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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표 Feb 20. 2021

50년 흑자 신화를 만들어낸 경영의 신의 숨겨진 비결

성과를 높이고 싶다면 먼저 공동의 판단 기준부터 만들어 공유하라

먼저 2010년 일본을 뒤흔들었던 한 가지 사건을 알아보자. 지금부터 말할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19일 일본 사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국적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이 2조 3,221억 엔(2010년 환율 기준 약 28조 5,000억 원)의 빚에 짓눌린 채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공기업 시절부터 수십 년째 누적된 부실 경영의 폐해에다 엔고(일본 엔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높아지는 현상)까지 겹치면서 회사가 고꾸라졌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1만 6,000명을 내보내고 남은 직원들의 월급도 20~30퍼센트씩 삭감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 조정 방안이 발표됐지만 JAL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때 세계 최대 항공사로 군림했던 회사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JAL이 파산한 지 2주 뒤인 2010년 2월 1일, 일흔여덟 살의 백발 신사가 도쿄 시나가와구에 있는 JAL 본사 1층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 평소 “기내식이 맛없고, 서비스도 형편없어서 JAL 비행기는 타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왔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날만큼은 자택이 있는 교토에서 도쿄로 이동할 때 JAL 비행기를 타고 왔다. 조금 뒤 본사 건물에서 빠져나온 이 백발 신사는 곧바로 하네다 공항에 있는 JAL사무소로 향했다. JAL의 사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조금 전 있었던 간략한 취임식을 통해 이 일흔여덟 살 노인이 회사의 새로운 회장이 된 것이다.     


그는 일본 정부가 JAL을 부활시키려고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구원투수였다. 일본 정부는 엄청난 빚을 지고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JAL을 되살리는 일은 오직 최고의 경영자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든 3가지 이유


그래서 하토야마 유키오 당시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서 은퇴 이후 한가롭게 여생을 보내고 있던 이 남자에게 JAL의 경영을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국토교통성 장관 역시 설득을 위해 그를 몇 차례나 찾아갔다.     


그에겐 독이 든 성배, 아니 한 입 베어 물면 죽음에 이르는 독사과와 같은 제안이었다. 설사 혼신의 노력으로 JAL을 부활시킨다 해도 그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되살리는 데 실패한다면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회사를 창업하기 전 젊은 시절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은 섶을 지고 불난 집에 뛰어들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JAL이 이대로 무너진다면 안 그래도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 경제가 더 큰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이유, 정리 해고 후 남은 3만 2,000명의 직원들과 협력사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켜야만 한다는 게 두 번째 이유, 


JAL이 망해서 일본에 대형 항공사가 한 곳 밖에 남지 않게 되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게 세 번째 이유였다.     



그가 난파선의 선장 자리에 오르면서 요구한 조건은 단 하나였다.     


“나이가 있어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할 것입니다. 풀타임으로 근무하기는 힘드나 일주일에 3일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임시직이니 급료는 필요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의 창업자이며 ‘살아 있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JAL 회장직에 취임하며 함께 데리고 들어간 부하 직원은 단 세 명이었다. 본래 회사에서 그의 경영 철학을 알리는 일을 하던 직원 두 명과 그의 오랜 비서 한 명. 3만 2,000명이 일하는 회사를 구해내는 데 투입된 인원이 그를 포함해 고작 네 명이었다.      


제아무리 ‘경영의 신’이라도 정말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2년 7개월이 지난 2012년 9월 19일 JAL은 도쿄 증권거래소에 재상장되며 부활을 알린다.       



 1500만권의 책을 판 살아있는 경영의 신


경영의 신, 철인哲人(철학자) 경영자라는 별명답게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신의 생각을 많은 책을 통해 세상에 전해왔다. 그는 지금껏 모두 44권(공저 포함)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 책들은 2018년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1,500만 부 넘게 판매됐다.      


일본에서는 모두 565만 권이 판매됐고 중국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840만 권의 책이 판매됐다. 그의 대표작 《카르마 경영》 한 권만 해도 일본에서는 130만 부, 중국에서는 220만 부 넘게 팔렸다.     


