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고 싶다>의 연재를 시작하며
글쓰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서점에 가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설명하는 책들이 한 코너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죠. 글쓰기가 쉽지 않은 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8년째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지난 2년 간 두 권의 책을 내고, 지금처럼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고, 개인 유튜브와 팟캐스트 방송의 대본을 매주 한 편씩 몇 년 간 써왔는데도 말입니다.
세 달 전쯤인 지난 1월 중순 무렵 겨우 A4 2장밖에 안 되는 글을 쓰기 위해 2주 동안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책인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의 서문 글을 쓰기 위해서였는데요.
A4 100장에 달하는 본문 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다 넘겼고, 편집도 거의 다 끝나서 마지막으로 서문만 넘기는 되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런데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금방 다 써버릴 줄 알았던 서문이 2주 동안이나 저를 괴롭혔죠.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들 중에서 책을 살 때 서문 글을 꼼꼼히 읽으시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 지인들을 보면 서문이나 추천사는 건너뛰고 바로 본문으로 넘어가버리는 이들도 있고,
또 서문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보면서 책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이들도 있는 걸 보면 서문에 어떤 가치를 두는지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에게 서문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요. 첫째, 책의 맨 앞에 있는 서문은 앞으로 책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을 독자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보통 300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이면 A4로는 대충 100장 분량 정도가 되는데요.
A4 100장에 담긴 모든 내용의 핵심, 말 그대로 엑기스를 A4 2장이 될락 말락 한 서문 안에 담아내야 하는 것이죠. 고르고 또 고른 내용만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쓰는 게 만만치 않죠.
둘째, 서문이 책 판매량이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서문을 건너뛰는 분들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표지를 보고 책을 집어 든 분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서문을 쭉 읽어보시는데요. 일단 서문을 읽고 괜찮다 싶으면 본문을 훑어보면서 책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시고요.
좋은 서문을 쓰는 것이야말로 제 책을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독자분들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책 판매를 생각해서도 결코 서문을 대충대충 쓸 수는 없지요.
저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난번에 책을 낼 때 좋은 서문을 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요. 2주 동안 계속해서 밤 10시 정도까지 회사에 남아 글을 썼다, 지웠다했지만 마음에 드는 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쯤이면 되겠지’ 싶어서 출판사에 몇 번 글을 보냈지만 ‘책의 핵심 메시지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거 같다’는 말과 함께 다시 써달라는 답장을 받아야만 했죠.
‘책을 쓴 작가인 나보다 이 책의 주제, 핵심, 내용, 장점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이 서문이 이렇게 이상한가?’, ‘아, 진짜 서문만 누가 대신 써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돌았죠. 결국 이렇게 하다 보니 2주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서문을 쓰기 위해 설날 연휴에도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지만 흰 화면 위에 깜빡이는 커서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일정대로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며칠 안에 제대로 된 서문을 출판사에 넘겨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는데요. 그날도 다른 동료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홀로 사무실에 남아 글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문을 완성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말이죠.
그런데 그때 선배와 후배 두 명이 사무실을 나가면서 ‘치킨에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하더군요. 많이도 말고 딱 한 잔만 하자고요. 이 선배는 원래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술자리에 가도 지나치게 술을 마실 일은 없었는데요.
그래서 아주 잠깐의 고민 끝에 ‘저녁 겸 해서 치맥이나 조금 먹고 바로 돌아오자’는 생각으로 치킨집에 갔습니다. 좋은 서문을 써야 한다는 압박과 벌써 2주나 아무 성과 없이 시간만 보냈다는 초조함 때문에 마음이 답답했는데요. 자리에 앉자마자 맥주를 목으로 쏟아부었죠.
이렇게 1시간 정도 되는 짧은 술자리에서 맥주 500cc, 세 잔을 연달아 마셨는데요. 제법 취하긴 했지만 집으로 향하는 대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고, 또 이 지긋지긋한 서문 쓰기를 오늘은 꼭 마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 시간이 7시 30분이었는데요.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한글 워드 아이콘을 클릭하면서 10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를 마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술을 좀 마셨기 때문에 피곤하기도 했고, 다음날 출근하려면 너무 늦게까지 회사에 있으면 안 됐으니까요. 이렇게 정확한 마감 시간을 정한 뒤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이미 2주 동안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기에 서문에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야 하는지 글 덩어리들은 이미 대충 머릿속에 마련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하고 여러 글 덩어리들을 어떤 순서로 매끄럽게 이어 붙일지, 지금 마련돼 있는 문단 사이사이에는 어떤 새로운 내용을 집어넣어야 글이 더 살아날지, 마지막은 어떻게 마무리할지 등을 결정하는 일이었죠.
