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Jul 22. 2020

카페에서 명이나물을 판다고요?

반찬을 파는 게 흉은 아니잖아요.


얼마 전 시내로 향하는 사거리 모퉁이에서 벽면 가득 강아지 옷이 걸린 가게를 보았다. 그런데 이 가게, 좀 이상하다. 강아지 옷 옆에 성인 여성의 옷이 진열되어 있다. 게다가 쇼윈도 쪽에 주르륵 놓인 샌들까지.


여기는 강아지 옷 가게인가, 사람 옷 가게인가?

 

정체가 불분명한 가게였다. 물건의 양으로 보면 사람 옷과 신발을 곁들여 파는 강아지 의류 매장 같았다.      


강아지 옷과 사람 옷, 신발까지 함께 파는 이 가게의 이름은, 알고보니  '강아지 의상실'


이 혼란스러운 가게의 목적은 당연히 매출 상승일 것이다. 만화가게에서 라면과 떡볶이를 팔고, 카페에서 브런치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한 가지 주력 상품군만으로는 매출을 올리기 쉽지 않으니 이것저것 팔아보는 것이다. 막국수집에서 왜 두부과자와 고추장을 팔고, 주꾸미 식당에서 주꾸미 피자세트를 내놓았겠는가. 개인으로 치면 본업 외에 대리운전이나 과외 같은 투잡을 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우리가 오래된 과 수제비누, 도자기와 친환경 과자, 맥주에 이어 백반까지 카페스럽지 않은 메뉴를 닥치는 대로 팔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월 매출 9만 원 카페가 적자에 대처하는 법

 

(좌)매출을 올리기 위해 카운터앞에서 과자를 파는 식당들. (우)우리도 과자를 팔아보았지만, 손님에게 팔리는 것보단 운영위원들이 간식으로 더 사먹게 되면서 판매를 중단했다.

     

지역사회 감염 예방을 위해 문을 닫은 4월 중순. 마을카페에 마스크를 낀 다섯 명의 운영위원이 띄엄띄엄 앉아 회의를 할 때였다. 운영위원 중 가장 막내인 삼십 대 후반의 J가 반찬을 팔아보자며 말을 꺼냈다.  

    

마을카페가 어렵다니까 친정엄마가 명이나물을 담가 주시겠다고 해요. 한번 팔아보라고.”      


우리가 반찬가게도 아니고, 갑자기 반찬을 팔다니. 마음은 고마우나 반찬까지 파는 건 조금 생뚱맞은 제안 같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소모임이 중단된 지 어언 2개월. 예상치 못했던 바이러스의 대유행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일상을 나누고 소통하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인 마을카페에게 지속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은 문을 닫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단순히 음료나 음식을 파는 가게라면 어떻게든 문을 열고 장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요 활동과 매출처는 바로 소모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 간 거리를 두고, 대화는 자제하라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문자가 오는 판에 “그까짓 모임 안 하면 죽냐?”는 비난이 쇄도하는 소모임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혹시 모를 지역사회에서의 감염을 우려해 올해 3월 새 학기와 더불어 시작했어야 할 모든 소모임의 홍보와 운영을 중단했다. 그렇잖아도 매달매달 겨우 버텨나가는 마을카페에게 코로나와 함께 도래한 비대면 사회는 지속적인 운영을 불투명하게 하는 커다란 시한폭탄이 되었다.      


모임이 없으니 소모임 회비도 걷을 수 없고, 주민들이 오질 않으니 음료도 팔지 못하는 상태로 상반기를 보낸 우리로서는 당장 문을 닫지 않고 버티려면 뭐라도 팔아야 했다.


회의 도중 인터넷에 파는 명이나물 가격을 검색해보았다. 값이 꽤 나간다. J의 친정어머니께서 1kg짜리 통에 포장해서 보내준다고 하셨는데, 그 정도면 2만 원은 받아야 할 금액이었다. 2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에서 2만 원짜리 명이나물이 과연 팔릴까?


그때 J가 덧붙였다.      


“첫 잎을 따서 만드는 거라 연할 거래요.”  