이처럼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그의 첫 데뷔는 환갑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이뤄졌다. 쉰일곱 살이던 1989년에 출간된 《마음을 높이는 경영 스트레칭》(한국어판 《일심일언: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이 바로 그의 첫 책이다.      


1989년에 첫 책이 나오고 2018년까지 출간한 도서가 44권에 달했으니 단순히 계산해봐도 30년 동안 매년 한두 권씩 꾸준히 책을 써온 셈이다.     



살아 있는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그는 왜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어 책을 쓰기 시작했을까? 또 자기 생각을 글로 써서 전달하는 일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을까?      


이에 대한 답은 2013년 그가 첫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남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회사가 창립되고 30주년을 맞았을 때 나는 회사 발전의 기반이 된 나의 철학을 차분히 정리해보았다. 애초에는 사내에서만 보는 인쇄물로 발간하려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교세라 직원뿐 아니라 많은 후배 경영인들에게도 이 글을 소개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끈질긴 요청이 있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책을 내기 훨씬 이전부터 그는 교세라 구성원이 갖춰야 하는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 철학에 대해 직접 글을 써서 직원들에게 알려왔다. 그가 철인 경영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교세라에서는 그가 쓴 글을 모아 《교세라 철학 수첩》이라는 사내 교육용 교재를 만들었다. 이 책자를 처음 발행한 건 1967년, 회사를 창업한 지 8년째 되는 해였다. 그가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내길 원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읽고 계신 이 글은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본문 78~88페이지에 실린 글을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수첩이라는 말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소책자였다. 직원들은 평소 이 책자를 지니고 다니다가 복잡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책자에 나온 지침을 근거로 판단을 내렸다.      


업무와 일상에서 쉽고 편해 보이지만 정직하지 못한 방법을 택하라는 유혹과 마주칠 때마다 직원들이 자기가 쓴 글을 보고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나모리가 이 책자를 만든 이유였다.     


그의 첫 책 《일심일언》은 《교세라 철학 수첩》의 내용을 토대로 교세라 직원뿐 아니라 누구라도 읽고서 삶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내용을 다듬고 덧붙여 만든 책이다.      


교세라 직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세부적인 경영 지침 관련 내용은 빼고 대신 이나모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배운 인생의 교훈과 삶의 바람직한 자세를 설명하는 내용을 듬뿍 집어넣었다. 《교세라 철학 수첩》을 뼈대로 한 경영서이자 리더십 서적, 자기 계발서라고 볼 수 있다.     



결코 남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


필자는 지금까지 그의 책을 열 권 이상 읽었는데, 이를 통해 이나모리에게는 그만의 글쓰기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려운 표현 대신 쉽고 편한 단어들로 읽기 쉬운 글을 쓴다는건 다른 최고의 리더들과 같지만 이에 더해 그의 글에는 유독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결코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 옳으니 무조건 자기 말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는 그저 보여준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 담담히 풀어낼 뿐이다. 첫 책 《일심일언》의 짧은 서문에는 그의 이런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젊을 때에는 부모와 교사, 직장 상사로부터 주의를 받거나 무언가 가르침을 받더라도 반발하기 쉽다. 나도 부모로부터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종종 ‘젊을 때 고생은 팔아서라도 하지 마라’하고 말을 바꿔치기하며 반발했던 기억이 있다.”     


“반발할 때는 하더라도,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머릿속 한편에 잘 보관해두는 것만큼은 잊지 말자. 스스로 인생을 걷기 시작하는 것은 지도도 없는 대양에서 노를 젓기 시작한 것과 같다. 그때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들이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하는 이야기도 그와 같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반발하거나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일을 할 때나 인생을 살아가는 도중에 장애와 맞닥뜨렸을 때, 지금의 이야기를 떠올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부터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괴로워하고, 인생을 살면서 고민하는 와중에 어렵게 습득한 내용이다. 언젠가는 여러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가고시마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직접 제품 연구와 개발을 하며 회사를 키워낸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였다.      


