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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28. 2019

인내천 연구(1)

[편역자 주] 이 글은 <개벽> 창간호(1920.6.15/7월호, 39-49쪽)에 게재된 논단을 현대어로 번역하였다. 개벽하는 사람은 '새 사람'이라는 것, 그 '새 사람'은 인류가 지상에 태어난 이래 과거에도 있었다는 것, 새 사람은 창조인으로써, 그 시대에 태두가 되는 사상, 문화, 문명을 창조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나 '옛날'의 새 사람은 이미 무덤 속에 들어간 지 오래 되었다는 것,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새로움'을 가져다 준 원조는 수운 최제우 선생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그런 점에서 수운 선생은 공자나 마호메트보다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에 따르는 논증을 펼쳐 나갈 것을 예고하는 글이다. 이 '인내천 연구'는 이후 11회(또는 그 이상)에 걸쳐 연재된다. 이 <인내천연구>의 내용들은 후에 '신인철학'이나 '인내천요의' 등의 단행본으로 간행된다. 그러나 개벽지에 연재된 이 글은 좀더 초기의 기록으로, 생생한 사상의 정립 과정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무엇보다 '인내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서는 최초의 논설이라는 점이 큰 의의이다. 그리고 인내천을 단순히 '사람이 곧 한울 = 평등 사상'이라는 초보적인 도식으로서가 아니라, '새 사람' '창조'라는 키워드로 접근하는 것에서.. 그동안 동학과 천도교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좁아지고, 잘아져 왔는지를 확인케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또한 수운 선생도 옛 성인과 마찬가지로 그 탄생 전후, 득도 전후에 '이적-기적'에 관한 설화담이 있으나, 그 이적의 결과로 수운 선생이 위대해진 것이 아니요, 수운 선생이 위대하여졌기에 그러한 이적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일의 선후본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내가 평소에 주창(?)해 온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시간은 (불가역적 물리량으로서) 물리적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이며 철학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헛된 망상도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양자역학의 수준에서는 '물리적인 견지'에서도 시간은 과거 - 현재 - 미래의 직선적인 물리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고 있기도 하다. (동학의 시간론은 앞으로 별도의 글로 상론할 계획이다.)  




야뢰(夜雷, 이돈화) / 현대어역 박길수 / 개벽라키비움 

- 출전 <개벽> 창간호(1920.6.15 / 7월호), 39-49쪽.  


1. 


새 사람이 되라. 새 사상을 넣어라. 새 지식을 배우라. 새 사업을 하라. 새 예술을 창조하라.  온갖 것을 새 것으로 벌려 놓고 새 것으로 짜 맞추고 새 것으로 장식하라. 나는 새 것을 모앙하는 자로다. 새로움을 동경하는 자로다. 새 것이 있으므로 사람은 사람다운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요, 새 것이 있으므로 세계다운 광채가 나는 것이다. 


나는 과거 역사의 모든 어진 이를 숭배하여 마지않노라. 내가 그들을 숭배하는 마음은 그들이 이미 나보다 선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육체는 이미 없어지고, 그들의 그림자는 이미 우주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이미 낡은 인물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숭배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 그들의 시대에 여러 가지 새 것을 창조한 까닭이다. 백가지 풀을 맛보고 의약(醫藥)을 창조한 신농씨(神農氏)는 이미 이 세상에서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의 정성과 노력이 뭉친 의약의 발달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 오히려 우리에게 새 생명을 내게 하며, 자와 먹줄[規矩]을 이용[尺度]해서 배와 수레를 창조한 헌원씨(軒轅氏)는 이미 이 세상에서 떠난 지 오래지만 수륙의 교통은 오천년 후 오늘에 더욱 발달되어 가는 중이 아닌가.


그들은 실로 ‘오래된 새 사람[舊한 新人]’이다. 석가도 새 사람이며, 공자도 새 사람이며, 예수도 새 사람이다. 도덕을 창도(唱導)한 소크라테스도 새 사람이요, 감주(甘酒)를 창조한 의적(儀狄)도 새 사람이다. 대도(大道)를 설파한 노자도 새 사람이며 대악(大惡)을 주장한 도척도 새 사람이다. 본능을 구가한 니체도 새 사람이며 이성을 부르짖은 톨스토이도 새 사람이다. 금욕주의 스토아학파도 새 사람이며 자연주의의 루소도 새 사람이다. 그들은 과연 새 사람 노릇을 잘 하였다.

그들이 있어서 인류는 인류다웠고 세계는 세계다웠다. 어느 민족이나 어느 국가를 물론하고 새 사람이 있어서 민족이 민족다웠고 국가가 국가다웠다. 중국에는 중국의 새 사람이 있었으며 일본에는 일본의 새 사람이 있었으며, 조선에는 조선의 새 사람이 있었다. 또는 서양은 서양의 새 사람이 있었고 동양은 동양의 새 사람이 있어 왔다.

단군은 실로 조선의 새 사람이었다. 고주몽, 박혁거세 같은 이도 다 같이 새 사람이며, 을지문덕, 김유신은 군인으로 새 사람이며 을파소, 천개소문(泉蓋蘇文)은 정치로 새 사람이며 왕인, 최치원은 문학으로 새 사람이며 거북선을 창조한 이순신, 훈민정음을 창조한 세종은 더욱 새 사람이었다. 신라의 예술과 고려의 자기는 조선의 새 사람주의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조선이 조선된 까닭은 이들 새 사람이 많이 있었던 덕분이 아닌가.


그러나 내가 이제 쓰고자 하는 새 사람은 먼 과거에 묻혀 있는 그 새 사람이 아니며, 따라서 정치, 문예, 학술, 군략으로의 새 사람도 아니며 가장 가깝고 가장 위대하고, 그리하여 숭교적(崇敎的) 사상으로 조선의 독창인, 아니 동양의 독창인, 넓게 말하면 세계적 독창인 인내천주의 창도자 최수운 선생의 사상을 한 말로 널리 세계에 소개하고자 함이다.


