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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Jun 19. 2024

연둣빛

_  시작하는 마음 


# 연둣빛 
 : 완두콩 빛깔과 같이 연한 초록빛.

# 갈맷빛
 : 
짙은 초록빛.



싱그러운 연초록의 향연에 눈이 부신 계절입니다. 언젠가부터 마음에 담기는 빛깔. 마르고 단단한 대지 위에 살며시 고개 내밀며 봄 인사 하는 연둣빛 풀잎들. 여름을 부르는 갈맷빛 나뭇잎들의 합창. 다채로운 색채의 꽃도 좋아하지만 아기처럼 풋풋한 초록 잎들은 살아감에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다시 봄이 되었다고, 올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을 맞이하며 소중히 살아가라고 안아주는 듯합니다.


연둣빛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청춘을 닮았습니다. 불안한 미래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작은 일 하나에도 달뜨고 순수한 마음으로 가까워질 수 있던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어느새 대학생이 된 딸들의 학교에 가면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지며 아이처럼 설렙니다. 수수하고 가벼운 옷차림만으로도 더없이 눈부신 젊음이 옛 추억을 자아냅니다. 그 시절 영원히 나눌 수 있을 것 같던 관계는 시절 인연이 되었지만, 같은 고민과 경험을 공유했던 그들과의 추억은 여전히 아름다운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


연둣빛은 시작하는 마음을 닮았습니다. 누군가와 처음으로 닿는 인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마음. 낯설지만 두근거림을 주는 곳으로의 여행처럼 푸릇한 마음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그 모든 것의 처음을 잊고 살아가게 되지만 초록의 빛깔이 문득 첫 마음을 일깨웁니다.


하늘에 닿은 연둣빛 나뭇잎들은 새봄 같은 아이들을 닮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앙글방글하는 아기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은 미소를 짓게 됩니다. 나의 첫 딸 기쁨이의 첫걸음마는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53세라는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병고 없이 주무시다 세상을 떠나신 아빠. 그 허망한 마지막에 무너져 내린, 지금의 나보다 어린 엄마는 첫 손녀의 걸음마에 잃었던 환한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나의 막내딸 장군이의 배밀이는 또 얼마나 커다란 웃음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처음을 함께 응원하며 까르르, 아이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족의 푸르른 희망이었습니다.


창밖을 보니 나무들이 연둣빛 휘파람을 바람에 실려 보내줍니다. 어지럽게 흔들리던 마음이 싱그러움으로 물듭니다. 하염없이 바라보다 시작하는 마음을 다시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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