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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Apr 03. 2024

독버섯

풀을 응시했다

자연에 대한 감상과 자연은 무관하다

풀은 쓰러졌다

뒤에서 솟아난 아카시아 나무 그늘에 가려

가시에 찔려 아침마다 짙은 안개에 눌려

무거운 정오의 열기에 늘어난 체중을 못 견디고

쓰러지고 만 것이다 색 바랜 풀잎에 관한

내 관찰은 변함없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음지 한편에 움튼 버섯을 본다

태초부터 품었던 공기 입자처럼 가볍고 진지한

죽음이 한적한 무게로 자리 잡는다

깊숙이 뿌리를 머리부터 사로잡는다


문득 나는 부른다

세포 분열 이전부터 선취한

분해될 수 없는 삶과 죽음을

흙속에 간직해 두었던 말들과

단조롭게 계속되는 속삭임과 비명 소리를

나는 듣는다

왕성한 번식력은 아니다

역사의 크고 작은 대량학살

그 모든 자양분을 흡수했다 해도

버섯 하나 키워낼 수 없었다

문득 나는 도취된다

향기를 눈치 채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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