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적 대출은 잽싸게 잡아라
저층 소형 평수인 우리 집을 호가보다 좀 덜 받고 팔더라도 무조건 현금화해서 이동해야 하는 시기인지 고민이 됐다. 우리 단지 안에서는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시기였어서 괜히 혼자 어설프게 매수했다가 대출금에 허덕이고 집값은 꺾이는 거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당시 나름의 기회 신호라고 생각했던 킥은 바로 특례보금자리론이었다. 정부가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특례보금자리에 대해 꾸준히 언론에서 보도되며 적극 밀어주고 있는 상태였다. 기존 다른 대출과 달리 소득 제한을 두지 않고 최대 5억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맞벌이로 합쳐지는 높은 소득 때문에 정부 대출 가능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도 새롭게 기회가 주어진 셈이었다.
급매로 나온 집을 보며 현재 집을 매도해 얻은 이익과 모아뒀던 현금에 황금 동아줄처럼 내려온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최대 대출을 얻어 갈아타기를 해야겠다는 아름다운 계산이 나왔다.
이렇게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정책적 대출은 그야말로 반짝 세일 같은 기회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원리금과 수준을 파악해 안전 범위 안에 들어온다면 진행하는 게 여러모로 좋은 기회를 잡는 셈이다.
이 기회를 읽었던 이들은 발 빠르게 특례보금자리를 이용해 갈아타기 및 부동산 매수를 통한 자산증식에 나섰고 예산이 소진되자 결국 24년 초 대출이 종료됐다. 역시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현재 이와 비슷한 상품으로 보이는 건 신생아특례대출. 난 해당되지 않지만 만약 출산 2년 이내의 아이가 있다면 활용해 볼 만하다.
머리로는 특례보금자리론과 우리 집 매도금, 현금을 모아 이동하자 했지만 가장 센 브레이크를 걸었던 건 바로 서울에 대한 희망이었던 것 같다. 야무진 꿈처럼 다음 집은 꼭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그냥 현실에 안주해서 같은 단지 안에서 평수를 넓히는 게 실거주적으로 그리고 투자적으로 현명한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신랑은 어쨌든 거래처나 고객사가 서울에 있고 미팅과 공부를 위해 출퇴근을 하는데 자칫 러시아워에 걸리면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린다. 최악의 왕복이면 하루 최대 4시간까지 나온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 5명 중 신랑 1명의 희생으로 이 삶을 누릴 수 있는 게 그나마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신랑의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점에 있어서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역시 서울 집값이 올라가는 속도는 경기도와 차원이 달랐다. 같은 돈으로 서울에 투자해야 돈 불리기가 쉽다는 단순한 상식이 더 뼈저리게 느껴졌다.
부동산은 내가 가진 돈으로 가장 좋은 것을 사는 것인데 이게 가장 좋은 것을 사는 선택인지 계속 자문했다. 그렇게 우리 집을 내놓고 팔지도 못하고 나왔던 급매를 사지도 못하고 고민하던 사이 결국 급매로 내놨던 주인분은 이 가격에 팔기 너무 아깝다며 지인에게 전세를 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집주인이 매도 의사를 거둔 것이다.
나중에 부동산에 대한 여러 전문가 의견과 정보를 찾다 보니 가장 최악의 갈아타기는 '같은 급지에서의 갈아타기'라는 얘기를 들었다. 비슷한 급지에서 동네만 바꿔서 이동한다던지 같은 단지 안에서 평수만 넓혀서 이사하는 것이 이에 해당됐다.
흔히 말하는 상급지로 갈아타기가 가장 현명한 법으로 통하는데 누구나 아는 강남이나 1 급지로 단번에 점프하기는 어려움이 있으니 현재 자신이 속한 곳보다 1~2단계 높은 상급지로의 이동을 추천했다.
우리 가족의 경우 우리가 가진 예산에서 급지를 높여 이동할 때는 현재의 실거주 수준을 다운그레이드해야 했고 아이들의 학교나 친구 관계 등도 고려해야 해서 마땅한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현재의 생각은 아예 실거주와 투자를 분리한 갈아타기로 맘이 기울었다. 등기는 서울에, 실거주는 경기도에. 집을 매도한 뒤 얻은 수익과 현금, 대출금 등을 모아 가장 좋은 투자처를 사서 세를 준 뒤 실거주는 현재 동네에서 평수를 넓히거나 전월세로 이동해서 거주하는 형태다.
하지만 이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 편히 살고 싶은 내 집을 갖고 싶어 1 주택을 했는데 이 주택을 버리고 다시 자발적으로 전월세로 돌리는 등의 불편함들을 안고 가야 한다.
1 주택을 넘어 2 주택부터가 진짜 부동산 투자자의 포지션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아이들 3명에 이미 초등학생이 2명이다 보니 고려할 사항들이 점점 많아진다. 괜히 움직였다가 지금 누리는 저렴한 이자도 버리고 부담할 원리금도 늘어날텐데 아이들 교육비를 포함해 각종 지출들도 늘어나는 현실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말하는 좋은 선택이 반드시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다르고 그에 따라 집을 실거주와 투자로 무 자르듯 딱 잘라 구별하기 조차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반드시 자신만의 기준과 그에 따른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 준비되지 않는 사람은 눈 앞에 있는 기회가 기회인 줄도 모르고 흘려버린다.
아마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1~2년 후쯤 한번 더 점프를 해야 할 시기가 올 텐데 그때 즈음을 목표 시기로 잡고 자산 계획과 매물 분석, 급지 파악까지 모두 돼야 진짜로 마주한 기회를 알아보고 올라탈 수 있다. 올라탈 준비를 마치고 뛰어들 시점에 한번 더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정책적 대출이 나와준다면 더 든든한 날개를 달고 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