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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헌 Jul 03. 2016

까닭 없이 짖는 개는 없다

⑦ 벤의 소리들

으렁 으렁, 와릉 와릉, 멍멍, 컹컹, 캥, 호오오올…


내게 익숙한, 내가 알아들은 벤의 소리들은 대략 이렇다. 이런 소리를 낼 땐 어떤 행동을 했지 하는 개 주인 나름의 진료기록이랄까. 누군가는 음의 길이로 기분을 안다던데, 그 말도 그럴듯 하다.


십여 년 전 벤이 어릴 때 내 친구 무리가 우르르 놀러온 적이 있다. 덩치가 큰 둘과 작은 둘. 벤은 덩치들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너희 둘만 팬다'는 식으로 짖었다. 개중에 더 뚱뚱한 친구, 광재에겐 가차없이 경계심을 드러냈다. 짧고 날카로운 고음으로 왕- 왕- 왕-. 벤은 여자보단 남자를, 홀쭉이보단 뚱뚱이를 경계했다. 저도 수컷이라고.


택배 아저씨가 오면 그렇게 짖었다. 커다랗고 둥근 머리(풀페이스 헬멧)가 나타났다 하면 질겁을 했다. 같은 경계라도, 그때 내던 소리는 달랐다. 일단 중음이다. 짧고 묵직하게, 그리고 꾸준히 짖는다. 워- 워- 워-. 소리엔 공포가 섞여 있고, 이마엔 주름이 잡힌다. 간혹 잇몸을 엿보이기도 한다.


우물거리듯 중음으로 짖는다. 그러면서 유인의 자세를 보인다. 머리를 낮추고 양 발꿈치를 바닥에 댄 채 허리를 높이 올리고 꼬리는 쑤욱 올린다. 내 반응이 시원찮거나, 굼뜨면 소리가 날카로워진다. 그리곤 기세 좋게 오른쪽 왼쪽으로 뛰고, 또 우물거리듯 짖고 나서 다시 한번 유인한다. 이런 행동은 언제 보일까? 애견인이라면 금세 알아챘겠지만, 같이 놀자는 또는 산책을 가자는 표시다.


호오오오올- 하고 울부짖기도 했다. 한나절, 하루 이상 집을 비울 때 녀석은 서럽게 울었다. 희한한 게 현관을 나서기 전부터 이런 소리를 냈다는 것. 갖가지 여행 가방, 캐리어를 보고 안 걸까. 녀석은 집 앞 주차장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고 긴 소리를 빼곤 했다.


저마다 음의 높낮이, 빈도, 강세, 길이가 제각각이다. 녀석이 털을 곤두세울 때, 배를 뒤집을 때, 먹이를 탐할 때 내던 소리는 다 달랐다.


책 '개는 어떻게 말하는가'의 저자 스탠리 코렌은 음의 길이로 개의 기분을 읽을 수 있다고 적는다.

"기본적으로 짧고 높고 날카로운 소리는 공포나 고통, 욕구와 연결된다. 반면 긴 경우는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즐거움, 기쁨, 유혹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음이 길수록 개가 그 신호의 의미와 이어질 행동에 대해 마음을 분명하게 결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까닭 없이 짖는 개는 없다. 어쩌면 이 뻔한 명제를 증명하려, 지난 십수 년의 추억을 헤집었다. 녀석은 난대로, 제 어미에게 배운대로 짖었을 뿐인데, 그 의도를 몰라 네 식구가 달려들기도 여러 번. 빈 물그릇을 덜그럭대던, 닭고기 삶는 냄새에 컹컹거리던, 아빠를 기다리며 끙끙대던, 이젠 들을 수 없는 네 소리가 떠올라.


2015년 가을 무렵 마우스피스를 낀 벤. 지난 15년을 통틀어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 하울링에 따른 층간소음 문제로 끼웠지만, 이내 흘러내려서 뺐다.




벤과의 5600일 - 프롤로그

이야기를 시작하며


벤과의 5600일① 대낮의 실종

8월 땡볕, 가출, 도깨비풀


벤과의 5600일② 녀석의 간식들

천하장사 소시지


벤과의 5600일③ 벤과의 러닝

형, 이것밖에 못 뛰어?


벤과의 5600일④ 털 손질

탈모여도 괜찮아


벤과의 5600일⑤ 오줌 소탕작전

쉬, 가죽소파, 베이킹소다


벤과의 5600일⑥ 사진 수집을 게을리한 개 주인의 푸념

6월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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