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2033년 11월 29일 화요일.
정진우의 기록을 각색.
오늘은 하루 종일 바이러스 검사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들은 혹시 모를 감염을 우려해서 분리된 방에서 나를 마주 보고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나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을 솔직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누구도 믿지 않았을 말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믿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조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유호와 둘이서만 쓰는 방이었다. 선준은 국정원 요원이라 다른 곳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선준이 그런 사람이었다니….
나와는 다른 방을 쓰고 있지만 회사 사람들도 이곳으로 도착해서 조사를 받았다. 지나가다 본 것이지만 은호도 이곳에 와있었다. 정말 생명력도 끊질긴 양반이었다. 그리고 인사팀 조민성 팀장의 모습도 보였다. 저 사람은 회사 측 사람인데…. 나는 혹시 몰라 경찰 조사 때 조민성 팀장을 자세히 조사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과 소은이 얼굴이 보고 싶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야 해서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전화 통화는 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엄마?”
“진우니? 진우 맞지? 우리 아들, 잘 지내지?”
“괜찮아요. 엄마도 잘 지내시죠?”
“정말 괜찮은 거야? 뉴스 보니깐 완전히 난리라던데, 지금 어디 있는데?”
“잠시 격리하고 있어요.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간단한 검사랑 조사 정도 받는 건데 정말 문제없이 끝날 거예요.”
“조사? 뭘 또 조사를 받아? 우리 아들이 뭘 잘못했다고!!”
“아니에요. 나쁜 뜻으로 조사를 받는 건 아니고 그냥 형식적인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이지? 진짜 다친데 없고? 영상 봤는데 너무 끔찍하던데 우리 아들 다친데 없는 거지? 대체 거기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정말 괜찮아요. 나중에….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정말 괜찮아요. 아버지는요?”
“너네 아빠? 여보, 전화 좀 받아봐. 진우야.”
“…. 여보세요? 진우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잘 지내시죠?”
“그래. 너는 밥은 잘 먹고 있지?”
아버지는 무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항상 그런 분이었다.
“네. 여기 밥도 잘 주고 있어요.”
“지금은 어디에 있는데?”
“아… 잠시 격리되어서 조사 좀 받고 있어요.”
“조사?”
“아…네. 별 일은 아니에요.”
“그래. 경찰이랑 군인이랑 다 거기 있는 거지? 나라에서 잘 챙겨줄 거니 너무 걱정 말아라.”
“네. 아버지 건강하시죠?”
“괜찮다니깐. 승우도 바꿔줄까?”
“네. 승우도 바꿔주시겠어요?”
“여보세요. 형! 괜찮아?”
승우는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었다. 대학교를 가자마자 자취를 하고 있던 동생이라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 괜찮은 것 같아. 임시 시설이라 좀 더럽고 불편한 데가 많지만”
동생과의 대화라서 그런지 부모님과 통화할 때보다는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와 씨, 거기 커뮤니티에서 봤는데 장난 아니더라. 그 괴물 같은 사람들은 다 처리한 건가?”
“글쎄. 잘 모르겠어. 군인들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는 하던데….”
“내가 거기 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아 왜 엄마, 내가 못 할 말 했어?”
“하하…. 엄마가 혼냈구나? 옆에 엄마 있는데 그런 말 좀 하지 마.”
“에이 진짜, 나는 아들 아닌가? 왜 항상 나한테만 뭐라 그러는지…. 여하튼 면회 같은 건 못 가나?”
“면회 같은 건 없는 것 같아. 그래도 금방 풀리지 않을까?”
“형도 죽을 맛이겠다. 아! 그 소은 누나랑은?”
“소은이랑은 이제 따로 연락해야지.”
“그래, 형. 고생 많네. 건강하고 또 전화해줘. 엄마랑 아빠가 형 걱정하느라 밥도 잘 못 먹더라… 그럼 끊…응? 엄마? 알았어.”
“진우야, 너 언제 나올 수 있는데?”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제가 또 연락드릴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 우리 아들. 올 때 꼭 연락해. 우리 아들 좋아하는 것 많이 해둘게.”
“엄마도 참…. 알았어요. 건강하세요. 연락드릴게요.”
“응 꼭 연락해야 해!”
“네.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끊었다. 한 번에 3명과 통화를 하니 정신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 좋았다. 다음으로는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괜찮아?”
“어, 소은아. 오빠 괜찮아. 잘… 지내고 있지? 그때는 배터리가 갑자기….”
