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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24. 2024

거미집으로의 초대

검은 비닐봉지로 둘둘 말린 몸

차분하게

구겨진 신문 속으로 발목을 집어넣는다

청소부의 빗자루가 가로등이 켜 놓은 어둠을 쓸며 지나갔다


번데기 밖으로 천천히 터져 나오는 더듬이


가로수가 보이는 무인카페

하나씩 둘 씩 거미들이 모여든다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모든 종류의 임시 서명과 반복되는 동의의 동어반복으로

와이어드한 도시는 연결된다


위조한 신분증 조악하게 합성한 포트폴리오

검은색 거울 앞

인형처럼 단장한 마네킹들

참가비는 첫 회 무료

나이 무제한 계산은 선불

목소리 없는 가수를 선발하기 위한 짧은 오디션

모두가 확고한 취향의 심사위원


가느다란 실밥 하나 살갗을 뚫고 나온다

거울 표면에 닿자 구부러지고,

현란한 조명을 받은 익명의 눈들

기뻐하는 입술과 무명의 사타구니를

통증 없이 연결한다


시간당 8만 원 페이에 눈을 잃고 세계를 발견한다

안대를 두른 헝클어진 머릿다발

이빨을 박아 제 피를 빤다 실을 잣는다

누에고치처럼 몇 개를 전리품처럼 달고

환한 스마트폰 조명에 비친

일그러진 입술 거친 피부결


버려진 것들로 탑을 쌓고

조용히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밤

가느다란 섬광 또는 불꽃놀이

언제나 함께 해요 나의 친구들

먹먹한 웃음소리

술과 꿀이 발라진 복도

끝날 것 같지 않은 대기열


한참 후

화석이 발굴되었다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쓸쓸한 도시의 풍경이 이어지고

가로수가 보이는 무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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