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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Feb 12. 2021

최악의 실적을 거둔 워런 버핏이 사람들을 안심시킨 비결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는 자만이 실수를 깨끗이 인정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투자로 가장 큰돈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2020년 기준(〈포브스〉 발표) 그는 재산이 675억 달러(약80조 원)에 이르는 세계에서 네 번째 가는 부자다. 한때는 빌 게이츠와 제프 베이조스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부자 자리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의 별명은 ‘오마하의 현인’이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살고 있는 현명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가 현인

으로 불리는 건 그저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현명한 사람이라고 존경받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는 천문학적인 재산 규모만큼이나 엄청난 액수의 기부와 사회 환원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존경을 얻었다. 그가 2019년까지 기부한 금액을 모두 합하면 340억 달러(약 39조 2,800억 원)에 달한다. 


자기 재산의 99퍼센트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세계 최고의 갑부인 워런 버핏이지만 그의 평소 생활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는 스물여덟 살이던 1958년에 3만 1,500달러(약 3,700만 원)를 주고 산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으며, 수십 년 동안 12달러의 요금을 내고 단골 이발소를 이용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20달러짜리 스테이크이며, 아침은 출근길에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에 들

려서 산 맥머핀으로 해결한다.     


“주식시장이 좋을 땐 베이컨과 달걀, 그리고 치즈 비스킷이 들어간 3.17달러짜리 세트를 먹고 보통이면 2.95달러짜리를, 그리고 일이 그다지 잘돼가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땐 소시지 패티 두 장이 들어간 2.61달러짜리 메뉴를 먹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를 일궜지만 언제나 검소하게 생활하고, 그러면서도 남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이 유쾌한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최악의 실적을 거둔 1999년


투자의 전설로 불리는 버핏이지만 그 역시 모든 투자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때로는 크고 작은 실패를 맛보기도 했는데, 특히 1999년은 그에게 있어 잔혹한 해였다. 


버크셔해서웨이를 이끌기 시작한 1969년 이후 30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해였으니 말이다.     


버핏 스스로도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1999년도의 실적이 얼마나 저조한지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절대적인 수치상으로도 지난해의 실적은 제가 취임한 이래 사상 최악의 수준이었으며, S&P지수와 비교한 상대적인 측면에서도 최악이었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때 버크셔해서웨이가 거둔 실적이 더 초라해 보였던 건 전체 주식시장은 훨훨 나는 상황에서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회사들의 주가만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1999년은 미국 IT 기업들의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며 시장에는 낙관적 전망이, 투자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한 해였다. 이른바 ‘닷컴 버블’의 시기였다.



그리고 버핏은 시장의 흐름에 올라타기를 거부한 대가를 치렀다. 그는 지금껏 돈 한 푼 벌지 못했고 앞으로도 제대로 수익이 날 길이 없어 보이는 IT 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은 시장이 광기에 휩싸였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인터넷, 이동 통신, 정보 통신 기술 회사 등 IT 기업에 투자하지 않았던 이유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실적 자체도 나빴지만 IT 기업들의 주가가 높이 끌어올린 주식시장의 평균 수익률과 비교한 상대 수익률로도 최악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버핏이 1999년의 성과를 설명하는 주주 서한을 쓰고 있던 2000년 3월, 딱 그 무렵에 정점을 찍었던 닷컴 버블은 부풀어 올랐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실책은 깨끗이 인정하고, 해결 방법을 설명하라


버핏은 1999년에 기록한 저조한 실적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IT 기업에 투자하지 않은 이유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거나 IT 기업들의 주가가 곧 급락할 것이라는 저주 섞인 예언을 쏟아내지 않는다.      


대신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이 투자한 회사들이 실망스러운 성과를 냈던 이유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최고의 리더는 남을 비난, 조롱, 저주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과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 누군가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고 해서 자신이 더 강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클루소 형사(〈핑크 팬더〉에 나오는 어리바리한 형사)마저도 밝혀낼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여러분의 회장이지요. 제가 거둔 실적을 보고 있노라면 F학점 4개와 D학점 1개가 있는 성적표를 받은 쿼터백이 생각납니다.”     



버핏은 주주 서한을 시작하며 곧바로 지난 한 해 회사가 거둔 최악의 실적에 대한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확실하게 말한다. 약간의 유머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강자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다.      


