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나는 열정이 있는 삶을 원한다.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자유롭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의 마지막 여정까지, 그렇게 철이 덜 난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 내 삶에 단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사는 게 나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의 길, p.10)
<후불제 민주주의>가 유시민 작가의 정치에 대한 신념이자 왜 자유주의자로 살고 싶은가를 이야기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는 유시민 작가 개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의 상대 패널이자 <잡초와 우상>을 쓴 전원책 변호사는 플라톤주의자이자 냉소주의적인 면을 보였다. 유시민 작가는 이와 반대로 실존주의자처럼 읽혔다. 특히, <이방인>과 <페스트>를 쓴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트 카뮈의 사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나는 느꼈다.
살아있는 것은 죽은 것이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훌륭할 수 없다.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의 길, p.49)
유시민 작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베르트 카뮈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한다. 알베르트 카뮈를 이해하면 실존주의자가 삶을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카뮈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것은 바로 <시지프스 신화>를 이해해야 한다. 시지프스는 신들에게 미움을 받아 하계에서 끝없이 돌을 산 위로 올려야 한다. 끙끙대면서 돌을 위로 올리면 산 정상에서 돌은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시지프스는 그 돌을 다시 산 정상으로 올리고 또 돌은 떨어진다. 이렇게 무한히 받는 형벌이 시지프스의 형벌이다. 시지프스의 비극은 언제 시작될까? 사실, 몸이 힘들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시지프스의 비극은 돌이 산 정상에서 떨어지고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시지프스는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자신이 삽질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영원히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다시 돌을 끌어 올릴려고 내려가는 순간 시지프스는 자기 실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시지프스는 이 형벌을 이겨내려고 한다. 그는 생각을 고쳐 먹는다. 이 형벌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시지프스가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의 형벌은 더이상 형벌이 아니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트 카뮈 모두 인간이란 존재를 재밌게 보았다. 인간은 아무 의미 없이 우연의 일치로 태어난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어떤 의미나 소명도 없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는 인간이 시지프스라고 생각한다. 무의미한 삽질을 계속하는 존재로 보았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은 자살하는 것이 옳아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삶의 의미를 자신에게서 찾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나의 실존은 조금씩 완성이 되어 간다. 내가 글 쓰는 것을 잘한다면 글쓰는 일을 하면 된다. 인간은 절대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인간이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바로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아무 의미도 없고 흉측한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죽기 때문이다. 죽기 때문에 삶에 대한 몸부림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글을 읽으면 그는 실존주의자가 맞다.
일하라 : 내가 행복한 일을 해라!
나는 글을 쓴다. 이것이 내 일이다. 내게 글쓰기는 단순히 생업이 아니다. 글을 써서 내 생각과 내가 가진 정보를 남들과 나누는 행위 그 자체가 즐겁고 기쁘다.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의 길, p.156)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의 길, p.166)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자신이 일을 할 때 행복한 일을 선택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대한민국은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는 나라가 아니다. 나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선택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아파트의 이웃 사촌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집은 부유하고 아버지 또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삶을 보면 불쌍해 보인다. 초등학교를 다녀오면 아이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학원을 간다. 그리고 10시 쯤 집에 귀가하는 것을 본다. 나는 예언가는 아니지만 그 아이의 미래가 그려진다. 중학교 때는 외고나 특목고에 가기 위해 학원을 다닐 것이고, 고등학생이 되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학점을 따려고 경쟁하고 취업 준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직장을 잡을 것이다. 나는 예언가여서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한 태양이 우리를 계속 밀어 붙일 뿐이다.
유시민 작가의 삶도 처음부터 주체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학생 운동을 할 때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부조리한 사회가 그의 뺨을 때렸기 때문에 학생 운동을 했었다.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유시민 작가는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조언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말이다. 자신에 대한 질문 속에서 개인의 실존은 깨어나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병적으로 일을 하며 자신을 돌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벌레가 되고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신체와 감정에 대해 고민을 한다. 특히 한국에서 사회의 시선은 공포의 대상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개목줄을 달고 우리를 끌어댄다. 어쩌면 그 누구도 사회의 부조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차이는 클 것이다. 이 문제는 바로 주체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평생 타자로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놀아라 : 일을 열심히 하면서 잘 놀아라!
놀이는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행복한 삶의 핵심 요소이다.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의 길, p.199)
놀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노는 것은 삶의 행복감을 주는 요소다. 가끔 친구랑 머리를 식힐 겸 PC방에 가면 무섭다. 욕설이 난무한다. 게임이라는 것은 삶의 여유를 가지고 머리를 식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게임의 캐릭터와 자신을 일체시키고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을 원한다. 승리하지 못하면 상대방 선수를 욕하거나 우리 팀에서 트롤링을 한 사람에게 욕을 퍼붓는다. 한국은 놀이 또한 경쟁의 연장선이다. 놀이를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우리는 경쟁적이다. 어떻게 보면 일이나 놀이나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외국인은 맥주 한 잔을 이야기하며 한 두 시간을 먹지만 우리는 30분이면 소주 한 병을 비운다. 우리는 즐기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서 마신다. 나는 유시민 작가가 놀이가 행복을 추구한다는데서 처음에는 의아해 했다. 그런데 큰 맥락에서 보면 놀이는 곧 일이다. 크라잉넛이나 김연아 선수의 예를 들면서 그들은 일을 하지만 즐긴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피겨스케이팅을 일로 하지만 그 일 속에는 놀이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것은 우리의 일이 놀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놀이에서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즐길 수 있는 법을 배워야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왔을 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라 :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라!
