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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03. 2016

홀로서기

가슴에 찬 바람이 휙 불어온다. 주인을 잃어버린 침대 위 모기장은 나를 서글프게 쳐다본다. 방안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래 이제 주애도 떠났구나. 매년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아이들이다. 이젠 익숙해질 만 한데 가슴은 여전히 쓸쓸하다.  


올여름 큰딸 성애의 결혼식으로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언제나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큰딸이 드디어 결혼했다. 결혼 후 일주일 동안 더 있으면서 엄마 아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다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에서 사는 딸을 이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만큼 가슴이 아련하지는 않았다. 


언니가 떠난 후 한 방을 쓰던 둘째 주애가 가슴이 적막하다고 할 때 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늘 떨어져 지냈는데 뭘 그런 감정을 가지나 하였다. 학창 시절 서로 붙어 지낼 때는 늘 티격태격 싸우던 자매가 떨어지면서 서로의 정이 더욱 깊어진 것 같다. 결혼한 성애는 더욱 성숙해진 것 같다. 아빠가 걱정해야 할 동생의 진로와 장래까지도 걱정하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없을까 고민한다. 


주애는 언니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마음인지 매일같이 데이트를 해주었다.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공부하고 강의 준비하느라 바쁜 주애가 큰맘 먹었나 보다. 덕분에 지난 한 달 동안 정말 행복했었다. 함께 공원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가 생각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장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나가야 할지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을 수 있었다. 함께 외식하고, 쇼핑하는 시간도 가졌다. 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책 이야기도 하고, 남녀의 의식 구조 차이도 논하고, 주애가 쓰려고 하는 논문 이야기도 나누었다. 밤에는 놀이터에 나가서 길냥이들을 보살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그저 함께하는 것이 행복이다. 

주애가 떠난 이 아침 마음이 고요하다. 가슴 깊이 아려오는 아픔을 뒤로하고 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래 자신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지. 주애는 주애의 삶이 있듯이 나에겐 나의 삶이 있으니까. 나이 들어 가면 갈수록 혼자 사는 법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만 남을 테니까.


노년은 깨달음의 시기다. 어둠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빛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인 인생이긴 하지만, 노년의 시기에는 더욱 중요하다. 홀로 있는 시간에는 고독과 적막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대화를 원하시는 주님도 찾아오신다. 젊었을 때는 분주함과 번다함 때문에 자신을 직시할 시간도 없었고, 외로움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이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인생과 세상과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홀로서기를 연습하고 있다. 


노년을 위한 마음 준비

6. 웰다잉(Well-Dying)

5. 노래하는 백조

4. 흐름에 몸을 맡기고

3. 소소한 행복을 찾는 자가 진정 행복한 자다.

2. 열린 마음은 배우려는 마음이다.

1. 노년을 위한 마음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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