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과 여러 가지 생각들 첫 번째 마무리
남들이 생각하기에 쓸데없다 생각할 정도로 난 생각이 많다. 그렇다고 그 생각이 단 한 가지의 주제로 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쓸데없는 생각이 많다 보니,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SF나 판타지와 같은 상상 속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영웅담은 당연히 내 머릿속에 항상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론 스릴러물과 같은 생각이 - 때론 감수성 풍부한 시인과 같은 생각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그 모든 것들의 결론은 그동안 읽어왔던 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어린 시절 특별히 책을 골라 놓고 읽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은 때론 축복이자 저주였다.
나에게 축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나에게는 축복이었지만, 어느 한 분야를 이끌어줄 멘토와 같은 선배나 스승이 없었으니 그건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런 나의 모습은 "왜 그리 쓸데없이 많은 것을 아냐?"라고 하며 푸념 섞인 이야기를 하는 부류. 혹은 어느 한 부류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으니" 그 진위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분류 등등 나에겐 저주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성향이 나에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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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마음의 창문을 쉽게 열지 못했으리라.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선뜻 먼저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늘 나의 마음속의 창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으며, 그 창문에서 흘러내려오는 희미한 빛줄기 하나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였으며, 어렴풋이 보이는 그림자와 이 자랭이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였는지 모른다. 분명 나의 창문은 열려있지 않았다. 그래서 얼굴에 미소가 부족했고, 사람들과 말 한마디 하는 게 두렵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람들을 두려워했는지 모른다. 분명 내 머릿속에 무한히 펼쳐지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하였으니,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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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항상 모든 것을 기다리고 지긋이 바라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카페를 가도 항상 혼자 가고,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도 늘 혼자 가곤 한다. 언제나 가방 속에는 내 생각을 정리할 수첩 한 개, 책 한 권. 음악을 듣기 위한 MP3 플레이어 하나. 그 정도가 나를 채워주고 이야기하는 것들 중 하나였으리라.
늘 상 기다림의 연속이다 보니 내 머릿속에 채워져 있는 나름의 규칙들 역시 세상을 기다리기 위한 준비 단계로만 그려졌는지 모른다. 무엇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만큼 준비를 해야 하고 - 그 준비를 위해, 이 시점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계산에 의한 기다림. 물론, 인생은 내가 계산한 것과 같이 철저하게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 그 기다림은 언제나 실패의 연속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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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인생철학을 가져보지도 못한 철부지 어린애와 같은 삶. 그나마, 무언가 나를 채워주는 것 - 내 주의의 가치관을 만들어주는 것은 눈앞에 굴러다니는 책들이 전부였을지 모른다. 유명 작가였는지? 혹은 이름 없는 사람의 허무맹랑한 글인지 조차 모른다. 어쩔 땐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 잡지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 모든 것들이 나의 인생철학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런 생각 속에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나와 늘 어울리곤 했으며, 저 멀리 바닷가 밑에 숨어있을지 모를 아틀란티스 대륙을 찾기 위한 여행을 짜기 위해 그려 넣던 탐사 일지는 지금 보면 어린 시절의 우스운 추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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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 중 팔 할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부유하지 않은 집. 언제나 돈 걱정이 우선이었던 어머니는 동네 슈퍼에서 콩나물 50원어치와 안성탕면 한 개 100원에 사 오시면 집에 남은 쉬어가기 직전인 찬밥 덩어리와 국수 한 줌과 물 한 바가지. 김치 몇 쪼가리를 찜통에 넣어 푹 끓여주시던 그런 갱시기죽 한 그릇이 우리 가족들에게는 진수성찬이고 만찬이었다. 운 좋게 안성탕면 라면 가닥 몇 가닥이 내 대접에 들어가 있으면, 누나를 놀린다고 TV 광고처럼 후루루룩 라면을 먹는 모습을 흉내 내던 모습. 그러나 약 올라하며 울기 시작하던 누나의 모습. 그런 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하던 어머니는 누나가 좋아하는 배추 뿌리 한 덩어리를 대접에 넣어주며 달래주곤 하였다.
