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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가슴에 11월이 오면

시 백삼십

by 설애

중년의 가슴에 11월이 오면


이채


청춘의 푸른 잎도 지고 나면 낙엽이라

애당초 만물엔 정함이 없다 해도

사람이 사람인 까닭에

나, 이렇게 늙어감이 쓸쓸하노라


어느 하루도 소용없는 날 없었건만

이제 와 여기 앉았거늘

바람은 웬 말이 그리도 많으냐

천 년을 불고 가도 지칠 줄을 모르네


보란 듯이 이룬 것은 없어도

열심히 산다고 살았다

가시밭길은 살펴가며

어두운 길은 밝혀가며

때로는 갈림길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에 잠 없는 밤이 많아


하고많은 세상일도 웃고 나면 그만이라

착하게 살고 싶었다

늙지 않은 산처럼

늙지 않은 물처럼

늙지 않은 별처럼


아, 나 이렇게 늙어갈 줄 몰랐노라


아, 이채 시인님을 이렇게 또 모실 줄 몰랐노라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으로 모셨던 예쁜 이채 시인님입니다.


8월에는 중년이 여름의 녹음처럼 진해지는 거라고 하시더니, 11월은 이렇게 늙어갈 줄 몰랐노라 하시다니요.


나, 이렇게 늙어감이 쓸쓸하노라
아, 나 이렇게 늙어갈 줄 몰랐노라


너무 슬프잖아요.

12월은 또 어쩌지요.

가는 세월 잡고 싶은 첫 날,


착하게 살고 싶었다
늙지 않은 산처럼
늙지 않은 물처럼
늙지 않은 별처럼


이 문장이 저에게 이정표가 됩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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