2.


수운 선생은 조선 경주 사람, 이름은 제우(濟愚), 수운(水雲)은 그의 호이다. 우리나라 땅[槿島]이 셋으로 나뉘었을 때―북은 고구려, 중간은 백제, 남은 신라가 정립의 세로써 천하를 세 등분하였다. 그리하여 북을 대표한 고구려는 무강(武强)으로 천하를 호령하였고 남을 대표한 신라는 문화로써 그 도가 일세를 풍미하였다. 신라의 문화는 실로 조선 문화의 정수였다. 그리하여 그 문화는 일천년의 긴 세월에 반도에 금수(錦繡) 병풍을 둘렀었다. 


신라 문헌 가운데 내가 가장 숭배하는 것은 곧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니 그는 신라 말엽에 태어난 천재였다. 그의 행적이야말로 유불선 삼교합일을 사실로 표현하였다. 그는 중년에 중국 당나라에 가서 유학을 수학하였으며 또 불교에 심취하여 불학(佛學)을 밝게 통달[通曉]하였으며, 만년에는 속세를 떠나 지리산에 들어가서 마침내 신선[道]이 되었다 하는 분이다. 그야말로 조선 사적에 한 (유불도를 아우른 – 편역자) 사상적 위인으로 볼 수 있다. 고운이 서거한 후 일천여 년이 지난 조선 철종 대에 고운의 고향인 경주에서 최수운 선생이 탄생하였는데, 그도 역시 최씨 가문 사람이었다. 


옛날부터 위인이 태어날 때는 대개 기이한 행적으로 그 신성(神聖)을 예증(預證)하였다. 숙양흘(叔梁屹; 공자의 부친)이 니구산(尼丘山)에 기도하여 공자가 탄생하였다 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신령(神靈)의 감화로 예수를 배태(胚胎)했다고 한다. 맹자가 “전성후성(前聖後聖)이 그 도리[揆]는 한가지[一轍]이다”라고 한 격언은 또한 기적에 대해서도 통하는 것이겠다. 수운 선생의 탄생에도 이보다 더한 기이한 행적이 있었다 한다.


경전*에 이르되 “선생의 아버지 최옥 선생이 이미 그 문장 도덕으로 한 도에 이름을 드러내었으나 다만 산림[林泉]에 소요함으로 낙을 삼았다. 일찍이 나이 들어 자식이 없음으로 근심하였더니 하루는 우연히 일어나서 내당(內堂)에 들어간즉 처음 보는 한 부인이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물으니, 부인이 말하되 ‘제가 나이 30이 넘도록 금척리 친가에 과부로 살고 있는데, 오늘 오전에 홀연 정신이 혼미하여 깨어나지 못할 때에 두 줄기 빛[兩曜]이 품속[懷中]에 들어오고 또한 이상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곳에 이르렀나이다.’ 공이 심히 기이하게 여겨 드디어 동거하였더니 마침 잉태한지라. (아이-수운이) 태어날 때에 하늘은 말고 밝으며[天氣淸明] 상서로운 구름이 방을 둘러싸고, 그 집 뒤 구미산이 3일 동안 크게 울었다[大鳴]”고 하였다.

[편역자 주 : *경전이 아니라 ‘문집(文集).’ - ‘최선생문집도원기서(崔先生文集道源記書)’. 수운 최제우선생의 일대기, 해월 최시형 선샌이 도원기서를 편찬하던 1880년대까지 최시형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기적’은 지식인이 미신이라고 배척하는 바, 기적의 기적됨이 신비(神秘)인지, 또 그것을 미신으로 배척하는 것이 지식인다운 것인지는 우리가 왈가왈부할 바는 아니다. 태어날 때 기적이 있을지라도 평범한 사람이 되면 이것은 평범한 사람이요, 기적이 없을지라도 위인이 되면 이는 위인일 뿐, 기적이 있어서 위인이 있는 것이 아니요, 위인이 있는 까닭으로 기적이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후세 사람이 수운 선생을 최고운(최치원)의 후예라 하여, 이를 특별히 기록함도 고운과 수운이 서로 다 위인이기 때문이다. 몇 천 명에 달하는 경주의 최씨 가운데 유독 수운을 고운의 후예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보통사람의 인지상정일 뿐이다. 공자가 말하되 “밭가는 소[犁牛]의 새끼라도 붉은색[騂]이고 또 뿔이 볼품 있다면 산천에 제물로 쓸 수 있다”(중국에서는 본래 붉은색의 큰 소만 신성한 제사의 제물로 썼으나, 공자는 그 품격이 갖추어져 있다면 밭가는 소의 새끼라도 산천의 신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하였다는 뜻–편집자 주) 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배울 만한 격언이 아니랴. 


세상에는 고수(瞽瞍; 순임금의 아버지, 매우 악랄한 인물이었음) 같은 아버지에게서 순임금과 같은 아들이 태어나는 경우가 많음을 보면, 광영(光榮) 있는 선조에 의지하여 자기 이름을 얻고자 도모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세상 사람이 보통 그 세계(世系-cf.족보)를 옛날의 어질고 밝은 위인에게 비유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 인류의 약점이며, 평민주의(平民主義)의 큰 적[大賊]이다. 