그가 회사 경영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펜을 쥔 이유도 직원들이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회사에서 일해주기를, 자신과 같은 기준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판단을 내리기를 원했고, 그러려면 자신의 판단 기준과 원칙을 직원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교육해 회사의 성과를 높이는 게 그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였다.     


기술력은 자신 있었지만 경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회사를 창업했던 이나모리는 회사를 일궈나가며 경영자에게 필요한 능력을 하나하나 몸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사업 초기엔 자신이 직접 제품 연구·개발, 생산, 영업, 인사, 재무 등 회사의 모든 일을 책임지며 회사를 키워갈 수 있었다.      



아메바 경영으로 회사의 급성장을 이뤄내다


하지만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직원이 수백 명으로 불어나자 그는 이제 자신이 모든 일을 직접 챙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 그가 고민 끝에 찾아낸 해법이 바로 전체 조직을 잘게 쪼개 각 집단의 리더에게 전권을 주는 아메바 경영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운 적도 없었고, 이전 직장에 다닐 때에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만 집중했지 경영에는 참여한 적 없었던 그였기에 오히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창의적인 시스템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가장 잘 아는 현장 리더에게 경영 권한을 위임하는 아메바 경영을 도입한 이후 회사의 생산성은 빠른 속도로 향상됐다.     



하지만 아메바 경영에도 보이지 않는 약점이 있었다. 전체 회사 조직을 10명 안팎으로 구성된 아메바로 쪼개놓은 덕분에 아메바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판단 기준으로 업무를 처리할 위험성이 있었다.      


회사가 성장하고 직원들이 많아질수록 아메바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아메바마다 서로 다른 기준과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회사가 하나의 조직으로서 구심점을 잃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부분의 효율을 추구하다 전체 조직의 효율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조직 구성원들이 모두 통일된 판단 기준으로 비즈니스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이를 파악한 이나모리는 교세라 직원이라면 누구든 같은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일관된 시스템을만들려 했다.      



글쓰기를 통해 공통의 판단 기준을 만들고 공유하다


이를 위해 자신이 그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 기준과 원칙을 만들어냈고, 이를 《교세라 철학 수첩》에 담아 직원들에게 전파한다.      


철학자 이전에 그는 수만 명의 직원이 일하는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낸 창업자다. 그가 글쓰기에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있었다.      


아메바 경영이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이나모리의 글쓰기 경영이 자리하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교세라 철학의 상세한 내용을 처음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 건 《교세라 철학 수첩》을 만든 지 21년이 지난 1998년부터다.      


그 이전에도 여러 책과 강연을 통해 회사를 경영하며 배운 지혜를 사람들과 공유해왔지만, 대중에게 《교세라 철학 수첩》의 79개 항목 모두를 공개하고 이를 하나하나 설명했던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교세라 직원들과 그가 만든 경영 학습 모임인 세이와주쿠 수강생들에게만 전해졌다.     



그가 1998년 가을부터 2000년 봄까지 모두 16차례에 걸친 강연으로 직접 교세라 철학에 대해 해설한 내용이 《바위를 들어올려라》라는 이름의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일반 독자들도 비로소 교세라 철학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인 이나모리 가즈오였지만 회사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 모두를 외부에 공개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과 그만큼의 고민이 필요했다.      


경쟁사 임직원이 자신의 책을 읽고 연구하면 교세라의 전략과 행동 방식이 손쉽게 파악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철학, 원칙, 판단 기준 전부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회사가 설립된 지 40년이 지나며 해당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됐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회사 직원들과 몇몇 세이와주쿠 수강생뿐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 모두를 돕는 게 자신이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쓴 글을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하는 일도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홍선표 작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 한국의 젊은 부자농부들>

rickeygo@naver.com



(방금 읽으신 이 글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본문 78~88 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이나모리 가즈오, 레이 달리오 등 최고의 리더 19인이 글을 쓴 이유 5가지와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5가지 성과를 쉽고, 깊이있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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