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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Aug 18. 2024

동생

30년 가족사가 담긴 친정집, 구석구석 쳐다보노라면 하루는 눈물, 하루는 웃음, 하루는 감동, 하루는 회한으로 눈물 콧물 범벅되게 만드는 곳. 오늘은 이곳에서 함께 자란 동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개구쟁이에 천박지축이었던 동생이 자질구리한 사고들을 치고 나면,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 조아리시는 부모님을 자주 보았다. 그러는 사이, 나라도 잘하자고 맘먹고 일찍 철이 든 K장녀가 바로 나. 방이 두 개라서 유년시절엔 방 하나를 공유했고, 사춘기부터는 부모님이 거실로 밀려나시고, 우리 둘에게 방을 하나씩 나누어주셨다. 그래서였을까? 독립을 그렇게 원했을까? 죄송해였을까? 답답해서였을까? 행동력 넘치는 이십 대, 많은 일들이 있었던 나와 내 동생.


사실 나는 동생이 뭘 하며 사춘기를 보내고, 어떻게 대학을 갔으며, 어떻게 취직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비슷한 시기에 나도 사춘기를 보내고, 나도 대학을 갔으며, 나도 취업을 하고, 더하여 결혼을 하고, 더하여 이혼을 하느라 너무 바빴다. 어느 날, 소주 한병들고, 애인한테 차인 사연을 들고, 나의 반지하 단칸방 신혼집으로 찾아왔을때, 무척 낯설면서도 반가웠던 기억이 나긴 한다. 그리고, 내가 이혼을 하고, 신혼집에서 남겨진 짐을 싸던 날에도 내 동생은 함께 있었다. 차에 짐을 실으며 '아무 일도 아니야, 차라리 잘 됐어.'라고 웃는 내 얼굴을 사진에 담은 것도 내 동생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시 친정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 동생은 공무원준비를 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백수였다. 18개월짜리 조카가 옆방을 쓰러 왔다면 보통의 삼촌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지만, 이 삼촌은 눈물겹게 좋은 삼촌이었다. 내가 출근하고 없는 동안, 조카를 무릎에 앉혀놓고 ABC송을 틀고 같이 부르고, 스케치북 열어서 바나나도 같이 그리고, 놀이터에 나가서 미끄럼틀도 같이 타고, 무엇보다 아이의 애기애기했던 시절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사진으로 혹은 비디오로 담아준 게 내 동생이다. 연도별로, 월별로, 행사별로, 폴더에 담아 차곡차곡 저장해 준 것도 내 동생이다. 어느날 아이가 집안을 구석구석 뛰어 다니다 가구 모서리에 귀를 박아 귓불이 찢어진 날이 있었다. 너무 놀라 정신없는 엄마 옆에서 아이를 둘러업고 병원을 간 것도 내 동생이다.


호 매운 생강차, 맵다고 하니 삼촌 다 먹으란다. ㅋㅋㅋㅋㅋ


그 정신없고, 무도하게 바쁘고, 많은 일들이 휘몰아치던 시간, 내가 동생이 무얼 하는지 눈치챌 틈도 없던 사이, 동생은  뒤를 묵묵히 봐주고 있었음을 많은 동영상들을 통해 본다. 그때 부모님의 표정, 나의 표정, 내가 그들을 보지 않을 때, 그들은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 잠을 자지 않아 속 썩여서 미웠던 아이가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 매 순간 활짝 웃던 아이를 보면서 힘들게만 느껴졌던 그때,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글을 쓰고, 이 동영상을 찾느라, 그때의 동영상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땅만 보고 얼른 지나가라 했던 시간들이 다 지나가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사진과 동영상 속의 청춘들은 모두 흰머리 무성한 중년이 되어있다. 어찌 갚을꼬.

'잘하자, 잘하자, 잘하자' 또 다짐해 본다.


한국에 있는 동안, 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 곳곳에서 내 사진을 찍어준다.

누나야~ 웃어봐~~~
다리 길게 찍어줄게~~~
김치, 상치, 갈치, 양아치~~~

이가 다 드러나게 활짝 웃는 내 대부분의 사진은 이렇게 찍힌 것이다.

2024년 봄, 여수 향일암가는 길에 동생이 찍어준 사진.

동생을 제목으로 글을 써서 올해,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던 날, 동생에게 보냈주었다.

 

초등학교 백일장 수준이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예를 들어 안쓰면 내 맘을 못 알아듣는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착한 사람,
내 동생.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진짜 진짜 참진짜로 착한 내 동생.

누나가 훌러덩 시집가더니
다시 친정으로 훌러덩 돌아왔을 때,
엄마 도와 열일 육아해 준
동생
내 동생.

태양이의 첫걸음 순간,
처음으로 수박 먹던 순간,
귓불이 찢어져서 응급실로 가던
그 모든 순간에 열일해 준
동생.
내 동생.

누나는 미국으로 가고
연세 들어가시는 부모님 챙겨
몇 미터를 걸어가면 엄마가 힘든지
아빠가 휴지로 눈물을 닦으면
얼마나 피곤하신 건지 다 아는
고맙고 미안코 든든한
동생.
내 동생.

중고등학교시절,
대학교시절,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지 성취와 실패에만 매몰되어 있던 누나인데도, 미국서 오면 살뜰하게 챙기는
F남자.
동생.
내 동생.

한국가족여행에서 찍히는 다리가 길쭉한 사진은 모두 내 동생의 배려.
동생.
내 동생.

고맙고 사랑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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