그러므로 수운 선생이 선생 된 까닭은 최 고운이 있어서가 아니요 시대의 시대가 있음으로써요, 위인이 위인 될 뿐으로써이다. 중국에서 머슴이던 진섭(陳涉, 陳勝)은 말하기를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하였고, 왕양명(王陽明)은 말하기를 “우리 마음이라고 어찌 공자와 다르겠는가.”라고 말한 것은 다 같이 우리가 장려할 만한 격언으로, 수운 선생의 사상사를 읽는 자는 더욱 이를 깨달을 필요가 있겠다. 그러므로 선생은 말하기를 “너희는 나를 믿지 말고 다만 한울만 믿으라. 네 몸에 모셨으니 멀리서 찾지 말라.”고 훈계하셨으니, 이는 실로 만고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3.


세계 3대 성인의 한 분으로 꼽는 공자는 어려서부터 제사 그릇을 설치하며 놀고, 놀이를 하는 중에도 예의의 작법으로 놀이를 하였다는 이야기는 <사기>에 실려 있는바, 천년 후 우리가 오히려 오랜 옛날의 풍습이 많은 공자의 풍습을 어려서부터 엿볼 만하다. 그러나 옛날은 보수이다. 차라리 퇴화이다. 유교를 국교로 한 중국의 문화가 새로움을 취하여 개혁하는 길에 뒷걸음질 치고 머뭇거림은 실로 공자의 유풍을 인습하는 폐단이 또한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어찌 공자의 죄랴. 쓰는 자가 능히 잘 변화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온고지신이라 함은 공자의 말씀이 아닌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함도 탕왕의 반명(盤銘; 늘 쓰는 그릇에 새겨서 경계하는 말씀으로 삼는 것)으로 공자가 찬송한바 아니냐. <논어>에 있는 말을 하고서 논어를 모른다 하는 것은 이것이 통속의 격언으로 세상에서 그릇되게 학문하는 선비[曲學腐儒]를 낮춰 보거나 존경함[貶褒]을 결정하는 데에 넉넉히 한 도움이 되리라. 유교 문화를 받은 조선의 오백년―부처님께 절하고 유교를 드높이는[拜佛崇儒] 정치는 마침내 문약허식(文弱虛飾)의 폐단에 빠져서 이른바 선비가 옛것을 높이고 지키는[崇古保守] 데에 빠져 지내는 여파는 마침내 형식에 구애되고 허명에 사로잡혀 자신을 그릇되게 하고 나라를 폐단에 빠뜨리기에 이르렀나니, 뜻있는 선비는 능히 이에 분심을 내고 노여움을 떨치지 아니하랴. 


듣건대 수운 선생의 선조는 누대에 걸친 유교의 석학으로 사림에 그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아버지 최옥 공도 또한 선조의 업을 계승하여 그 이름이 경상도에 널리 퍼졌다. 이는 수운 선생이 “아버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셔서, 이름이 한 도에 널리 퍼졌다[家君出世 名盖一道]”라고 노래한 일절로써 넉넉히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최옥 공은 다만 한 사람의 가난한 선비[布衣]로 그 생을 마감하였나니, 그러므로 선생은 용담가에 “가련하다 가련하다 우리 부친 가련하다. 구미 용담 좋은 승지 도덕 문장 닦아 내어 구미산하 일정각을 용담이라 이름하고 산림처사 일포의로 후세에 전탄말가”라고 탄식한 일절에 그 가문의 이미 쇠약해지고 무너졌음을 표현하셨다. 이와 같이 조선 말엽의 천하의 내로라하는 지사가 다 시골로 물러나 살고 하릴없고 돈 많은 무리가 득세하여 세상에 아부하는 것으로 벼슬자리를 지킨 결과는 기어이 조선을 도탄 속에 빠지게 하였었다. 국시(國是)가 나날이 어그러지고 도덕이 다달이 추락해 가는 사회현상을 관찰한 선생은 신묘한 지혜력[神識]으로서 항상 이 세상을 원망하고 근심하여 오랫동안 탄식하여 말하기를 


“근래에 들어와서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위심(各自爲心)하여 천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천명(天命)을 돌아보지 아니하니 마음에 항상 두려움이 넘쳐 향할 바를 알지 못하노라. 임금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도다. 슬프다 지금 세상의 운이 근심스럽도다. 유도 불도 누천년에 운이 또한 다하였나니 인심이 위태롭고 도심이 드러나지 아니하며, 윤리가 무너지고 오륜이 해이해졌도다. 이 세상은 공자와 맹장의 덕으로도 건질 수 없고, 요임금 순임금이 다스려도 다스려질 수 없으니 반드시 상해가 많고 운수와 명이 크게 바뀔 것이라.”


하시고 이에 선생은 깊이 감격한 바 있어서 그동안 크나큰 포부[倜戃不覇]를 펼치지 못하는 울분을 위안하든 궁마(弓馬; 무술) 놀이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한 일에 종사하던[販泉實業] 뜻을 버리며, 불도나 점치는 일[禪道卜數]의 잘못됨을 깨닫고,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거나 때로 깊은 산 속 고찰에 머물며 천지자연의 신묘한 변화와 우주 인생의 진리를 명상하는 것으로 그 뜻을 스스로 위로하였다.


대붕이 날지 않으면 모를까 한번 날면 능히 하늘에 가서 닿고, 연못 속의 용이 날아오르지 않으면 모를까 한번 날아오르면 능히 바람을 일으키고 구름을 불러오나니, 역산(歷山)의 일개 농부 우순(虞舜)이 일거에 천자의 사위가 되며 두 번 만에 온 세상을 거느리게 됨[富有]은 이것이 운수의 다행이며, 이 나라의 운수이다. 우리는 차라리 크게 칭찬할 재료가 적지 않다만 곡부(曲阜-공자의 고향)의 한 평민[野氓]인 공자와, 유대 민족의 한 천한 출신[賤生]인 예수도 능히 만절(萬折)의 고통 견뎌내어 영원한 스승이 된 사실은 수천 년 후 우리로 하여금 실로 경건하게 흠모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오호라. 구름 속의 학이냐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날아오르는 봉황이냐.


