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다면 강하게 비판해 거대한 논쟁의 중심에 서라
1976년,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자리 잡은 한 작은 사무실. 1년 전 하버드대학교를 휴학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는 솟구치는 화를 간신히 눌러가며 타자기 자판을 눌러대고 있었다.
화를 참고 최대한 냉철하게 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문장들 곳곳에선 강한 분노가 솟구치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당신들이 하는 일은 절도입니다.”
얼마 뒤 언론에 공개된 이 편지의 수신인은 미국 전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이용자들이었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있는 얌체들, 바로 불법 복제 이용자들을 향해 쓴 편지다.
빌 게이츠는 이 편지에서 컴퓨터 애호가라는 이들이 오히려 컴퓨터 산업을 뿌리부터 말려 죽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과 동료들이 1년여 동안 4만 달러의 비용을 투입해 만든 ‘알테어 베이직’ 소프트웨어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90퍼센트 이상의 사용자가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해 사용해서 회사는 오히려 손해를 보고 말았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좋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전문적인 일을 하겠습니까?”
“취미 생활자들 중에 혼자서 3년 동안 죽어라 프로그래밍을 하고 버그 소탕과 문서화 작업을 마친 후에 그것을 무료로 배포할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우리 말고는 취미용 소프트웨어에 많은 투자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이면 아직 개인용 컴퓨터(PC, personal computer)가 등장하기도 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들은 극소수였고, 이런 모습은 괴짜들의 취미 생활로만 여겨졌다.
빌 게이츠가 컴퓨터 사용자들을 “취미 생활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글을 써서 격렬한 논쟁의 한복판에 뛰어들다
컴퓨터 사용이 취미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시절, 사람들에게 소프트웨어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회 회원들끼리 이런저런 자료를 무료로 공유하듯, 소프트웨어 역시 무료로 나눠 갖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시절이다.
빌 게이츠는 이런 잘못된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글을 썼다. 소프트웨어 역시 누군가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든 상품이고, 소프트웨어를 무단으로 복제해 사용하는 행동은 다른 이의 재산을 강탈하는 범죄행위임을 지적했다.
지적 재산으로서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처음으로 선언한 글이었다.
“알테어 베이직을 재판매(불법 복제한 소프트웨어를 싼값에 판매하는 행위를 가리킴)하는 사람들은 뭡니까? 그들은 취미용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신고가 들어온 사람들은 결국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들은 취미 생활자의 이름을 더럽히는 사람들이고, 모든 모임에서 제명당해 마땅합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불법으로 복제해 판매한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동시에 이용자들도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악습을 이제는 그만둬야 한다고 설득한다.
“저는 프로그래머 열 명을 고용하고,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취미 시장에 맘껏 공급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의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남긴 말이다. 훗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사람의 꿈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는 맺음말이다.
그는 이 공개편지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소를 적고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거나 제안 사항 또는 의견이 있는사람은 편지를 보내달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어떤 반대 의견이든 상대해주겠다는 뜻이다.
빌 게이츠는 이 공개편지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사업을 막 시작했을 무렵 그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던 건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해 사용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관행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도 돈을 벌 수 없었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인기 높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지만 오히려 손해만 보고 말았다.
알테어 베이직이든 윈도든 엑셀이든 어떤 제품을 내놓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터였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돈을 벌고 싶다면, 회사를 급성장시키고 싶다면 먼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바꿔야만 했다.
글은 사람들의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스물한 살의 빌 게이츠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가 범죄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지적함으로써 소프트웨어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논쟁에 불을 지핀 다음에는 망설임 없이 링 위에 올라 반대자들과 난타전을 벌이면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었고,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조금씩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감으로써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글이야말로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전략적 무기라는 사실을 빌 게이츠는 이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컴퓨터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새로운 문화의 개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컴퓨터 산업을 죽이고 있다는 젊은 창업자의 외침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지금 읽고 계신 이 글은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222~227페이지에 실린 글을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만약 빌 게이츠가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는 대신 사무실에 틀어박혀 ‘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니까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하며 개발 일에만 매달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데는 분명 성공했겠지만 노력의 대가를 전혀 받지 못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이 몇번 더 반복되면 아무리 소프트웨어 개발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큰빌 게이츠라고 하더라도 견디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세상을 원망하며 큰 실망감만 안은 채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테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사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먼저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돈을 주고 소프트웨어를 사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글을 썼다. 그가 20대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홍선표 작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 한국의 젊은 부자농부들>
rickeygo@naver.com
(방금 읽으신 이 글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본문 222~227 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이나모리 가즈오, 레이 달리오 등 최고의 리더 19인이 글을 쓴 이유 5가지와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5가지 성과를 쉽고, 깊이있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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