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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Apr 10. 2024

초등 교사가 왜 브런치에 글을 쓰는가


 ’선생님은 맞는데요‘의 프롤로그를 이제 쓴다. 이제 와서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이제라도 적어보기로 했다. 벚꽃 잎이 흩날릴 땐 원래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는 거니까. 에세이 연재를 시작하고 그걸 왜 하는 거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보통 ’ 재밌어서요!‘라고 간단하게 답해버린다. 근데 실은 뒤에 붙는 말들이 꽤 생략되어 있다.


 앞으로 누가 또 묻는다면 이 글을 보여줘야지. 그리고 내게도 자꾸 보여줘야지. 화창한 주말 낮에, 지친 평일 저녁에 노트북 앞에 앉아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마다 꺼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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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재밌다. 나는 쾌락주의 성향이 있는 편인데 선생님의 속내를 글로 시원하게 까보이며 희열을 느낀다. 평소엔 어디 가서 직업 얘기는 잘 안 하게 된다. ‘역시 선생님이다’라던가 ‘선생님이 그래도 돼?’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도 지나가는 차 없으면 무단횡단하고 싶고 가끔 화나면 욕지거리도 날리고 싶다. '선생님 같아요.'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따지듯이 묻게 된다. 너무 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청개구리 심보다.


  또, 일하면서 기록하고 싶은 반짝이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예쁜 것들을 감히 글로 옮겨보고 있다. 아이들의 귀여운 눈빛, 뭉클한 말 한마디, 내게 선물하는 꼬깃꼬깃한 하트모양의 종이 접기가 모두 살아있는 글감이 된다. 떠오른 글감을 서둘러 노트에 적고 있으면 ‘앗싸 득템!’을 속으로 외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분명 재미가 있다. 해외여행보다, 호캉스보다 나를 꾸준히 즐겁게 해 준다.


  

  둘째, 교사라는 직업을 떼놓고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교사 다음의 먹고 살길을 위해 교사 시절의 이야기를 도토리처럼 모아두는 철두철미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직업이 내게 평생직장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막연하지만 뭔가 분명하게 든다. 작년에 심리 상담을 받았을 때 내게 교사가 특히 어려운 직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 명씩 다 살피고 맞춰주려는 내 성향이 아이들에게는 좋겠지만 스스로에게는 큰 스트레스일 거라고 하셨다. 매일 느끼고 있는 부분이어서 금방 이해가 갔다. 나의 예민함은 아이들에게 득이 되고 내겐 독이 되는 순간이  많다. 감정의 촉수가 많은 나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크게 느끼고 금세 기가 빨리고 만다.


  그럼 교사 자격증 떼고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고 하니 글쓰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다이어리에, 블로그에, 인터넷 라디오에, 글쓰기 모임에서 조각조각 글을 적어왔다. 기똥찬 문장을 쓰지는 못하지만 나는 글쓰기가 재미있고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 꾸준히 쓰는 근육을  길러 놓으면 뭐라도 모여서 내게 믿을 구석이 되어 주지 않을까.



  셋째, 독자가 있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강제성이 없는 글쓰기의 장점은 매우 자유롭다는 것이고 단점은 너무 자유롭다는 것이다. 나는 조용한 관종인 편이라 일기장이나 혼자 보는 저장글만 쓰면 혼자 떠드는 기분이다. 내 안의 엉킨 감정과 경험이 단어로 옮겨졌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봉인되어 버린다. 그런 글쓰기는 편하지만 끝맛이 씁쓸할 때가 있다.


 문득 글쓰기라는 놀잇감이 떠오르면 혼자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장난감 상자에 넣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내가 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이 표현은 좀 멋지지 않냐고 관심받을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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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 내가 꾸준히 쓸 수 있는 주제여야 했다. 처음엔 선생님 이야기로 글을 쓰는 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선생님보다 뻔해 보이는 직업이 있을까? 유명 N잡러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구미가 확 당기는 탕후루라면 선생님의 글은 이미 무슨 맛인지 알겠는 박하사탕이나 누룽지 사탕이 아닐까 걱정됐다.


  그래도 결국 내 일상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이들이라 교실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일 외에 다른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해도 결국 아이들에 대해 적는 글이 갓 구워 나온 소금빵처럼 맛있는 냄새가 났다. 이제 교사 3년 차인 나의 온 신경은 아직 교실 안에서 허덕이고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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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은 맞는데 모든 아이가 예뻐 보이지는 않고, 선생님은 맞는데 풋살과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 선생님은 맞는데 방학 때는 학교 근처도 쳐다보기 싫고, 선생님은 맞는데 아이들에게 항상 근면하고 성실하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선생님은 맞는데요 ‘라는 연재 제목 뒤에는 나의 고해성사, 변명이 가득 생략되어 있다.



  이렇게 네 가지씩이나 되는 이유로 글을 쓰고 있다. 언제까지 쓸 말이 있을까? 좋아하는 글쓰기 모임의 100회 기념 파티에서 모임장님께 목표가 뭐냐고 물었더니 101회라고 하셔서 좀 멋있었다. 멋있는 건 자고로 따라 해봐야 하니까 ‘선생님은 맞는데요.’의 목표도 그저 다음 주의 무사한 한 편 글쓰기로 잡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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