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 그가 자신의 끔찍했던 경험을 글로 풀어낸 이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윈프리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흑인 여성이자 오늘날을 사는 그 누구보다 말로써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기도 하다.
10대의 나이에 라디오방송국 디제이로 방송 일을 시작한 그는 서른 살이던 1984년 시카고 지역 방송사인 WLS-TV의 아침 토크쇼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의 진행을 맡게 된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가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지역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로 일하던 시절, 감정을 실어 뉴스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8개월 만에 해고를 당하는 등 그 전까지 그의 커리어는 크고 작은 실패의 경험이 가득했다.
〈에이엠 시카고〉 진행자 자리도 그리 좋은 기회는 아니었다. 바닥을 기는 시청률 탓에 얼마 뒤면 폐지될 게 뻔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오프라 윈프리의 처지는 패전 처리를 위해 등판하는 불펜 투수와 다르지 않았다.
토크쇼로 3조원의 부를 일구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가 투입된 지 한 달 만에 이 프로그램은 시카고 지역 동 시간대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이 된다. 2년 뒤인 1986년에는 프로그램 이름을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꿔 미국 전역의 시청자들을 찾아갔고, 이후 25년간 방영됐다.
그를 토크쇼의 여왕으로 등극시킨 〈오프라 윈프리 쇼〉는 이렇게 시작됐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오프라 윈프리를 유명 토크쇼 진행자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미디어 대기업의 창업자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곧바로 케이블 TV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잡지를 출판하는, 이후에는 온라인 미디어까지 운영하는 하포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케이블방송국 OWN (Oprah Winfrey Network)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인기 방송인으로 남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사업체를 창업해 경영함으로써 엄청난 부호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의 명성을 돈으로 바꿔낸 비즈니스 감각과 경영 능력이야말로 그를 3조 원(2018년 〈포브스〉 기준 26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세계적인 부호로 만든 비결이다.
그는 토크쇼의 여왕이자 비즈니스의 여왕, 그리고 기부의 여왕이기도 하다.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5,830만 달러와 5,02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지금껏 수천억 원을 기부했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거대한 기업을 일궈 막대한 부를 쌓은 데다 이렇게 번 돈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그를 최고의 리더라고 부르는 건 당연하다.
최고의 리더들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누르고, 종이 위에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건 그들 역시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인생의 방향을 바꿨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쓴 글이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강렬한 영향을 끼쳤는지 직접 경험한 그들이기에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전하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항상 혼자였던 외로운 소녀, 책과 친구가 되다
오프라 윈프리도 그랬다. 그는 부부 사이가 아니었던 젊은 남녀의 단 한 번의 동침으로 태어난, 아무도 원치 않은 아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까지도 임신 사실을 숨겼다. 그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한 채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미시시피주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와 그런 남편을 돌보느라 지친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야 했다.
외로운 소녀에게 책은 유일한 친구였다.
“인근에 어린아이라고는 나뿐이어서 나는 혼자 노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홀로 지내는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해냈다. 나는 책을 읽고 집에서 만든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집안일을 했다. 가끔은 농장에서 기르는 가축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걸기도 했다.”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홀로 지내야 했던 소녀에게 책은 더 넓은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왕자와 거지》를 읽으면서는 답답한 궁궐을 뛰쳐나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세상을 만나려 했던 왕자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하고,
《15소년 표류기》의 책장을 넘기면서는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이 살지 않는 외딴섬에서 모험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돌리틀 선생 항해기》나 《80일간의 세계 일주》와 같은 동화를 읽으면서는 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이국적인 풍경의 낯선 길거리를 걷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엄마 찾아 3만 리》를 읽으면서는 어딘가 저 먼 곳에서 자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진짜 부모를 찾아 떠나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책은 그에게 단순히 현실의 외로움을 잊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었다.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구해서 소리 내어 읽던 습관, 특히 누구 앞에서든 시를 낭송하던 습관이야말로 그에게 방송계로 진출하는 문을 열어줬다.
그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 이유
고등학생이던 열여섯 살에 그는 미국 내슈빌에 있는 WVOL 라디오방송국에 디제이로 고용된다.
학교에서 견학하러 간 방송국에서 한 라디오 디제이가 그에게 녹음된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한번 테이프에 녹음해 들어보라고 권했고, 오프라 윈프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앞에 두고 이야기한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라디오 디제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 아이 목소리는 꼭 들어봐야 해요!”라고 자신의 상사에게 외친다. 여왕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부와 명성을 모두 손에 넣은 오늘날에도 그는 “내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한때 책은 내게 일종의 탈출구 역할을 했다. 지금의 내게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성스러운 즐거움이며, 내가 원하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갈 기회와 다름없다. 독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사용법이다.”
“독서가 우리의 존재를 열어준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안다. 독서는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의 정신이 흡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접근할 방법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내가 독서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책 읽기를 통해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가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준다.”
