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까지 합류한 일행은 다시 보스턴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몬트리올이라는 큰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는 누굴 데리러 가는 거지?”
하늘을 비행하던 중 너구리가 사자에게 물었다.
"카피바라라고 화학공학을 공부한 친구래.”
"카피바라는 남미에 사는 동물 아닌가?”
"그래 맞아. 하지만 지금은 몬트리올의 ‘비오돔'이라는 동물원에 잡혀있어서 우리가 꺼내주어야 해.”
사자가 말했다. 너구리의 말대로 카피바라는 아르헨티나 코리엔티스 지방 (Corrientes)의 출신 1)이었지만, 지금은 인간들의 동물원에 수감되어 있었다.
몬트리올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날던 사자 일행은 마침내 원형 공 모양의 ‘비오돔' 동물원을 발견했고, 바로 그 위 상공에서 독수리는 큰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여기는 보는 눈이 많아서 공중으로 침투해야 해. 다람쥐 준비됐지?"
사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말하자, 다람쥐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여기서 장비도 없이 뛰어내린다고? 정신나갔...” 너구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람쥐는 동물원이 있는 곳을 향해 다이빙을 하듯 뛰어내렸고, 한참 수직 낙하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두 팔과 다리 사이의 날개를 활짝 폈다. 그렇게 베이스 점프를 하는 요원처럼 하늘 위 사자 일행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뭐야. 날다람쥐였어?”
예상치 못한 다람쥐의 행동에 간이 콩알만 해졌던 너구리와 거북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날개를 펴고 동물원이 있는 방향으로 멀어져 가는 다람쥐를 내려다보았다.
"너희들 다람쥐가 역할이 없다고 생각했지? 다람쥐는 '액션스쿨' 출신이야.” 사자가 말했다.
다람쥐는 그렇게 하늘을 날아 카피바라가 기거하는 비오돔의 투명 천정에 정확하게 착지했다. 비오돔은 유리로 만든 돔 내부의 열린 공간에서 동물들이 생활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다람쥐는 투명 천장 위에서 돔 안의 동물들을 훤히 관찰할 수 있었다. 돔 안을 살펴보던 다람쥐는 연못 옆에 앉아 있는 카피바라를 발견했고, 어떻게 알았는지 천장 위를 훑어보던 카피바라와 바로 눈이 마주쳤다.
"카피바라, 우리가 널 구해주러 왔어!”
다람쥐가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카피바라에게 설치류들 사이에 쓰이는 수신호를 보내자, 카피바라는 전혀 놀라거나 기뻐하는 기색 없이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다람쥐가 이어서 어렵게 준비해 온 구출 작전을 개시하려는데, 이때 카피바라는 무심히 비밀통로로 보이는 벽의 틈새로 들어가더니 유유히 야외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여러 마리의 쥐들이 카피바라를 따라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다람쥐가 천정에서 내려와 야외로 나온 카피바라에게 접근하자, 카피바라는 고맙다는 말한마디 없이혼자 중얼거렸다.
"흰 기린이 애들을 보냈군. 기린에게 그동안 도움을 받았었으니, 귀찮지만 따라가야겠지...”
혼잣말을 마치자마자 카피바라는 자신을 떠나 보내려 따라 나온 쥐들에게 빨리 들어가라는 듯손짓했다. 그러자, 쥐들은 일사불란하게 다시 동물원 안으로 들어갔다.
다람쥐는 정작 구해주러 온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카피바라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피바라에게 깍듯이 행동하는 쥐들을 보며, 카피바라가 뭔가 있는 동물일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꾹 참았다. 그리고 하늘 높이에서 원을 그리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독수리에게 구출에 성공했다는 의미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2)
(주석)
1) 참고로 "카피바라"와 쿠바혁명으로 유명한 "체게바라"는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2) 카피바라는 거물이다. 동물원에서 지내긴 하지만, 자유롭게 외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다. 카피바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보려면 <부록: 날조된 카피바라의 SNS이미지>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