거룩한 저 위인의 행적이 비록 배우고자 하여도 배울 수가 없도다. 예컨대, 선생의 반생사를 읽은 사람이 어찌 공자와 예수에 그 으뜸 됨을 양보[讓頭]하리오.


4. 


예부터 종교의 창시자[敎祖]로서 그 득도하던 처음에 대개 명상의 수양(修養)이 없는 사람이 없으며, 그리하여 그 명상 중에 불가사의한 이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저 석가모니는 고행 6년의 수행에 의하여 성도(成道)하였다고 말한다. 불타가 가야의 변두리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생각에 잠겨 명상을 할 때 모든 외계의 유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이상의 경지에 굳건히 나아가[勇往邁進] 마음의 잡념을 끊어버리고 최고의 도를 이루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명상하는 동안 석가가 정신상 잡다한 곤란에 처하였던 상황은 시적으로 전하고 있는데, 욕계(慾界)의 마왕이 큰 분노의 상(相)으로, 도깨비, 나찰, 야차 등의 부하들을 보내서 큰 공력과 큰 즐거움으로 유혹하며, 또는 어여쁜 마녀를 보내서 추파로써 불타의 의지를 시험하고, 미녀를 보내서 불타를 유혹하고자 하며 혹은 도깨비나 마귀는 무섭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 활, 창, 곤봉 등의 무기를 휴대하여 보리수 아래 모여들어 불타를 위협하고자 하였으나 결국은 이겨내지 못하고 흩어져 도망한 후에 마침내 검은 구름이 걷히고, 신묘한 빛이 널리 시방을 비추어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밝게 하였으혀 허공에는 천화(天花)가 쏟아지고 땅에서는 신묘한 향기가 가득하였다고 전한다. 


서교(西敎)의 그리스도[基督]도 또한 같은 역사를 전하였나니 이는 처음에 가르침[敎]를 세우고자 할 때, 세례자 요한의 허락에 이르러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광야에 나아가 침사명상(沈思冥想)하며 40일을 보냈다. 마태복음[馬太傳] 제4장에 그 상황을 기록하였는데,


“예수가 성령의 인도로 악마의 시험을 받기 위하여 광야에 나아갔다. 40일 낮과 밤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홀로 앉았더니, 마귀가 그에게 와서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느님[神]의 아들이라면 이 돌로 빵[麵包]이 되게 하라.’ 하니, 예수 대답하기를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므로 이에 악마가 예수를 끌고 예루살렘[聖京]에 가서 신전[殿] 꼭대기에 서게 하고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 몸을 아래로 떨어뜨려 보라.’고 하니 예수는 이여기에 응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여 다수의 시험을 거치는 중에 천사가 와서 보호하였다.”


고 기록하였다.


이슬람교 창시자[回回敎祖] 마호메트를 보자. 그는 어지러운 세상[世塵]을 피하여 고요히 생각에 잠겨 명상[靜思冥想]함이 그 극에 달하자 천사(天使)가 와서 “신이 복음(福音)을 내렸다”고 하였다. 역사에 기록한 바에 의하면 어느 날 밤에 마호메트가 히라산 위에 있는데 명상에 깊이 잠기자 문득 천사가 한 권의 책을 끼고 와서 마호메트에게 그 책을 읽으라고 명하니 마호메트가 그것을 거절하고 듣지 않다[固辭不聽]가 기어이 그 명령에 의하여 이를 노래하였다[誦]는 것이 즉 코란경의 제1절이다. 세계의 3대 종교의 창시자도 대개 그러하였고 그 나머지 종교에서도 명상 중에 신(神)의 시현(示現)을 받음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더라.


오호라. 이것이 미신이냐 바른 믿음[正信]이냐, 환상이냐 깨달음[覺想]이냐. 우리가 헛되이 국외자로서 미신이라고 말하며 환상이라 가벼이 속단함은 너무 경솔한 듯하다. 만약 그것을 공명정대하게 비평을 하고자 하면, 우리는 직접 석가, 그리스도, 마호메트의 인격이 되며, 그 사람만큼의 경험과 실천[經歷] 있고, 그의 신적(神的) 공부[專工]를 거친 후에야 처음으로 그 진위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자기의 조그마한 지식을 가지고 무궁무극의 우주의 신비를 제 홀로 해결하였다고 자처하는 자는 차라리 무식쟁이에 가깝지 않은가.  


경전에 따르면, 을묘(1856) 봄 2월 3일에 대신사(최제우)께서 초당(草堂)에서 책으로 얼굴을 덮고 누워 있을 때 스님 같기도 하고 속인 같기도 한 이상한 사람이 최제우에게 절하고 말하기를 


“나는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있는데, 백일기도를 마치고 우연히 탑 아래에서 얼핏 잠이들었다가 일어나보니 이상한 책[異書]이 탑에 있는지라, 한 번 살펴보니 글자의 모양이나 글의 뜻[字劃書義]이 속세에서 처음 보는 바요 보통의 지혜[凡智]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그러므로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자 거의 모든 곳을 두루 답사하였는데, 선생[公]을 보고 처음으로 이 책을 전해야겠음을 알았습니다. 부탁하건대, 선생은 그 참된 내용을 파악[靈會]하시어 하늘의 선물[天賜]를 저버리지[負] 마소서.” 


대신사가 그것을 받아서 살펴본즉 유불선 가운데서는 보지 못하던 바로,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에도 없는 이상한 책이었다. 이인에게 말하기를 “책상에 두라.” 하니 그 이인이 말하기를 “내가 3일 후에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니, 선생은 뜻을 파악[意會]하소서.” 하였다. 


