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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솔 Oct 15. 2024

미로(迷路)

언제까지 헤매야 할까.

깊이를 알 수 없는 한숨과 절망, 가슴앓이로 가득한 이 미로에서.


어떻게 여길 들어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무엇이 원죄(原罪)여서 미로에 떨어진 걸까.


볕 한점 들지 않아 오직 촉각에만 의지해야 하는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적막함을 쪼개는 흐느낌 밖에 없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미로를 빠져나가려 다리를 움직인 지 벌써 12일째. 

사고 회로도 멈춰 마치 오작동하는 기계처럼 걷다 쓰러지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오른쪽 벽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나온다는 

우선법(右旋法)이 떠올랐다.

자꾸 기운이 흩어지려는 다리에 힘을 주고, 오른쪽 벽에 손을 대고 따라간다. 


손가락 끝과 틈마다 축축한 이끼가 느껴지는 끔찍한 촉감을 무시한 채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기의 무게와 냄새가 달라짐을 느낀다.

분명 출구가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입술에 옅은 미소가 드리운다.


한걸음, 한걸음.


마침내 출구 앞에 섰다. 기꺼이 몸을 낮추면 빠져나갈 수 있는 사각 모양의 출구. 

무릎을 꿇어 몸을 들이밀려다, 여기에 네가 남아 있음이 떠올라 다시 몸을 일으킨다.


뒤돌아 칠흑 속을 한참 응시한다.

그러다 쓰윽, 손을 뻗어 왼쪽 벽에 댄 후


난 다시, 미로 속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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