그런 어머니는 항상 밥을 먹다 늘 소뼈 해장국 한 그릇 실컷 먹고 싶다 하셨으니, 그 당시 소뼈 해장국 한 그릇의 2,000원은 정말 우리 집에는 큰돈이었을지 모른다. 단돈 150원에 가족들이 배불리 먹었으니 그 소뼈 해장국은 얼마나 대단한 음식이며 진수성찬이었을까? 제사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소뼈 해장국 집에서 입맛을 다시며 지나가시던 어머니와 그 옆에 수구레 볶음과 닭발 무침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나와 누나의 모습. 그런 모습 속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만 찾아서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사치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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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서 내 주변에 도움을 받을만한 어른이나 형님이 계셨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집은 진수성찬을 먹었다 할 정도로 내 주위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환경을 보냈다. 욕설이 일상이며, 그릇 깨지는 소리가 일상인 생활. 술 마시고 소리치는 것이 일상이던 그 친구들의 어린 시절 속에서 난 그래도 친구들 중에 가장 부유하고 행복한 가정 중 하나였으리라.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그래도 상상이란 것을 해 볼 수 있었고, 그 상상은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라는 가능성을 꿈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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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주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늘 가시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것 만으로 그 사람에게 마음이 있어서, 관심을 갖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을 공격하는 거라 생각하고 주먹부터 날리던 친구들의 모습. 흔한 이야기로 "왜 야리냐?"라는 말이 일상에 뱄던 친구들의 모습. 단지 말 한마디 걸고 싶고, 친해지고 싶어서 쳐다보던 선의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마음속의 가시가 너무나 촘촘하다 보니 어딜 먼저 만져야 할지 모를 정도로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의 모습. 그 속에서 내 모습은 때론 혼자 붕떠 있다 할 정도로 늘 외톨이었을지 모른다. 항상 가방 속에 넣어 다니던 CD 플레이어와 "마이클 런스 투 락"의 음악. 그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며 책을 읽던 나의 모습. 어쩌면 책과 CD 플레이어가 나에겐 가시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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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삶에도 때론 희망이 찾아오기도 했다. 노트에 우연히 끄적이던 내 글을 읽어보시던 선생님의 짧은 조언. 그 조언으로 "글"이라는 희망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 "글"을 통해서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보곤 하였다. 더 이상 목적 없는 책을 읽기보다는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벽을 타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처럼 무언가 미래를 향해 올라가는 그런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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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으며 조금씩 담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까? 그러다 보니 내 마음속에 있던 가시들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즈음. 난 운이 좋았는지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고, 내 꿈을 펼치기 위해 공부란 것을 시작하고자 했다.
물론, 내가 가고자 했던 대학의 원서를 선생님들은 승인해 주질 않았다. 당연히 선생님들은 학교의 이름을 뽐내는 서울대 입학자들만 신경을 썼고, 오히려 나 같은 학생은 내가 어딜 가겠다고 이야길 하니, 본인이 아끼는 학생이 떨어질 것 같으니 절대 쓰지 말라 이야길 했다. 그래서 나도 욕심이 사라졌는지 다소 아쉬울 정도로 하향지원을 했고, 무난하게 대학을 합격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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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교사가 중립을 지키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교사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들에게는 촌지 한 장 주지 않는 나 같은 학생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이유 없이 날 때리던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매타작을 하고 난 뒤 항상 마지막은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 했다. 그러나 난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선생님이 매타작을 했다는 말을 하기도 쉽지 않았고, 어머니가 학교로 오셔야 한다고 말을 전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선생님은 추수를 하는 농사꾼처럼 매타작이 끊이질 않았으니 선생님 본인도 나에 대한 정당한 노동을 했다고 자부심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는 어렵사리 어머니에게 학교를 찾아 오시라 했고, 어머니는 진작에 벌겋게 부어있던 나의 엉덩이를 이미 수차례 보셨으니 나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없는 돈을 쪼개 시장에서 산 3천 원짜리 귀걸이를 신문지에 포장하여 선생님께 찾아갔으니 선생님의 미소는 끊이질 않았다. 분명 선생님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들먹이며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으나, 애 장래를 위해 자신이 잘 가르치겠다는 내용과 노골적인 촌지 요구를 하였으나, 어머니의 지갑에 나온 건 3천 원짜리 싸구려 귀걸이였으니 정당한 노동의 결과에 아쉬움이 오셨을지도 모른다. 그 뒤 선생님은 내가 받아쓰기 백점을 받아도 상장 스티커 하나 주질 않았으며, 반장 선거에서 1등을 해도 투표용지를 찢고 한 친구를 반장으로 세우기도 했다. 당연히 그 친구의 어머니는 항상 선생님과 모닝커피 모임을 가졌으며, 녹색 어머니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던 분이었으니 적은 노동으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주는 고객이었으리라. 그러니 선생님에게 중립을 바라는 것은 쉽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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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삶 속에서 대학이라는 생활은 정말 나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충분히 나의 실력만으로 나를 인정해 주던 곳. 