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서 참았던 게 아니라 무서워서 도망쳤다

5회기 -4 | 내 잘못이 있다면 그건

by 차원

※ 이 글은 심리상담을 받으며 쓴 기록입니다. 실제 상담 내용을 일부 편집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5회기 -3>에 이어서 쓰는 5회기 마지막화 입니다.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어요.
그냥 부모님이 봤던 말 안 듣고 사고치고
비난 받는 이미지가 자신의 이미지로 돼 있어요.


'말 안 들으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라고
아이 때 생각한 것을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 규칙을 스스로 그냥 지키고 계시는 거예요.
일종의 법처럼 됐어요. 자연 법칙처럼.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성으로는 아는데
감정적으로는 뭐랄까,
약간 감정을 하대했던 것 같아요.
-네 말씀 잘하셨어요.
그럼 앞으로 할 일이 뭘까요?
-저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그래서 자기 이미지를 다시 세워야 해요.
자신을 하대하지 않는 거,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받아들이는 것. 제가 보증해요.
차원 씨가 느끼고 사고하는 게 맞아요.







내담자 | 얘기했던 것처럼 제 자신이 자꾸 뒷전이 돼버려요.


상담자 | 그렇죠 뒷전이 된 이유가 있죠. 왜 내가 뒷전이 되죠?


내담자 | 그 상대방한테 다 맞춰야 되는..


상담자 | 그러니까 그게 왜일까요?


내담자 | 잘 지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제가 받아들여지는 게 목적이 돼서


상담자 | 네 맞아요. 제가 이런 예를 하나 들게요. 어떤 예를 들거냐면 결혼 정보회사의 점수 매기고 이런 걸 예시로 들 거예요. 차원 씨가 학력이 어떻게 되시죠?


내담자 | 대학교요.


상담자 | 그래요. 만약에 결혼 정보회사에 갔는데 매니저가 중졸에 직업도 없는 사람을 딱 매칭해줬다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내담자 | 약간 좀 날 무시한다라고.


상담자 | 그렇죠. 내가 그래도 대학교 졸업한 사람에 회사도 다니는 사람인데 그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 거잖아요. 열받죠. 중학교 졸업한 사람 딱 내밀면 기분이 나쁘죠.

기분이 안 나쁘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내담자 |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감이 낮은 상태일 것 같아요.


상담자 | 맞아요. 정확하게 말씀하시네요.

반대로 결혼정보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미국 하버드 MBA 졸업해가지고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에 근무하는 사람의 이력서를 내어주면서, 아 좀 마음에 안 드시겠지만 이게 우리가 갖고 있는 최고의 좋은 사람이에요. 이런 정도 사람을 소개해주면서 말을 하면 어땠을 것 같아요?


내담자 | 나를 높게 평가하고 있구나.


상담자 | 그렇죠.


내담자 | 아닌 척하지만 뭔가 내가 그 정도인가, 기분은 좋을 것 같아요.


상담자 | 기분 좋죠. 내가 이쯤인가 이런 마음이 들죠. 근데 지금 이걸 예를 들면 차원 씨가 중학교 졸업한 사람을 매칭해주니까 이런 사람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지금 소개팅하러 나가는 그런 상황이세요.

자신이 여성으로서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고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모르세요.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어요. 그냥 부모님이 봤던 말 안 듣고 사고치고 비난 받는 이미지가 자신의 이미지로 돼 있어요. 그리고 언니랑 동생 사이에서 동생을 낳으려고 낳았다고,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아이라고 본인을 생각하세요. 아빠가 동생 있을 때만 고기 사주려고 하나 이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그냥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봐 내 가치는 이 정도인가, 이렇게 되잖아요. 원인을 말하자면 사랑받지 못했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지 못했어요.


상담자 | 그래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면, 사랑받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지 못했다고 할 때 여기서 차원 씨가 뭘 잘못하셨어요? 차원 씨의 잘못을 한번 말해보세요.

차원 씨가 기여한 게 어떤게 있어요?