이인이 과연 3일 후에 왔는데, 대신사 말하기를 “뜻을 알았노라[意會].” 하니 스님[僧]이 절하고 고마워하며 말하기를 “선생은 실로 하늘사람[天人]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 책의 참된 뜻을 이해[意會]하리오. 선생은 보배로이 간직[珍藏]하소서.” 하고 뒤이어 계단 아래로 내려서니 곧 어디론가 사라졌다[因忽不見]. 대신사께서 처음으로 신령의 환상임을 아셨다. 이 책이 이른바 천서(天書)이며, 책 내용의 대략은 인내천(人乃天)이다. 책 내용 중에 또 49일 동안 하늘에 기도하라[祈天]는 뜻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책의 뜻[書義]에 따라 그렇게 할 결심을 하셨다고 하였다. 


물론 우주에는 따로이 인격적 천사(天使)가 없으며 또한 인간 이외의 인격적인 신인(神人)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천사라고 하고 이승(異僧)이라 함은 생각건대 대개 그 사람의 심령적 환상일 것이며, 심령의 환상이 능히 그 사람의 영지(靈知)와 신력(信力)을 굳건하게 함은 대체로 옛 성인이나 그 이후의 성인이나 한결같음[揆―一轍]은 실로 기이하지 아니한가.


니체의 사상적 영원윤회설(영원회귀설)*은 이런 점에서 실로 신비하기까지 한 뛰어난 지식[卓識]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대신사가 특히 예전의 성인과 다르며, 또 예선 성인을 넘어서는 까닭은 능히 그 이승의 천서로서만 만족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40년 과거 원고를 말살하고 이에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 딱음을 더하여 몇 년을 거친 후 경신(1860)년 4월 5일에 이르러 상제(上帝)와 직접 만나 담판을 시작하고 완연(完然)히 통일 종주(宗主)가 된 덕분[所以]이 아닌가. [[다음백과사전] 삶의 매순간과 모든 순간이 바뀌지 않은 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니체의 중심사상. 영겁회귀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의 철학에서 근본이 되는 사상이다.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니체의 중심사상인 힘에의 의지, 초인, 영겁회귀 등이 비유와 상징 및 시적인 문장으로 전개되어 있다. 영겁회귀란 서로 다른 삶이 무한히 반복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순간과 모든 순간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무한히 되풀이되는 것을 뜻한다.]


(다음에 계속) 



人乃天의 硏究

夜雷




새 사람이 되라. 새 思想을 너흐라. 새 知識을 배호라. 새 事業을 하라. 새 藝術을 創造하라. 온갓 것을 새 것으로 벌려노코 새 것으로 搆造하고 새 것으로 粧飾하라. 나는 새 것을 慕仰하는 者로라. 새를 憧憬하는 자로다. 새 것이 잇슴으로 사람은 사람다운 價値를 나타내는 것이오. 새 것이 잇슴으로 世界다운 光彩가 나는 것이다. 나는 過去의 歷史的 모든 어진 이를 崇拜하되 마지 안노라. 내가 그들을 崇拜하는 마음은 그들이 이미 나보다 先輩됨으로써가 안이다. 그들의 肉體가 이미 업서지고 그들의 影子는 이미 宇宙의 間에 사라져 버렷다. 그들은 이미 낡은 人物이엇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崇拜하는 것은 그들이 過去 그들의 時代에 여러 가지 새 것을 創造한 까닭이엇다. 百草를 맛보고 醫藥을 創造한 神農氏는 이미 이 世上에서 업서진 지 오래지만은 그의 精力이 뭉킨 醫藥의 發達을 千古<39> 後 今日에 오히려 우리에게 새 生命을 내게 하며 規矩를 尺度하야 舟車를 創造한 軒轅氏는 이미 이 世上에서 떠난 지 오래지만은 水陸의 交通은 五千年 後 今日에 더욱 發達되어 가는 中이 안인가. 그들은 實로 舊한 新人이다. 釋迦도 새 사람이며 孔子도 새 사람이며 耶穌도 새 사람이다. 道德을 唱導한 「소크라테쓰」도 새 사람이오 甘酒를 創造한 儀狄도 새 사람이다. 大道를 說破한 老聃도 새 사람이며 大惡을 主張한 盜跖도 새 사람이다. 本能을 謳歌한 「니체」도 새 사람이며 理性을 부르지즌 「톨스토이」도 새 사람이다. 禁慾主義의 「스토아」派도 새 사람이며 自然主義의 「루소」도 새 사람이다. 그들은 果然 새 사람 노릇을 잘 하엿다.

그들이 잇슴으로 人類는 人類다웟고 世界는 世界다웟다. 어느 民族이나 어느 國家를 勿論하고 새 사람이 잇섯슴으로 民族이 民族다웟고 國家가 國家다웟다.

支那엔 支那의 새 사람이 잇섯스며 日本엔 日本의 새 사람이 잇섯스며 朝鮮에는 朝鮮의 새 사람이 잇섯다. 乃至 西洋은 西洋의 새 사람이 잇섯고 東洋은 東洋의 새 사람이 잇서왓다.

檀君은 實로 朝鮮의 새 사람이엇다. 그리하야 高朱蒙, 朴赫居世 가튼 이도 다가티 새 사람이며 乙支文德, 金庾信은 軍人으로 새 사람이며 乙巴素, 泉蓋蘇文은 政治로 새 사람이며<40> 王仁, 崔致遠은 文學으로 새 사람이며 龜船을 創造한 李舜臣, 正音을 創造한 世宗은 더욱 새 사람이엇다. 新羅의 藝術과 高麗의 磁器는 朝鮮의 새 사람 主義를 遺憾 업시 發揮한 것이다. 朝鮮이 朝鮮된 所以는 이들의 새 사람이 만히 잇섯슴이 안일 것이냐.

