다.



재료 구매하고 제품 만들고, 회계 경리에, 일과 가정이 분리되지 않고 밤낮으로 돌아가는 사업이었던 관계로 가장 중요하게 사람들의 식사와 가정일을 함께 해 줄 사람까지 아빠처럼 풀타임으로 매달려 일할 사람이 끝도 없이 필요했다.



이 때가 외할아버지의 용인술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아빠가 이스라엘의 삼백 전사에 뺨치는 정예 일꾼들과 함께 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충남 전기는 시골에서 올라온 처녀 총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일을 시키고 월급을 주었다.



척박한 60 년대, 시대는 바야흐로 변화하고 있고, 자식들은 나보다 더 뛰어나길 바라며 여느 시절 한국 부모님이나 마찬가지로 어떤 희생도 감수하며 자식 뒷바라지에 만전을 기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첨단 기술"을 배우면서 기업을 경험하고 게다가 월급에 숙식까지 제공한다니 지금으로 치면 해외 MBA를 돈 받고 거처 제공받으며 수료할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가 아니던가!



논산에서 별 입지없이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시던 친할아버지와 다르게 연산골에서 확고한 입지와 명성을 확보하던 '동네 어른'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이것을 '동네 청년을 살리고 아빠의 기업을 살리는' 기회라고 보셨다.



사위와 딸의 사업체에 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알고는 외할아버지는 동네의 알토란같은 청년들을 뽑아 서울로 올려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사위, 며느리를 고르던 엄격한 시선으로 충남 전기에서 일할 직원을 골랐고, 마을에서 제일 성실하고, 영리하고, 예의 바르고, 의욕이 넘치는 어린 청년들만 뽑아서 올려 보내셨다.



외할아버지가 인재 채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눈치챈 마을 사람들은 서울 드림을 성취하기 위해 외할아버지께 구직 청탁을 했다.



딸부잣집에 아들 하나인 외할아버지의 남동생 가족이 한 마을에 살았는데, 아들 하나라고 애지중지하고 키웠는지 그 아들의 됨됨이가 문제가 많았던가 보다. 그 아들을 어떻게든 정신차리게 하려던 외할아버지의 동생분은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부탁을 하셨다.



"우리 아들 좀 정신차리게 서울로 보내주소. 조카 인생 좀 구한다 셈치고 보내주면 안되겠소...."

"사위가 나를 믿고 채용을 부탁하는 건데 내가 그런 아이를 보내면 사위한테 체면이 뭐가 되겠니. 다른 애는 몰라도 갸는 절대 안된다"



이렇게 외할아버지는 멀리 사는 사위의 사업과 안녕을 위해서라면 매일 한동네에서 마주치는 동생과 의절을 감수할 정도로 대쪽같은 분이셨다.



결국 외할아버지가 보는 눈이 정확했던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게 거절당한 거부감 때문인지 청탁을 받았던 그 조카분은 그 많은 재산을 받아서 술 마시고, 여행하고, 여자 만나는 데 다 날려버리고 지금은 누나, 가족과도 의절하고 병들고 늙어 혼자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만이 흉흉하다.




IMG_0800.JPG 시멘트와 양철 지붕으로 을씨년스러워 보이지만 나무 아래 평상만 하나 있을 때보다 햇빛 피하지, 비 피하지 저렴하게 깔깔대며 커피 마시기 좋아하는



IMG_0797.JPG 궁골 아줌마들에게 스타벅스보다 더 즐거운 만남의 광장









한편 캘리포니아 드림 아메리카 드림 뺨치는 서울 드림을 꿈꾸며 서울로 올라온 알토란같은 우리의 연산 처녀 총각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뽑기 위해 정말 알토란같은 행실로 한국의 산업 역군이자 충남 전기의 역군이 되었다.



남자들 뿐만 아니라 착실하고 어린 젊은 여자들도 많이 올려 보냈는데, 여성을 함부로 외지로 보내서는 절대 안되는 시절 여성의 안전을 책임지고 보증한다는 아빠와 엄마의 신용을 믿고 어린 여자들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엄마의 남동생인 내 외삼촌은 가구를 배우다 가구에서 가능성을 못봤던 우리 아빠처럼 사진을 배우다 사진에서 가능성을 못보고 통신일을 배우겠다고 합류한 이 당시의 알토란 멤버이다.