나의 말 한마디와 여러 생각들이 오히려 대학에선 인정을 받았으니 그만큼 나에겐 빛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하지만, 난 여전히 가난한 고학생의 신분이었으니 나와 쉽사리 어울리던 친구는 없었었으니 늘 내 주위에는 구름이 드리우곤 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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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의 모습은 다시 창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내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좀 더 공부를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교수님들은 자신의 노동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 달라며 여전히 나에게 봉투를 요구했으니 난 그 봉투를 줄 자신이 없었다. 함께 공부를 하던 선배는 부모님 두 분이 교수님이라 그러셨는지 눈치가 빨라, 에세이를 한 개 쓸 때마다 눈치껏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짜리를 작은 봉투에 담아 자신을 가르치지 않았던 교수님까지 찾아가며 인사를 하던 모습. 그러니 교수님들은 날 엉뚱항 생각만 하는 제자였고, 그 선배는 생각이 고르고 가지런한 제자라 하였으니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아름다운 광경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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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배는 하남에 산다 했다. 부모님 두 분은 경기도에 이름 없는 사립대와 전문대 교수님이라 하였다. 항상 돈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리포트 잘 쓰고, 글 잘 쓰는 나를 애완동물 같이 데려가며 나를 소개해주는 덕분에 난 두 개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차 한 대 빠져나가기 힘든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모여있는 세상을 살아가던 하나의 세상과 스파클링 와인을 즐겨 마시며 늘 웃음이 끊이지 않던 또 하나의 세상.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할 곳은 스파클링 와인이 흐르는 곳이 아닌, 내가 속해있던 골목길이 아닌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대학원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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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난 어느 한 세계를 포기했지만 내 눈앞에 있던 골목길은 늘 그대로였다. 그러니 그곳은 여전히 시끄럽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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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국밥 한 그릇이 저녁의 푸짐한 만찬인 곳. 그러다 난 아직도 따끈한 순대국밥 한 그릇이 늘 그립게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난 그나마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실패하였지만 대학원까지 진학한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무언가 채워진 사람이었다. 당연히 순대 속을 채우듯, 내 머릿속에도 무언가가 채워져 있었고, 국물과 같이 내 뱃속에도 무언가가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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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조금만 시선을 돌려 본다면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리라. 내가 무언가를 해주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목도리 하나 건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적어도 직접 행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내 펜과 생각으로 무언가를 채워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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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 카메라는 항상 특정 장소를 향해 있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말하기 힘든 그곳.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그곳. 그러니 이 사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움이었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통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리라. 그 이야길 통해 우리도 다른 사람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했으리라.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정당한 노동이 매타작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랑과 관심이란 것을 깨닫게 하길 바랫으리라. 그러나 아직은 내 사진이 많이 부족하니 그런 생각을 끓어낼 수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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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언젠가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했다. 마치 공중전화처럼. 분명 누군가에겐 불필요한 존재고, 미관상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정말 필요할 땐 도움이 도리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니 내 사진은 다소 불편하고 아름답지 않더라도 - 그 사진에서 무언가 답이 나오길 바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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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난 술을 고통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배웠지만, 내 사진이 역할이 되는 그 순간에는 기쁨의 수단으로써 마실 수 있는 축배의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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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니 작은 사진이 여러 개가 모이고 모여 나의 생각을 뒷 받침해주는 근거가 되고 힘이 되고 도구가 되어주길 바랄 따름이다. 단지 내가 부족한 건 그 사진을 구상하는 능력이며, 그 사진을 찍는 능력이니 단지 나의 부족함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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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다른 사진들. 분명 같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들. 내 사진보다 더 훌륭한 사진이 많지만, 내 사진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희망에 되고 - 꿈이 되어줄 수 있다면, 단지 부족하지만 다른 사진들과 동일하게 같은 생각을 가지니 쌍둥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생각을 가져본다. 그러니, 내 뷰파인더는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볼 뿐이며, 내 셔터는 항상 열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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