그러나 내가 이제 쓰고저 하는 새 사람은 遠한 過去에 무텨인는 그들의 새 사람이 안이며 딸아서 政治, 文藝, 學術, 軍略으로의 새 사람도 안이오 가장 近하고 가장 偉大하고 그리하야 崇敎的 思想으로 朝鮮의 獨刱인 ― 안이 東洋의 獨刱인 ― 廣義로 말하면 世界的 獨刱인 人乃天主義 唱導者―崔水雲 先生의 思想을 한 말로 널리 世界에 紹介코저 함에 잇다.


水雲 先生은 朝鮮 慶州의 人, 名은 濟愚 水雲은 그의 號러라. 槿花의 半島가 三部로 分하얏슬 際―北은 高句麗 中은 百濟 南은 新羅 鼎立의 勢로써 天下를 玆에 三分하엿다. 그리하야 北을 代表한 高句麗는 武强으로 天下를 號令하엿고 南을 代表한 新羅는 文化로써 其 道― 一世를 風靡하니라. 新羅의 文化는 實로 朝鮮 文化의 精粹이어섯다. 그리하야 그의 文化는 一千年의 長한 歲月에 半島의 錦繡屛을 둘러섯다. 新羅 文獻 가온대 나의 가장 崇拜하는 이는 곳 孤雲 崔致遠 先生이니 其는 新羅末葉에 生한 天才이엇섯다. 그의 行蹟이야 말로<41> 儒彿仙 三敎 合一을 事實로 表顯하엿섯다. 그는 中年에 支那 唐에 往하야 儒學을 學하엿스며 又 佛에 就하야 佛學을 通曉하엿스며 晩年에는 世와 離하야 智離山에 入하야 마츰내 仙이 되엇다하는 그임으로 써라. 그야말로 朝鮮 史蹟에 一思想的 偉人으로 볼 수 잇섯다. 孤雲 去 後―千有餘年―李朝 哲宗 世에 孤雲의 故鄕인 慶州에서 崔水雲 先生이 誕生하엿는대 彼도 亦 崔氏의 人이엇다.

古來로 偉人의 生은 大槪가 奇蹟으로 그 神聖을 預證하엿섯다. 叔梁屹이 尼丘山에 禱하야 孔子를 誕生하다 하엿고 耶穌의 母―「마리아」는 神靈의 感化로 耶穌를 胚胎하다 하엿다. 孟子의 이른 바 前聖後聖이 其 揆― 一轍이라한 格言은 또한 奇蹟의 上에도 流行하는 것이겟다. 水雲 先生의 誕生에도 一層 奇蹟의 表顯이 잇섯다 한다.

經典에 이르되 「先生의 父鋈公이 頗히 文章 道德으로 一道에 著名하야 다만 林泉에 逍遙함으로 樂을 삼을 새 嘗히 年老하되 無子함으로써 憂하엿더니 一日은 偶然히 起身하야 內堂에 入한 즉 生面의 一婦人이 有하거늘 其 來由를 問한 즉 婦人이 말하되 妾이 年이 三十이 踰하도록 金尺里 親家에서 寡居하엿더니 今日 午前에 忽然 昏倒하야 精神을 莫省할 際에 兩曜가 懷中에 入하고 또한 異氣―身을 攝하야써 不知 中―此에 到하니이다. 公이 甚히 奇異히 여기샤 듸디어 同居하엿더니 마츰 有身한지라. 生할 실 時에 天氣淸明하며<42> 瑞雲이 室을 繞하고 其 家後 龜尾山이 三日을 大鳴하니라」하다.

奇蹟은 識者의 迷信으로 排斥하는 바 奇蹟의 奇蹟됨이 神秘이냐. 그를 迷信으로 排斥함이 識者인 지는 이는 吾人의 辨明할 바는 안이다. 奇蹟이 有할 지라도 凡人되면 是 凡人, 그가 無할 지라도 偉人되면 是 偉人일 뿐, 奇蹟이 有하야 偉人이 有한 바 안이오 偉人이 有한 故로 奇蹟이 有한 것이다. 同一의 理로 後人이 先生을 崔孤雲의 後裔라 하야, 이를 特히 記錄함도 孤雲과 水雲이 서로 다 偉人됨으로써이다. 幾千으로 算하는 慶州의 崔氏 獨히 水雲으로서 孤雲의 後裔라 呼케 됨은 是 常人의 常情뿐 孔子―말하되 犁牛의 子라도 牜+辛[騂][aaa]하고 또 角하면 可히 山川에 祭치 못하랴 함은 是實로 學할 바 格言이 안이랴. 世의 瞽瞍의 父로써 舜과 如한 子를 生하는 者 문득 多함을 見하면 光榮잇는 祖先에 依賴하야 自名을 圖得코저 함이 吾人에게 何益이 有하랴. 世人이 通常 그 世系를 古代 賢哲偉人에게 比附함은 是 吾人 人類의 弱點인대 平民主義의 大賊이니라. 然하면 水雲先生의 先生된 所以는 崔孤雲이 有함으로써 안이오 時代의 時代가 有함으로써요 偉人의 偉人될 뿐으로써라. 傭耕陳涉은 曰 王侯將相이엇지 種이 잇스랴 하엿고 王陽明이 曰 吾人의 心인들 엇지 孔子와 異하랴 말한 것은 다 가티 吾人의 獎勵할 만한 格言으로 水雲先生의 思想史를 讀하는 者ㅣ더욱 이를 覺悟할 必要가 잇겟다. 故로 先生은 일럿스되 너희는 나를 믿지 말고<43> 다만 한울만 미드라. 네 몸에 모셧스니 捨近取遠하지 말라. 訓戒하신 바 敎育―實로 萬古의 敎訓이 안이랴.