엄마 아빠는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참 열심히 일했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밥만 먹으면 일을 했는데 모두들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해줬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성과가 보여서 다들 신이 났지"


하신다.



한참 피끓고 성실하고 알토란같은 처녀 총각들이 모였으니 눈맞는 처녀 총각도 여럿 생겨서 같이 일하다 결혼해서 독립한 일가도 여럿이다.



삼청동, 서촌, 가회동, 계동에 밀리고 밀려 있다가 요즘에서야 핫하게 부상하는, 좀더 넓은 집으로 가고자 이사한 아빠의 권농동 집에는 한 지붕 아래 속속 살림을 차리는 가족들로 인해 우리 오빠의 동갑내기 친구들이 한 해에 세 명이나 태어나는 이 당시나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난다.



아빠는 자기를 믿고 올라와준 고마운 처녀 총각들에게 아마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거나 "너희들 덕에 우리 회사가 이렇게 보탬이 되는구나" 라는 말 따위는 한 마디도 안했을 것 같지만 이 처녀 총각들에게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셨는지 자기 밑에서 일하다 결혼을 하거나, 독립해서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소박하게 살 집과 소소한 자금을 챙겨서 내보내셨다.



결국 외할아버지의 사람을 보는 눈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인지 이 때 알토란같았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불평없이 최선을 다해 일했던 모양이고, 나중에는 자기 사업체로 독립을 해서 아직까지 성공적인 사업체들을 이끌고 계신다.




이 때를 그리며 결성된 모임이 "충우회"이다

충남의 충, 친구 우




단순 명료한 네이밍의 극치이다.



충우회는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받기만 하세요" 라고 권한을 규정한 명예 회장인 우리 엄마 아빠를 주축으로 해서 이 때 충남 전기에서 일을 배워 나가서 성공하고, 아빠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든 친목 모임이다.



몇 해 전 팔순을 치룬 아빠에 비해 한참이나 팔팔한 60대, 70 대 분들인데 "왕회장님이 정신만 있으면 업고라도 다닐테니 꼭 오세요" 라고 말씀하시는 의리의 용사들이다.



1년에 몇 번씩 만나 등산을 하기도, 좋은 곳에 놀러가기도, 맛있는 곳을 찾아가기도 하는데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모임은 꼭 챙겨가고, 갈 때마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아 엄마 아빠의 기분을 한껏 들뜨게 만드는 모임이다.








사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에 길을 보여주고, 길을 갈 수 있도록 안식처를 제공해 주고, 그 이후에도 잘 가라고 자리를 잡아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이제는 잘 알 것 같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위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빠는 이 일을 묵묵히 했던 것이고, 이걸로 누구에게든 잰체 한번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때 많이 못챙겨줘서 미안해 미안해" 하신다.



아빠의 인생은 주변 사람들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차 있고, 누구에게든 조금이라도 받을라치면 심한 알레르기라도 걸린 것처럼 심하게 거부하신다. 아빠가 평생 메고 있는 장남의 무게, 가장의 무게는 이렇게 아빠를 평생 짓눌러 왔다.



아빠는 아무 대가없이 많은 사람에게 이런 기회를 주었는데, 어릴 적부터 아무 대가없이 편안한 삶을 제공받았던 우리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아빠 엄마의 피땀어린 노력이 뒤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아마 아빠의 곁을 스쳐가면서 아빠가 도움의 손길을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자식들처럼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 같고, 남을 책임지는 걸 당연한 소명으로 아는 아빠는 그것에 조금도 섭섭해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덤덤하게 받아들이신 것 같다.



