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격리생활 <88~92일 차>
88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10일 차) - 6월 11일
이날은 모두의 골칫거리였던
크로아티안 테라피스트 다리오가 하선한 날이다.
그는 한 달이 넘게 하루에도 몇 번씩
HR (Human Resource) & Crew Office와
우리 오피스에 찾아왔었다.
선사는 왜 나를 집에 보내주지 않는지
컴플레인을 하러 온 것이었다.
배가 격리된 이후에는
레스토랑, 바, 흡연실 등의 크루 공간을
장기간 동안 미사용 방치해서는 안 되는
승객 공간으로 이동시켰었다.
크루의 부서와 직책에 따라서는
객실을 배정받은 크루도 있었다.
다리오 또한 이 특혜를 누릴 수 있는 크루에 속했다.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
넓고 확 트인 오픈덱의 흡연실,
다리오는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에 한 끼니만 먹으러
겨우 레스토랑에 왔고,
그 전후로 체온 검사를 하러 우리 오피스에 왔고,
온몸에 담배 냄새가 배도록
창문 없는 좁은 크루 흡연실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창문 없는 덱 B(지하 2층)에 있는
크루 캐빈을 사용하였다.
매니저들이나 메디컬팀에서
그와 대화를 해보려고 수없이 노력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괜찮다고 했고,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다시금 찾아와서
집에 언제 갈 수 있냐고 왜 배에 갇혀두는 것이냐고
컴플레인을 하곤 했다.
그랬던 다리오가 하선하는 날이었다.
이날 아침에 처음으로
다리오의 진짜 환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오후부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가까이 있던 배들의 불빛도 희미하게 보이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이러다가 항공편이 취소되어
다음날 예정되어 있는 하선이 취소되는 것은 아닌가
모두들 걱정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었다.
89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11일 차) - 6월 12일
결국 궂은 날씨와 짙은 안개, 높은 물살 탓에
텐더 보트 운행이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모든 하선이 취소되었다.
잇달아 6월 15일 전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사우스 아프리칸 전세기도 취소되었다.
날씨 탓은 아니나 명확한 이유 없이
전세기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90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12일 차) - 6월 13일
드디어 파란 하늘이다.
브리티시 2명과 인디안 1명이 하선했다.
91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13일 차) - 6월 14일
이날은 나름 Big Day 였다.
국경 봉쇄 해제를 기다리며 준비하기 까다로웠던
우크라이니안 13명이
드디어 하선할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호텔 부서의 총책임자인
브리티시 Hotel General Manager 재키가
하선하는 날이기도 했다.
재키는 빅 보스랍시고 그 누구에게도 으스대지 않는
굉장히 나이스한 50대 미스였다.
이런 시국에 총책임자가 하선을 하다니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후 그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닐이 있으니
경제적 지출을 줄이는 차원에서 높은 샐러리를 받는
브리티시 크루를 귀환시키는 것이
선사의 입장에서는 보다 나은 조건인 것이다.
앞으로는 내가 대빵 보스라고 부르는
Hotel Operation & Retails Manager 닐이
HGM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92일 차 (코로나 의심증상 격리 14일 차) - 6월 15일
모두가 기다리던 또 다른 Big Day 였다.
첫 번째 이유는
나머지 인디안 크루 45명이
그 외 필리피노 1명이 하선했다.
두 번째 이유는
계획하고 있었던 승객 공간의 부분 봉쇄를
준비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니안이나 인디안 같은
오랫동안 기다린 빅 그룹까지 하선을 하니
어느덧 승선 인원이 975명에서 210명으로 줄었다.
그러니 본격적인 에너지 절약을 위해
지금까지 사용해오던 큰 공간을 봉쇄하고
작은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청결 유지도 비교적 수월해진다는 이유도 있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나의 생일 파티 다음 날
어처구니없게도 DJ 바비의 행오버 고열이
코로나 의심 증상이라 간주되어 격리당한
총 11명의 크루가 격리 해제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격리로 인해
비 격리 크루들의 업무 시간이 늘었으니
그들이 나오기만을 다들 간절히 기다렸었다.
또한 격리로 인해 하선이 취소되었었던
브라질리언 2명의 하선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Welcome back
to the magical place called work :-))
& finally it’s time for repatr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