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의 원산지는 중앙아프리카로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이집트인들이 재배하여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 시절 홍다구에 의해 전래되었는데, 홍다구는 그의 조부 홍다구 때부터 3대에 걸쳐 고려를 배신 원나라에 귀화하여 고려를 괴롭히는 데 앞장선 매국노이다. 그의 조부 홍다구는 몽골 침입 당시 고려 군민을 설득하여 항복하게 하였고, 침공 시 고려길을 안내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홍다원은 고려 조정이 강화로 피신하여 대몽항쟁을 하자 몽골의 사신으로 항복할 것을 종용하였다. 수박을 도입한 목적 역시, 고려의 백성에게 유익하도록 하려는 것보다, 심어서 자기가 따먹으려고 가져온 듯하다.
이러한 집안 내력으로 홍다구가 개성에 처음 수박을 심었지만, 역적이 들여온 과일이라 하여 수박은 감히 제사상에 올리지 못하였다. 부정한 과일을 조상들에게 보일 수 없다는 이유이다. 시간이 흐르며 수박의 매력으로 그 지위는 달라졌다. 세종대에는 한문직이라는 내관이 수박을 몰래 먹어, 곤장 100대를 맞고 귀양을 갔으며, 궁궐에 납품한 수박이 맛이 없거나 종묘 제사에 수박을 올리지 않은 이유로 관련자를 처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수박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한번 매국자의 후손에 의한 그 재배법이 발전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에 의해서이다. 우장춘 박사의 어머니는 일본인이며 아버지는 조선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주번 중 한 명인 우범선이다. 우범선은 훈련군 대장임에도 일본군 수비대와 함께 명성황후의 시해에 가담한 친일파로 일본으로 망명 후 암살당하였다. 친일파의 자손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우장춘 박사는 우리나라로 돌아온 이후에도 싸늘한 시선 속에 연구에만 매진을 하였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장춘 박사는 수박보다는 수많은 농산물을 튼튼하고 수확을 늘리는 육종학으로 씨 없는 수박을 보급한 인물로 국한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육종학을 이해하지 못한 관료들에게 그 중요성을 눈으로 확인시켜주기 위해 씨 없는 수박을 재연하여 육종이 얼마나 중요한 기술인지를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 다시 제철 수박을 식탁 위에 제철 수박을 맛보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