“됐어. 영상 보니깐 전화할 상황도 아니었더라….”
“…. 그래, 아 혹시 면접은 잘 봤어?”
“오늘 면접이야.”
“아!! 미안. 면접 준비 중이었지? 미안. 미안.”
“미안할게 뭐 있어. 오빠나 나나 타이밍이라는 게 참…. 서로 맞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소은이가 나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실상 관계를 정리하자는 그 말…. 너무 슬프고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그 이후 벌어진 일 때문에 제대로 되짚어 보지 못했던 그 말이었다.
“소은아. 전에 이야기했듯이 우리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자.”
“응. 미안해. 오빠. 꼭 그러자. 지금은 어디 있는데?”
“여기 잠시 격리되어있어. 언제 나갈지는 모르는데 내가 나갈 때 꼭 연락할게.”
“…. 그래. 오빠. 나중에 꼭 연락 줘. 내가 밥 사줄게. 오빠 좋아하는 거기 꼭 가자.”
소은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꼭.”
“응. 오빠가 먼저 끊어.”
“아냐, 네가 먼저 끊어도 괜찮아.”
“아니야. 오빠가 먼저 끊어.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래, 잘 지내고. 오늘 면접 꼭 잘 봐!”
“고마워.”
“그래….”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소은이와의 관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소은이의 반응을 보니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이곳을 빠져나가면 꼭 그녀와 다시 가까워질 것이다.
임시로 마련된 침대에 누웠다. 제대로 된 침대는 아니고 부서질 것 같은 철제에 매트리스를 깐 정도라 불편했지만 그래도 잠은 청할 수 있을 정도였다. 회사 앞에 마련되어있던 곳보다는 백배는 더 괜찮은 곳이었다.
“유호 님?”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유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조사는 잘 받으셨어요?”
“뭐… 오늘은 아직은 별거 없었네요. 내일부터는 저 다른 데로 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데요?”
“네. 연구소에서 일했으니 거기서 일한 사람들만 따로 모아서 조사하려나 봐요.”
“유호 님은 저것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계셨던 거죠?”
내 말을 들은 유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여기까지 합시다. 이야기는 오늘 실컷 해서 이제 지켰네요. 전 잡니다. 진우 님도 어서 주무세요.”
유호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잠을 자려고 하는데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주십시오.”
방호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죠?”
“여기 계신 분들은 저희를 따라와 주십시오.”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할 말만 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냐고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나에게 총을 겨눴다.
“무…무슨?”
“긴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희를 따라와 주십시오.”
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를 따라 나왔다. 밖으로 나가니 우리말고도 다른 생존자들도 군인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가은도 보였다.
“가은 님!”
“진우 님! 이게 무슨 일이래요?”
가은이 말했다. 그러자 방호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쓸데없는 말은 금지입니다. 어서 저희를 따라와 주십시오.”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가은에게 나중에 보자고 하고 군인을 따라갔다. 가은 역시 다른 군인과 함께 어디론가로 갔다.
“어이, 거기는 연구원이 하나 있다. 그 사람은 여기로!”
다른 군인이 나타나 유호를 데려갔다. 나는 유호와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나를 데려가는 군인을 따라가니 트럭 한 대에 보였다. 나 말고도 다른 생존자들이 탄 트럭이었다. 영문도 모른 체 나는 뒷좌석에 그들과 함께 탔다.
“혹시 무슨…”
‘쿠웅!!’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려고 할 때 저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놀라서 확인하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젠장!! 빨리 출발해!!!”
군인 한 명이 다급히 운전석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트럭이 출발했다. 갑작스러운 출발에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겨우 뒤를 잡았다. 멀리서 기관총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확인하니 놈들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놈들이 이곳을 공격하고 있던 것이었다. 트럭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놈들은 아직 한참 뒤에 있었다. 하지만 놈들의 숫자는 여태까지 본 것 이상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림짐작으로 봐도 엄청 난 수준의 놈들이 그대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회사에서 탈출했고 도시에서 보이지 않은 놈들이 총공격으로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지옥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트럭은 한참을 달리다가 어디에선가 멈췄다.
“내리십시오.”
방호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트럭에서 내렸다. 그리고 군인을 따라갔다. 그곳은 또 하나의 봉쇄 구역이었다. 임시로 마련된 곳 하고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물론 이곳 역시 임시 구역이었지만 그래도 들어간 정성이 달랐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있고 놈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자, 이리로 들어가십시오.”