사실 강원도에서 텃밭을 가꾸며 손수 장까지 담그는 J의 친정어머니 솜씨는 이미 여러 번 얻어먹어 본 반찬들로 익히 알던 터였다. 운영위원회의 맏언니 격인 S언니도 한번 팔아보자며 거든다.


“명이나물이 비싸도 사 먹는 사람은 다 사 먹어.”  


가장 연한 첫 잎을 따다가 손수 담가 주시는 명이나물이라.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반찬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많을 테니 주문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 않을까. 안 팔리면 그만이지만, 굳이 팔아보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매출을 올리고 월세를 낼 수만 있다면. 반찬을 파는 게 무슨 흉이라고! 몸에 해로운 음식을 파는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우리가 티라미수나 치즈케이크를 파는 디저트 카페도 아니고.


그렇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명확한 자기 인식과 함께 명이나물을 팔아보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수량마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 끌고 나간 12척의 배를 상기시키는 12통. 왠지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밴드에 비대면 문 앞 배달을 공지하고 SNS로 주문을 받았다.


'가장 연한 첫 잎을 따다가 집에서 손수 담근 친정엄마표 명이나물 판매합니다'


자원활동을 하는 카페 운영위원 J의 친정어머니께서 가장 연찬 첫 잎을 따다 집에서 소수 담궈 보내주신 12통의 명이나물.


S언니의 예상은 적확했다. 12통의 명이나물이 완판 된 것이다. 많지 않은 수량인 데다 정성이 가득한 반찬인 덕분이었다.


택배로 도착한 명이나물은 두 명의 운영위원이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집집마다 배달을 마쳤고, 명이나물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한 달 월세를 마련했다. (겨우 12통 팔고 어떻게 월세를 마련했는지 궁금한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건물주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50%나 감면받은 덕에 가능했다. 다음에 더 자세히...)        


5월에는 뭘 팔지? 명이나물도 팔아봤겠다, 이제 뭔들 못 파랴.


“오이소박이 어때요?”  


나는 오이소박이를 추천했다. 이미 익은 겨울 김장김치 대신 먹을 수 있는 반찬이기도 하고, 소박이용 오이가 나오는 계절이니 수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잖아도 오이소박이를 사 먹고 있던 중이어서 카페에서 판다면 왕창 살 의향도 있었다.


“괜찮네. 오이소박이는 담그기도 쉬워.”  


솜씨 좋은 S언니의 쉽다는 말에 별다른 반대의견 없이 오이소박이 판매가 결정되었다.


이번엔 아예 미리 수요조사 겸 선주문도 받았다. 그리고 운영위원들이 직접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무쳤다. 총 30kg을 포장하고 배달까지 한 나절이 걸렸다. 예전에 집에서 몇 번 오이소박이를 담그긴 했었지만,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드는 건 꽤 많은 시간과 품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마을카페는 또 한 달을 무사히 났지만.      



그 뒤 6월 회의에서는 곰탕을 팔아보자, 오이냉국을 팔아보자, 여름 김치를 담그자 등등 여러 의견들이 나왔지만, 이번엔 카페스러운 메뉴인 더치를 파는 중이다.

카페가 문을 닫은 상태라 운영위원 한 명이 더치 기구를 집으로 가져가서 내리고, 병에 담아 다시 카페로 가져오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포장된 커피는 운영위원들이 개별 가정이나 사무실로 배송을 다니고, 카페와 집이 가까운 이들은 부러 카페에 들러 커피를 찾아간다.


다음엔 뭘 팔게 될까. 밑반찬을 해결해줄 멸치볶음이나 소고기 장조림? 아니면 유명 생산지의 사과나 제주 은갈치? 예전 아파트 부녀회에서 공동 구매할 때 보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던데.


다음 제품이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게 무엇이든 카페에 보탬이 되는 거라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다. 그렇다. 매출을 올리고 월세를 낼 수만 있다면!


https://brunch.co.kr/@nolda/55

https://brunch.co.kr/@nolda/58

https://brunch.co.kr/@nolda/59

https://brunch.co.kr/@nolda/63


이전 07화 경기도가 우리 카페에 2,100만 원을 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