일단은 어떻게든 2시간 반 안에 A4 두 장을 쓰는 게 목표였는데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쓴 다음에 고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그려본 글의 흐름, 개요를 빈 종이에 써봤죠. 짤막한 단어들이 쓰여있는 글의 설계도였습니다.
글의 첫 문장은 이소룡의 문장으로 시작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큰 고민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만 가지 발차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건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다”라는 표현이 자신만의 판을 만들어서 경쟁에서 이기라는 책의 주제와 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원래부터 무협지나 무협영화를 좋아하고, 7년 전 회사에 입사했을 때 썼던 자기소개서 역시 이소룡이 남긴 다른 문장으로 시작했었기에 이번에도 이렇게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경제경영서의 첫 문장이 이소룡의 말로 시작한다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다음엔 남과 똑같은 방식으로 남보다 조금 더 잘하는 방식으로 해서 이기려고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내용, 남들이 만든 판에서 싸우려 하지 말고 내가 만든 판에서 내가 만든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소룡의 말을 뒷받침했습니다.
이어서 역사상 최고의 전략서로 평가받는 손자병법과 손자병법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여러 큰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낡아빠진 기존의 경쟁방식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요.
그런 뒤 제가 만났던 한 취재원의 사례를 통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인지, 책을 통해서 내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온몸의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퇴행성 근육병을 안고 태어나, 중학생 때부터는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야만 저와 나이가 같은 창업자의 사례였는데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창업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일터를 만들어낸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앞으로 본문에서는 어떤 내용들이 펼쳐질지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서문을 마쳤는데요.
잘 쓰고 싶다는 생각 없이, 일단 어떻게든 시간 안에 글을 마치자는 생각으로 두 시간 동안 정신없이 키보드를 눌러댔는데요. 다 쓰고 나서 보니까 제법 그럴듯한 글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로그에 있는 자동 맞춤법 교정 프로그램을 이용해 맞춤법이 틀린 문장이 있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글을 살퍄본 뒤 글을 복사해서 피씨톡으로 출판사 대표님과 편집자님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이 두 분에게서 ‘좋네요~^^ 베스트!!’, ‘기자님!!! 기립박수 짝짝짝!!!!!!!!!!’, ‘완전 좋네요. 생생하고 진정성이 느껴져요!!!’라는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이제 됐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얼른 집에 갔고, 그날 밤은 어떻게 하면 서문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없이 푹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2주 동안의 고민이 시원하게 해결된 밤이었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몇 시간, 심하게는 며칠 동안 아무 내용도 쓰지 못했던 경험. 몇 번 혹은 몇십 번이나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워드 파일을 닫아버린 경험.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대부분의 분들 역시 제가 두 번째 책의 서문을 쓰면서 겪었던 이와 같은 경험들을 해보셨을 텐데요.
저처럼 글로 먹고사는 사람조차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 같은 함정에 빠져드는 원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많은 분들을 글쓰기의 함정 속으로 밀어 넣죠.
‘대체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세상에 없던 세련되고 우아한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심 말입니다.
이 같은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좋은 글과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채 우선 내가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떠올린 뒤 그 내용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비록 아름답거나 세련되고 감각적인 표현은 나오지는 않더라도 내가 머릿속에 갖고 있는 생각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해줄 수 있는 문장을 쓰는 데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평범한 문장,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한 표현이더라도 독자들에게 정보와 생각을 전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요.
조금 뒤에 스크롤을 위로 올려 제가 어떻게 책의 서문을 마칠 수 있었는지 설명해놓은 내용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면 글쓰기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보다 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실 텐데요.
글쓰기에 어려을 겪는 분들이라면 꼭 스크롤을 위로 올려서 다시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는 글을 쓰는 걸 가로막는 여러 함정, 글쓰기에 대한 오래된 미신들, 그리고 이 같은 함정과 미신들을 뛰어넘는 방법에 대해서 다뤄볼 예정입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걸 포기하도록 만드는 미신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입니다. ‘짧은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풍부한 어휘력을 보여주는 글이 좋은 글이다’, ‘글쓰기는 예술과 창작에 속하는 영역이며, 작가는 예술가다’와 같은 내용들이죠.
이런 미신들을 하나하나씩 깨부수고, 누구나 읽은 즉시 따라 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글쓰기 기술을 가르쳐드리는 게 제가 이번 연재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을 읽으시면서 그 내용을 컴퓨터 앞에 글을 쓸 때 하나하나씩 적용해나간다면 어느덧 더 이상 글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앞으로의 연재에서 제가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쉽게 다룰지는 제가 이 이전에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던 다음 글들을 읽어보시면 명확하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저와 함께 글쓰기를 가로막던 함정과 미신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해나가도록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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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글에서 사례로 든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의 서문)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연재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