군인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소독실이었다. 아까 검사를 받을 때도 계속 소독을 하긴 했는데 이곳에서도 소독을 받아야 했다. 그때, 하늘 위로 전투기 소리가 들렸다. 아마 놈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 같았다. 전투기까지 부를 정도라니….
“입고 있던 옷은 지금 다 태울 겁니다. 이 옷을 입고 한 분씩 나와주세요.”
소독이 끝나자 우리는 군인이 새로 지급한 옷을 입어야 했다. 원래 있던 곳에서 입고 있던 옷도 지급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군인은 우리에게 핸드폰을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그게 인권 침해가 아니냐고 했지만 군인은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핸드폰을 제출했다. 그들에게 저항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여기서 다시 처음부터 조사를 받으실 것이고 당분간 이 밖으로 나가지는 못 할 것입니다. 만약, 저 괴물들이 다시 이곳을 공격하면 또 이동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 모르는 방으로 이동한 우리에게 군인이 말했다. 우리를 버리지 않고 이렇게 살려주는 것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별 말하지 않고 안내받은 방에서 쉴 채비를 했다.
“정진우 씨?”
방에서 쉬려고 하는데 또 다른 군인이 나타나 나를 불렀다. 그는 나를 부른 목적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따라간 곳은 조사실 같은 공간이었다. 또 조사인 건가…. 그리고 그 방에는 가은도 있었다.
“진우 님!”
“가은 님. 대체 이게?”
“자, 앉으시죠.”
가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나를 보더니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방호복조차 입고 있지 않았다.
“여기는 격리를 하지 않고 조사를 하시나 보군요. 그곳도 방호복도 입지 않고요.”
내가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 말했다.
“뭐…그런 식으로 감염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요.”
그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어디부터 말하면 될까요? 조사하시려는 거죠?”
“저는 조우철 중장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작전을 지휘하고 있죠.”
우철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우철의 계급장이 보였다.
“중장님께서 어찌하여 저희를…?”
“오늘 아침 조사한 자료를 보고 받는데 흥미로운 이름이 보여서요. 최가은 씨, 정진우 씨.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은 것을 조사하고 있었다고요? 그리고 가은 씨는 결정적인 자료를 SNS에 올렸고.”
“그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건가요?”
가은이 따지듯이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여러분을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일을 하셨다고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다만….”
우철이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그의 핸드폰에서는 뉴스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바깥세상은 지옥이었다. 놈들이 우리가 있던 도시를 탈출해 이곳저곳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정부는 본격적으로 그들을 소탕하고 있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내용도 나오고 있었다.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도 얼마 못 버틸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좀비니 뭐니라고 생각했는데 놈들은 지능이 있습니다. 행동할 줄 알고요. 숨을 수도 있습니다. 무기도 사용하고, 전략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존재들이에요.”
우철이 핸드폰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요?”
“하하… 조금씩 저희랑 이동하실 겁니다. 여기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요. IB의 직원 분들 대부분은 그냥 직장인이라 그리 도움은 되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가겠지만 여기 계신 두 분과 연구원들은 저희랑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실 겁니다. 정부에서는 비상사태까지 염두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일을 아는 여러분들은 최소한 저희의 보호를 받으셔야 하고요. 두 분은 내일 아침, 다시 이동하 시계 될 예정이니 저희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
“안 가는 방법도 있나요?”
가은이 물었다.
“하하… 없습니다. 그래도 저희의 보호를 받으시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우철은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를 보호해준다니 고맙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우철과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군인의 안내를 받아 각자의 처소로 이동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가은에게 물었다.
“글쎄요. 연구원은 그렇다 쳐도 왜 우리는 계속 데리고 가려는지. 무슨 꿍꿍이인지를 모르겠어요.”
“일단 안 가는 방법은 없으니, 저들을 따라야죠.”
“아, 저는 이 방이에요. 진우 님. 당분간은 계속 같이 다니겠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가은이 나에게 인사했다. 나도 가은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은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아까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불편한 침대였다. 오늘은 정말 긴 하루였다. 내일이면 다시 또 이동한다고 하니 일찍 잠을 청해야 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바깥은 이제 완전한 지옥이 되었고, 지금부터는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놈들이 서울까지 오지는 않겠지? 가족들과 여자 친구가 걱정되었다. 밤새 전투기 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야. 군인들이 어떻게든 놈들을 처리해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잠에 들었다.
하지만 아주 아주 아주 긴 밤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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