세상을 향해 글을 쓰기 훨씬 이전부터 오프라 윈프리는 스스로의 내면을 향해 글을 써왔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생각과 감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 읽고 계신 이 글은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의 본문을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자신을 기쁘게 만들었던 순간들도 하루에 다섯 개씩 꾸준히 기록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해안을 따라 달린 일, 벤치에 앉아서 먹은 차갑고 달콤한 멜론의 맛, 오랜 시간 동안 친한 친구와 나눈 수다 등과 같이 사소하지만 삶에 행복을 더해주는 순간들에 대한 감사 일기였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해 혼자만의 글을 쓰던 그가 세상을 향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글을 통해 “넘어질 순 있지만 계속 쓰러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프라 윈프리의 어린 시절은 외롭고 고달팠다. 하지만 그런 유년기마저도 그가 10대 시절에 겪은 끔찍했던 일들에 비한다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홀로 침대에 파묻혀 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열 살부터 열네 살까지 그녀는 친척 남성들에게 반복적으로 성적인 학대를 당했다. 열네 살이던 1968년에는 성폭행으로 임신한 아이를 출산했다. 아기는 얼마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같은 경험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돼 오프라 윈프리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가까스로 엄청난 용기를 내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했던 일을 공개했을 때도 아이를 출산했었다는 사실만큼은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한 타블로이드 신문에 그의 상처를 다룬 기사가 실린다. 오프라 윈프리의 친척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비밀을 폭로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욕할 거야”라고 되뇌며 수십 년간 홀로 떨었던 그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깜깜한 침실 안 침대에 파묻혀 우는 일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오프라 쇼〉 녹화를 위해 출근해야 하는 아침이 찾아왔다.
“월요일 아침이 왔고, 나는 누군가에게 흠씬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가까스로 침대에서 기어 나와 출근길에 나섰다. 무서웠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열네 살에 애를 배다니, 세상에! 너는 이제 끝장이야!’라고 당장에라도 고함을 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내가 아는 사람들도, 그 어느 누구도, 아무도. 너무나 놀라웠다. 전과 다르게 나를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십 년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해왔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오프라 윈프리는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보살핌과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의 따뜻한 응원 덕분에 절망의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깨닫는다. 아무리 상황이 끔찍하게 느껴지더라도 현실은 머릿속에 그렸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삶을 옭아맨다는 것을, 타인이 나에게 입힌 상처가 아니라 오직 나의 힘으로 이뤄낸 것들이 나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얻은 깨달음이야말로 오프라 윈프리가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글쓰기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평생 자신을 옭아매던 두려움과 공포, 슬픔에서 해방됐던 경험이 그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볼티모어 지역 방송사의 이름 없는 기자였던 시절, 가난 때문에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젊은 어머니와 그녀의 아이들을 취재한 뒤 그들을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 겨울 코트를 한 벌씩 사줬던 오프라 윈프리에게 남을 돕는다는 건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었다.
세상을 설득하기 위해 글을 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경험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절망과 좌절, 공포와 두려움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글을 썼다.
결코 두려움의 노예로 살아선 안 된다고, 남이 나를 일으켜 세워줄 거라 생각하고 계속 쓰려져 있어선 안 된다고, 다시 일어나 원하는 것을 위해 달리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글을 썼다.
최고의 리더들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최고의 근거를 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최고의 근거는 바로 자신이 걸어온 삶의 모습이다.
오프라 윈프리도 그랬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그가 걸어온 인생을 보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1997년 오프라 윈프리의 첫 책 《오프라 윈프리의 특별한 지혜》The Uncommon Wiscom of Oprah Winfrey가 출간된 이후 그는 14년 동안 매달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What I Know for Sure)은 제목 그대로 오프라 윈프리가 살면서 깨달은 지혜와 교훈을 그만의 따뜻하고 잔잔한 문체로 사람들에게 전한 칼럼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이 정도의 꾸준함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오프라 윈프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 기간 동안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었던 ‘멋진 진실’은 다음 문장들에 담겨 있다.
“용기란 우리가 목표에 이르렀는가로 가늠되지 않는다. 숱하게 실패를 했더라도 그에 아랑곳없이 다시 두 발을 딛고 일어서기로 했는지가 용기를 가늠하는 진정한 기준이다.”
“우리가 다시 일어나 자신이 품은 가장 멋진 꿈을 추구할 용기를 낸다면 삶의 가장 진한 보상을 받고 가장 흥미진진한 모험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걸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더라도 새로운 시작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단 하나의 선택, 즉 다시 일어나겠다는 선택만 한다면 당신은 바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은 그렇게 당신 곁에 가까이 있다. 정말 멋진 진실이 아닌가?”
최고의 리더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직을 이끌기 위해 글을 쓴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을 설득하기 위해 글을 쓴다. 리더의 글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수단이다.
홍선표 작가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홍선표 기자의 써먹는 경제상식>, <리치 파머, 한국의 젊은 부자농부들>
rickeygo@naver.com
(책 <최고의 리더는 글을 쓴다>를 읽으시면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이나모리 가즈오, 레이 달리오 등 최고의 리더 19인이 글을 쓴 이유 5가지와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5가지 성과를 쉽고, 깊이있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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