그리고 버핏은 이때뿐 아니라 여러 주주 서한에서 자신의 실책을 깨끗하게 인정한다. 버핏 특유의 유머와 함께 말이다.     


“지난번 거품이 발생했을 때 나는 대량 보유하던 종목을 팔지 않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나 역시 궁금합니다.”     


“당시 나는 우리보유 종목 일부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했지만, 그 과대평가 수준을 과소평가했습니다. 나는 행동해야 할 때 말만 앞세웠습니다.”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 버핏은 이후 회사의 실적이 극히 부진했던 이유를 하나씩 짚어간다.     


(지금 읽고 계신 이 글은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215~222페이지에 실린 글을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돈을 투자하고 있는 몇몇 기업들이 작년에 심각하게 시장에서 뒤처졌습니다. 그들의 영업 실적이 실망스러웠기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회사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돈을 투자하는 데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그들이 고전하면서 우리의 실적에 피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지요. 빠른 시간 안에 원상회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너럴 리, 가이코 등 버크셔해서웨이의 주력 계열사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제대로 된 실적을 거두지 못한 탓에 회사 실적이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저조한 성과의 원인도 숨기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     


버핏의 글을 읽으면 조직이 큰 위기에 처했을 때 리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모범 사례를 보는 것 같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기를 불러온 이유를 정확하게 분석해 구성원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해야만 하는 목표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젊은 시절의 워런 버핏


리더의 역할은 나아갈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현재 사업을 잘 운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탁월한 경영자들 덕분에 이 과제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또 다른 목표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에 비견할 만한 훌륭한 경영자를 더 많이 확보하고, 경제적으로 특색 있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1999년에 조던스퍼니처를 인수하고 미드아메리칸에너지의 대부분을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버핏은 최악의 실적 앞에서 의기소침해 있을 주주들에게 앞으로 자신이 어디에 초점을 맞춰 회사를 경영해나갈지 그 방향을 명확하게 가리킨다.      


우수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회사를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이미 지난 한 해 동안 이를 위해 두 건의 기업 인수를 성사시켰음을 강조하고 있다.     


“제 순자산의 99퍼센트 이상은 버크셔 주식입니다. 저나 제 아내는 버크셔 주식을 단 한 주도 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표가 부도가 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주식을 팔 생각은 없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주가가 떨어지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인 만큼 앞으로도 회사 실적을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할 테니 나를 믿고 안심하라는 말을 “앞으로도 주식을 팔 생각은 없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버핏은 살아 있는 사례를 통해 버크셔해서웨이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걸 주주들에게 확인시킨다.      


복잡한 숫자와 재무제표를 내밀며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대신 버크셔해서웨이의 한 계열사를 이끌고 있는 CEO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자신이 내린 판단 때문에 회사가 신규 사업에서 손해를 입으면 모든 손실을 자기 돈으로 메꾸겠다고 말했던 가정용 가구 회사 R. C. 윌리의 CEO 빌 차일드 이야기였다.      


다행히 신규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워런 버핏은 그에게 성공에 대한 보상을 하려 했지만 그는 어떤 인센티브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손해는 모두 자기 자신이 감당하려 마음먹었으면서도 성공에 대한 대가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공기업에서도 경영자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빌 차일드 같은 사람과 파트너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탭 댄스를 춥니다. 여러분도 그런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빌 차일드처럼 책임감 강한 경영자들이 버크셔해서웨이 계열사들을 이끌고 있고, 그런 만큼 회사의 미래가 밝다는 말이다.      


버핏이 쓴 글을 읽다 보면 최고의 리더는 이론이 아닌 스토리로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워런 버핏은 최악의 위기가 닥쳤을 때 글로써 사람들 앞에 나가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 말하며 문제가 발생한 이유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직접 설명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날 선 비난과 유치한 비아냥거림이 아닌 유머와 위트가 가득한 문장으로 품격 있게 말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행동은 오로지 스스로에게 강한 자신감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홍선표 작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 한국의 젊은 부자농부들>

rickeygo@naver.com



(방금 읽으신 이 글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본문 215~222 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이나모리 가즈오, 레이 달리오 등 최고의 리더 19인이 글을 쓴 이유 5가지와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5가지 성과를 쉽고, 깊이있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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