상담자 | 말 안 듣고, 그거 아니에요.


내담자 | 그거를 말하려고 했는데..


상담자 | 네 아니에요. 답이 아니에요. 우리 애들도 말 안 들어요.

그렇다고 제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진 않아요.

화는 나지만 화가 나는 거랑 사랑하지 않는 건 달라요.


내담자 | 그렇게 보면은 제가 뭘 해서 그런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상담자 | 맞아요. 차원 씨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랑이 안 왔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확인을 못 받았어요.

차원 씨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 지금까지 그 원인이 나에게 있어, 라고 하고 자기 안에서 이유를 계속 찾으면서 이렇게 된 거거든요.

내가 사랑받지 못할 만하니까 사랑받지 못했지. 내가 형편 없으니까 내 가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거지.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자기 귀인'이라고 표현하는데 아기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사셨던 거 같아요. 아빠의 한계예요. 아빠가 살갑게 해줬어야 되는데 회사 일로 좀 바쁘셨었나 봐요.


내담자 | 근데 뭐 엄마가 잘해줬으면 되지 않나요?


상담자 | 아빠랑 엄마는 달라요. 아빠의 사랑도 받아야 되고요. 엄마의 사랑도 받아야 돼요. 엘렉트라 콤플러스라는 말이 있거든요. 요즘은 잘 안 쓰는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과 혼용해서 쓰는 데, 그게 뭐냐면 아빠랑 결혼하고 싶을 만큼 아빠를 사랑하는 거예요 딸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애들이 아이일 때 엄마랑 결혼하고 싶을 만큼 엄마를 사랑하는 거고요. 성관계 그런 걸 의미하는 게 아니고, 사랑에 있어서 절대적인 관계인 걸 원하거든요.

그게 충족이 되지 못했어요. 그 이유를 '내가 안 예뻐서' '내가 가치가 없으니까' '내가 말을 안 들어서' 이렇게 아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되어있어요. 그래서 '말 안 들으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라고 아이 때 생각한 것을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 규칙을 스스로 그냥 지키고 계시는 거예요.

일종의 법처럼 됐어요. 자연 법칙처럼.


상담자 | 근데 제가 차원 씨 만나면 참 예쁘고 매력적인데 그걸 자신이 모른다니 참 안타깝네요.


상담자 | 그래요. 오늘 상담 마쳐야 되는데 제가 방금 설명한 거 어떻게 들으셨을까요.


내담자 | 제가 관심이 이것저것 많아서 상담을 하기 전에도 워낙 심리나 심리학책도 많이 봤다보니 스스로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 했거든요.


상담자 | 네. 맞아요.


내담자 | 근데 아는 게 많으면 해결이 돼야 됐었는데, 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상담자 | 알면 해결돼야 되는데 알아도 해결이 안 되죠. 감정의 영역은 알아도 해결이 안 돼요.

왜냐하면 아는 건 인지적인 차원에서 이성적으로 아는 거지 감정이 아는 건 아니거든요.

말 끊어서 미안해요.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요?


내담자 | 약간은 뭐가 뭔지 매칭이 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성으로는 아는데 감정적으로는 뭐랄까, 약간 감정을 하대했던 것 같아요.


상담자 | 네 말씀 잘하셨어요. 그럼 앞으로 할 일이 뭘까요?


내담자 | 저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상담자 | 그렇죠. 일단은 제가 상담해 본 분들 중에 똑똑하세요.

잘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많이 알고 계시고 표현도 아주 잘하세요. 똑똑하세요. 그래서 그동안 공부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자신에 대해서 많이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았어요.

근데 그 안에 무의식적인 것들은 알 수가 없으니 모르셨을 것 같아요.


내담자 | 네. 제가 심리학 책에서 저와 같은 사람의 마음 상태는 어디를 가든지 사자 우리 안에서 언제 공격당할지 몰라서 벌벌 떨고 있는 거랑 마찬가지다, 라는 표현을 읽었는데 너무 공감을 했거든요.