성적 교감 위에서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껴안고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절대고독을 벗어날 수 있다.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의 길, p.206)
유시민 작가는 진화론에 관심이 많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나 뇌과학에 관심이 많다. 유시민 작가는 인간을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 존재로 보았다. 앞에 말한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은 이기적인 욕망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제는 인간이 이타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 고독감을 느낀다. '혼밥'이나 '혼술'을 먹고 마시는 것이 마치 담배 피는 것과 같이 건강에 안 좋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평생을 두고 해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중 하나는 연애의 종착역은 결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뭔가 슬프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더 좋아한다. 연애의 중간에 결혼이 있다는 것 말이다. 연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 최초의 이타적 행위일 것이다. 연애를 하다보면 내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상대를 향해 계속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연애이며 배려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랑이라는 관문을 넘어서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옆에서 그래도 사랑받을 만한 사람도 사랑을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인가?
연대하라 : 연대 속에서 깊은 유대를 만들어라!
개인의 생존하는 데는 사회적 결속과 유대, 상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기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감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타인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의 길, p.248)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고 이해한다. (어떻게 살것인가, 생각의 길, p.249)
이타적 행위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연대를 한다. 2016년 연말부터 시작되었던 광화문 촛불집회가 생각난다. 사실, 그런 집회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던 나로서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민중총궐기 대회라는 민노총이 마음에 안들었고 그들이 주체를 한다고 해서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나갔다. 나같이 시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당연히 민노총이 주도를 하려 했지만 시민들은 그 이야기를 씹었다. 2차, 3차, 4차, 5차 집회를 나가면서 집회의 중심에는 시민들이 있었을 뿐이다. 군중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많은 것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다칠까봐 길을 안내하던 어르신, 아이에게 왜 광장에 나왔는지 설명하는 아버지,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 사진을 찍어주던 경찰관 아저씨...... 그동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 닳고 닳았던 내 마음에 뜨거운 그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었다. 남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입장을 살피며 사회의 최약자층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유시민 작가가 바라보는 연대이자 세상의 '진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우리가 삶을 영위하면서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죽기 직전에 파티를 열고 싶어한다.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틀고 즐기는 파티말이다. 웃기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심도 있는 고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자신을 돌아 볼 때 '나 벤츠 몰았고 지금 금고에는 100억이 있어'라고 말한다면 끔찍할 것 같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벤츠나 100억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죽기 직전에 무엇이 내 옆에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 아닐까? 유시민 작가가 파티를 연다는 것은 자신 삶을 영위하게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추억이다. 우리는 우리가 죽는 모습을 상상하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에게 좋은 스승이다. 우리가 어떻게 죽을지를 정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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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목차입니다!!!!!!!!!
오늘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어쩌면 어제였나, 나는 모르겠다.
서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12 압구정동 :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중입니다
22 강남대성학원 : 답을 잘 찍는 사람이야말로 승자다
30 N타워 : 나는 죽지만… 너는 살아… 왜냐하면…
38 신촌 : 아프니까 왜 청춘이냐
46 강남역 : 아침에는 영어 학원으로
54 경복궁 : 설현은 안중근 의사를 몰라서 눈물을 흘렸어
61 대학로 : 김제동의 농담
68 한국은행 : IMF 이후 한국에 등장한 근대적 인간들
75 KBS 방송국 : 셀카 찍는 사람들의 고독
83 광화문 교보문고 : 1년에 한권도 읽기 힘든 당신에게
서울 속의 우리에 관하여
94 강남역 : 무차별 살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102 K-Star Road : 대중들은 아이돌을 고르느라 샤샤샤
109 종로 3가 : 어느 개저씨의 죽음
116 잠실 롯데월드 : 헬리콥터 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124 쉑쉑버거 강남역점 : 힐링사회의 그늘
132 청담동 유흥업소들 : 강남패치와 희생양
140 홍익대학교 : 홍대 앞에 나타난 거대한 일베 조각상
147 서울시립미술관 : 이게 미술이냐
153 선릉역 : 결국엔 무엇이 남을까
162 광화문 광장 :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을 보다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174 서울대학교 : 대학은 학문하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181 구룡마을 : 인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나라
188 삼성동 한전 부지 :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권리가 있다
195 JTBC 방송국 : 직업으로서의 기자, 소명으로서의 기자
202 여의도 국회 의사당 : 시인이 정치인이 되는 사회
209 여의도 증권가 : 한국형 블랙프라이데이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217 서초동 사랑의 교회 : 사랑의 그 무게
225 서초동 대법원 : 나의 위선의 가면이 진실된 가면이 되길
232 신림동 : 국민을 광인이라고 배제시키지 말라
240 서울시청 앞 광장 : 나에겐…… 우리에겐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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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 페널의 저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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