世界의 三大聖의 一로 屈指하는 孔子는 幼時부터 樽俎를 設하고 嬉遊의 間에도 禮儀의 作法으로 遊戱하엿다함은 史記에 載한 바 千古 後 吾人으로 오히려 尙古의 風이 多한 孔子의 風을 幼時로부터 窺할 만하다. 然이나 尙古는 保守니라. 寧히 退化니라. 儒敎를 國敎로 한 支那의 文化―就新改革의 道에 逡巡遷延함은 實로 孔子의 遺風을 因襲하는 弊端이 또한 不無타 云키 難하다. 然이나 이 엇지 孔子의 罪랴. 用하는 者―能히 善變치 못한 故이엇다. 溫故知新이라함은 孔子의 이른 바 안인가. 日新 又 日新이라 함도 湯의 盤銘으로 孔子의 贊誦한 바 안이냐. 論語를 이르고 論語를 모른다 함은 是 通俗의 格言으로 世의 曲學腐儒를 貶褒함에 넉넉히 一助가 되리라. 儒敎의 文化를 受한 李朝의 五百年―拜佛崇儒의 政治는 畢竟―文弱虛飾의 弊에 陷하야 이른 바 士者―崇古保守에 退屈한 餘弊는 終에 形式에 抱泥하고 虛名에 竊盜되어 身을 誤하고 國을 弊함에 至하엿나니 有志의 士―能히 此에 發憤衝怒치 안이하랴.

聞컨대 水雲先生의 祖先―累代儒門碩學으로 士林의 間에 其 聲望이 高하엿다 한다. 父<44>鋈公도 또한 祖先의 業을 繼承하야 其 名이 一道에 盖하엿섯다. 이는 先生의 「家君出世 名盖一道」라 한 一節로써 넉넉히 證明할 수 잇다. 然이나 鋈公은 다만 一個의 布衣로 其 生을 終하엿나니 故로 先生은 龍潭歌에 「可憐하다. 可憐하다. 우리 父親 可憐하다. 龜尾龍潭 조흔 勝地, 道德 文章 닥가 내어 龜尾山 下 一亭閣을 龍潭이라 이름하고 山林處士 一布衣로 後世에 傳탄말가」 嘆한 一節에 其 家運의 衰崩함을 發表하셧더니라. 斯와 如히 李末의 天下ㅣ有爲의 志士ㅣ다 山林에 退隱하고 無爲碌碌의 徒―世途에 登하야 阿世諛俗으로 尸位를 守한 結果는 遂―朝鮮으로 塗炭의 中에 入케 하여섯다. 國是가 日非하고 道德이 日墜하야 가는 社會現象을 觀察한 先生의 神識―常히 怏怏不樂하사 由來―自嘆하야 曰 「挽近 以來로 一世의 人이 各自 爲心하야 天理를 不順하고 天命을 不顧하니 心에 常히 悚然하야 向할 바를 不知하노라. 君―不君하며 臣―不臣하며 父―不父하며 子―不子하도다. 噫라. 今世의 運이 慽하도다. 儒道佛道 累千年에 運이 또한 衰하엿나니 人心이 危하고 道心이 微하며 三網이 喪하고 五倫이 弛하엿도다. 此世는 孔孟의 德으로도 足히 건지지 못할 것이오 堯舜의 治로도 足히 言치 못할 지니 반듯이 傷害―多하고 運命이 大革할진뎌」하시고 이에 先生은 깁히 感激한 바 有하야 從來 倜戃不覇의 懷를 慰하든 弓馬의 戱를 廢하며 販泉實業의 意를 棄하며 禪道卜數의 誤를 覺하고 天下를 周遊하야 大山長谷을<45> 歷訪하며 幽菴巨刹에 寄跡하사 天地自然의 妙趣와 宇宙人生의 眞諦를 冥想하심으로 其 志를 自慰하셧나니라.

大鵬이 飛치 안이하면 已어니와 飛하면 能히 天에 衝하고 潛龍이 起치 안이면 已어니와 起하면 能히 風雲을 吐하나니 歷山의 一 農夫인 虞舜으로 一擧에 萬乘의 婿郞이 되며 再擧에 天下를 富有케 됨은 是運의 幸이며 時의 運이라. 吾人은 寧히 大贊할 材料가 不少하다만은 曲阜의 一 野氓인 孔丘와 猶太의 一 賤生인 耶穌도 能히 萬折의 苦를 堪耐하야 萬世의 師表가 된 바 事實은 千古 後 吾人으로 實로 敬虔欽慕의 感을 禁키 不能하다. 鳴呼라. 雲中의 鶴이냐 朝陽의 鳳이냐.

거륵한 彼 偉人의 行蹟―雖 學코저 하야도 可能치 못하리로다. 試하야 先生의 半生史를 讀한 者―엇지 孔丘와 耶穌에 讓頭하리오.


古來―宗敎의 敎祖로써 其 得道의 初에 大槪―冥想의 修養이 업는 者 업스며 그리하야 其 冥想 中에서 不思議한 異蹟을 得치 안이한 者―稀少하니라. 彼 佛 釋迦는 苦行 六年의 修行에 依하야 成道하엿다 稱한다. 佛佗가 伽耶의 邊―菩提樹 下에 沈思 冥想하야 一切 外界의 誘惑을 不顧하고 理想의 境에 勇往邁進하야 心理의 雜感을 斷離하고 無上의<46> 道를 成하엿슴은 疑가 無한 事實이엇다. 其 冥想의 間에 釋迦가 情神 上 雜多의 困難에 遭한 狀은 詩的으로 傳하엿는대 慾界의 魔王이 大憤怒의 相으로, 魍魎, 羅刹, 夜叉 等의 眷屬을 送하야 大功大戱를 試하며 或은 艶冶窈窕한 魔女를 遣하야 愛情의 秋波로 意를 籠하고 媚를 呈하야 此를 誘惑코저 하며 或은 魍魎魔形은 諸般의 威形夭顔을 呈하야 弓箭, 矛槊, 棒搥의 武器를 携하야 菩提樹下에 盡集하야 此를 威嚇코저 하엿스나 畢竟은 敗北逃散한 後―於是에 黑雲이 玆에 晴하고 神光이 普히 十方을 照하야 大千世界를 晃曜하야 空에는 天花가 下하고 地에는 妙香이 滿하엿다 云하며