맞아 나 이런 느낌인데, 뭔가 항상 도마 위에 올라와 있는 것 같고. 회사에서도 그렇고 누가 하루 종일 말 안 걸면 내가 뭘 잘못하는 것 같고 그랬는데, 책만으로는 알긴 알았는데 그다음엔 더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몰랐거든요. 근데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알게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상담자 | 그래서 자기 이미지를 다시 세워야 해요. 일단은 하대하지 않는 거. 잘난척까지도 있는 그대로 대우해주는 거. 그런 자기 자신이 필요해요. 제가 차원 씨와 조금 비슷한 분을 오랫동안 상담하고 있는데 그분이 한 말이랑 좀 매칭해서 설명드리려고 그래요. 동물에 비교한다면 차원 씨가 어떤 동물이랑 닮은 것 같아요?


내담자 | 약간 은닉해서 사는 잘 숨어 다니고 잘 피해 다니는 그런 카멜레온 같은.


상담자 | 그랬군요. 아까 말씀드린 상담했던 분이 처음에 자신을 미어캣이라고 표현하다가 상담을 몇 년하고 나니까 선생님 저 사자네요, 라고 본인이 사자임을 깨닫고 사자로 살고 있어요. 미어캣은 진짜 안 어울렸거든요. 근데 사자로 사니까 정말 잘 어울려요. 옛날에는 아기 사자였고요. 지금은 청소년 사자쯤 됐어요. 제가 본 차원 씨는 사자지 카멜레온은 아닌데 본인의 정체성을 잘 모르시네요. 사자예요.


내담자 | 근데 가끔은 안하무인하게 속마음으로는 아 이것도 몰라 바보들, 막 이런 식으로 생각하거든요.


상담자 |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거라도 있는 게. 만약 그거라도 없으면 어떻게 돼요?


내담자 | 음. 근데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거를 절대 티 내지는 않아서.


상담자 | 다행히 기술이 뛰어나시네요. 좋은 사회적 기술도 많이 가졌어요.


내담자 | 아.. 그때 화장이 예쁜 척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되게 와닿긴 했어요.

감사합니다.


상담자 | 그래요. 고마워요. 오늘 여기까지 해야겠네요.

자신을 하대하지 않는 거,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받아들이는 것. 제가 보증해요. 차원 씨가 느끼고 사고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겁이 나잖아요. 그러면 그건 일단 틀린 거예요. 왜냐하면 차원 씨 안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하는 생각이에요. 내가 어른같이 느껴진다, 그럴 때는 믿으시고요.

겁이 나고 두려워요. 그럼 그때는 상처받은 어린 차원이가 발달한 거, 부모님 앞에 서 있는 어린 차원이가 튀어나온거예요. 그래서 이거 뭔가 두렵다, 불안하다, 겁이 난다. 그러면 이거는 상처받은 아이가 튀어나온 거니까 그거는 일단 좀 보류해 주세요.

하대하지 않는 거. 중요한 말씀 하셔서 참 좋았어요.


내담자 | 네. 감사합니다.





5회기 종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은 항상 개선해야할 것들로 가득차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엄청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중 하나가 '살찌는 것'에 대한 강박적인 자기 인식이었는데요. 6회기에서는 그 얘기들을 풀어보겠습니다. 다음 글은 2/15 일요일 오후 9시에 발행됩니다.



5회기-1 상담 <내 생각이 옳은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

5회기-2 상담 <미움받고 거절당한다는 공포 때문에 나를 지웠다>

5회기-3 상담 <겉으로는 쿨하고 털털한 성격 속에 감춰둔 건>


처음부터 보기

1회기 상담 <고도로 우울한 33세, 내 인생 첫 심리상담>

2회기 상담 <제가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구요?>

3회기 상담 <모든 일에 의욕이 안나는 '정신 지체 운동'>

4회기-1 상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술을 마셨다>

4회기-2 상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드러나면 어떨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