그런데 이 충우회 청년들은 '왕회장'님의 은혜를 백골이 난망하도록 감사해 하고, '왕회장'님 덕에 이렇게 클 수 있었다고 아끼지 않고 떠받들어 주니 아빠가 얼마나 보람을 느낄지, 얼마나 애정을 느낄지 말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평생을 짓누르는 장남의 무게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벗어날 생각도 없는 아빠다. 누가 "이제 그 부담감 내려 놓고 이제 받기도 하면서 자신을 위해서 사세요" 라고 충고한들 아빠가 바뀔까...



바뀌게 하는 게 아빠를 위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평생 내가 살아온 아이덴티티를 일순간에 벗어던지고 행복할 리가 없잖아.



오히려




장남으로 정말 열심히 살아오신 것을 잘 압니다.
당신의 노력 덕분에 우리 모두 다 공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리 잡은 것은 다 당신의 공입니다.
열심히 살아주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아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감사하는 게 더 아빠를 위하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 일을 우리의 충남 브라더스께서 흘룽하게 해주고 계신 것이다.



세상에는 의외로 주변에서 도움 받고 고맙다, 폐를 끼쳐 미안하다, 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



이건 작지만 아주 큰 됨됨이다. 도움을 줘본 적이 없으니 도움을 받아도 고마운 줄 모르는 것이고, 항상 폐를 끼치고 살았으니 미안한 짓을 하고도 미안한 줄 모른다.



조금만 줘도 고마워하는데 그 사람의 편이 안되어 줄 수가 있을까. 조금 잘못하고도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용서하지 않고 베길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고마워하고, 미안해 할 줄 아는 사람만 성공을 한다.



아빠는 "고생만 많이 시키고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되뇌이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알토란같은 처녀 총각들은아빠의 선의를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왜 월급을 더 많이 못줘"

"일을 왜 이렇게 많이 시켜"

"중요한 일은 안시키고 왜 이렇게 허드렛일만 시켜"

“이 나라의 노동자는 왜 이렇게 참담해”



라는 불만 따위는 입 밖에 내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에게 기회의 마당을 제공한 것을 지금까지도 뼈에 사무치게 감사하고 그다지 호화롭지 않았을 그 상황에서도 ‘남의 일을 해주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내 일을 하는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일하고 배웠으며, 자신들의 노력이 그렇게 뒷받침 되었음에도 다 왕회장님 덕이라며, 평생 그 은혜를 나눠 갚겠다고 자처하고 나서는 분들이다.



이렇게 자세와 마인드가 훌륭한 분들이었으니 아마 충남 전기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디에서 무얼 하던 분명히 성공했겠다 싶다.



아빠는 “밥 먹이면 일만 시켰어. 더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하지만 아빠의 미안함 따위는 충남 브라더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아빠가 어느 정도의 기반을 잡아주기는 했을 테지만 결정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그 분들의 풍요롭고 성공적인 오늘을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아빠의 뿌듯함과 보람을 담당해 주시는 충남 브라더스에게 엄마 아빠를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운을 읽는 변호사"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은 악하고 영민하게 굴어야 잘 된다고 생각하는데
변호사 일을 오래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바보같아 보여도 묵묵하게, 정직하게, 성실한 사람이
결국에는 성공하였습니다.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고 선행을 하면
선행이 아닙니다. 대가없이 하는 선행은 쌓이고 쌓여
결국 나의 운이자 복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에서 정확하게 아빠의 인생을 보았다.




아직도 우리 자식들은 부모님이 논산에서 공수해 주시는 최고의 우리 농산물을 받아먹고 식구가 많아 밥값이 많이 나올라치면 아빠가 먼저 계산하고 팔순 엄마 아빠가 뼈빠지게 담그신 김치 받아먹지만 평생을 대가 없이 주변 사람을 보살피고 챙기며 살아온 아빠는 존경하고 고마워 죽겠다고 이렇게 글 올리는 딸래미부터 업고라도 다닐테니 정신만 멀쩡하면 나오라는 충우회 형제들, 아빠보다 더한 우리 오빠라며 "세상 좋은 펜션(엄마 기준이다) 은 다 직접 예약해서 데려다 준다"는 고모들까지 아빠의 조건없는 보살핌은 세월이 흐르면서 쌓이고 쌓여 이렇게 아빠의 운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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