西敎의 基督도 또한 同樣의 歷史를 傳하엿나니 彼는 처음에 敎를 立하고저 할 세 洗者 요한의 許에 到하야 요단 河流에서 洗禮를 受한 後, 曠野에 往하야 沈思冥想의 中에서 四十日을 送하니라. 馬太傳 第四章에 其 狀을 記하야 曰

예수ㅣ聖靈의 引導로 惡魔의 試를 受키 爲하야 野에 往하니라. 四十日 四十夜를 不食獨坐하니 魔ㅣ彼에게 來하야 일러 曰 汝―만일 神의 子이면 此 石으로 麵包를 되게 하라. 예수 答하야 曰 人은 麵包 뿐으로만 生하는 者―안이라 한 대 是에서 惡魔―彼를 携하고 聖京에 往하야 殿의 頂上에 立케 하고 曰 汝―만일 神의 子이면 나의 身을 下에 投케 하여라. 耶穌도 此에 不應하엿다 記錄하야 多數의 試驗을 經하는 中에 天使가 來하야 保護하엿다<47> 書하엿고 回回敎祖 마호메트를 보건대 彼는 一時 世塵을 避하야 靜思冥想이 其 極에 達하매 天使―來하야 神의 福音을 下하엿다 하니라. 史에 記한 바에 依하면

一夜에 마호메트가 히라山上에 在하야 冥想을 凝할 時―문득 天使―來하야 一卷의 書를 携來하야 마호메트로 其書를 讀하라 命하니 마호메트가 此를 固辭不聽하다가 遂히 其 命에 依하야 此를 誦하엿다함이 卽 코―란經의 初節이엇다. 世界의 三大宗敎의 敎祖로 皆 旣然 하엿고 其餘 宗敎에서도 冥想의 間에 髣髴히 神의 示現을 受함에 對하야 云치 안인 者―업섯더라.

鳴呼라. 是 迷信이냐 正信이냐 幻想이냐 覺想이냐. 吾人이 空空히 局外에 坐하야 이를 迷信이라 稱하며 幻想이라 輕斷함은 너무 輕率한 듯하다. 萬若 그의 正大한 批評을 加하자면 吾人은 直接 釋迦, 基督, 馬合嘿 其人의 人格이 되며 其人의 經歷이 有하며 그의 凝神的 專工을 經한 後에야 처음으로 그의 眞僞를 判斷하리라. 吾人은 恒常 自己의 方寸의 知識을 가지고 無窮無極의 宇宙의 神秘를 제호를로 解決하엿다 自處하는 者는 寧히 無識에 近치 안이한가.

經典에 依한 즉 乙卯春 二月 三日 大神師―草堂에 臥하야 書로써 眼을 遮하엿더니 時에 一似僧似俗의 異人이 大神師께 拜하고 曰 吾ㅣ金剛山 楡岾寺에 在하야 百日祈禱를 終하고 偶然히 塔下에서 小眠이라가 起한 즉 異書가 塔에 在한지라 一見한 즉 其 字劃書義가 塵世에 刱見한 바요 凡智의 理解치 못할 바라. 故로 是書의 解者를 求코저하야 殆히 萬地를 遍踏하더니 公을 見하매 처음으로 是書의 有傳을 知하리로소니 請컨댄 公은 其 眞을<48> 靈會하사 天賜를 負치 勿하소서. 大神師―納하야 見한즉 儒佛仙 家流 中 아즉 見치 못하든 바로 古無今無의 異書러라. 異人에게 謂하야 曰 아즉 案에 留하야 두라. 其人이 曰 吾 三日 後에 반듯이 在來하리니 公은 意會하소서. 異人이 果然 其期에 來하엿거늘 大神師 曰 意會하엿노라. 僧이 拜謝 曰 公은 實로 天人이로다. 不然한 즉 엇지 此 一部의 眞을 意會하리요. 公은 珍藏하소서 하고 遂히 階에 下하더니 因忽不見이어늘 大神師 처음으로 神靈의 幻像임을 知하시다. 是書―果然 天書이며 書義의 大略은 人乃天의 義이며 書 中에 又 四十九日 祈天의 義―有한지라. 故로 書義에 依하야 遂히 其 意를 決하시다 云. 勿論 宇宙의 間에는 別로 人格的 天使가 업스며 또한 人間 以外의 人格的 神人이 別有할 것이 안이로다. 이른 바 天使라 하며 異僧이라 함은 恐컨대 皆―其人의 心靈的 幻像일 것이며 心靈의 幻像이 잇서 能히 其人의 靈知와 信力을 堅固케 함은 盖 前聖 後聖이 其 揆―一轍임은 實로 奇異치 안이한가. 「니체」의 思想的 永遠輪回說은 이런 點에서 實로 神秘的 卓識이 잇다 할지로다. 然이나 大神師의 特히 前聖에 異하며 又 前聖에 超越한 所以는 能히 此 異僧의 天書로써 滿足타 안이하고 스스로 四十年 過去 原稿를 抹殺하고 此에 自力 自修를 加한지 數年을 經한 後―庚申 四月 五日에 至하야 上帝와 直接 面會談判을 開始하고 完然히 統一 宗主가 된 所以가 안인가.<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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