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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Jul 21. 2020

그 감정들이 싫어 나를 미워했다.

자신을 얼마나 믿고 기다려주고 있나요?



산티아고로 떠났던 당시 내 마음은 조각조각 찢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멀리 떠나는 것을 말리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만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상처 입혔고, 나도 그만큼 상처 입었다. 일련의 사건들에 얽힌 오만가지 감정들로 괴로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웠던건 그 감정들 중 무엇 하나도 정확히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대체 왜 그런 감정들이 드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럽고 버겁고 아팠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의 출처를 알고 싶어 나를 닥달해대고 있었다. 내 안의 여러 인격들은 하나의 의견에도 서로 물고 뜯고 있었다. 하나가 체념하듯 "내 잘못으로 발생 된 죄책감이 틀림없어."라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자 또 다른 하나가 주먹을 쥐고 일어나 처참히 베인 상처 자국을 내밀며 "헛소리하지마. 이 감정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억울함이야."라며 단칼에 무고를 주장했다. 물고 뜯다? 딱 그 꼴이었다. 


나는 기왕 스페인까지 왔으니 어떻게든 결론을 내고 싶었기 때문에 Najera에서 Belorado까지 걷는 내내 인격들의 의견을 경청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강한 태양이 정수리를 통해 척추로 스며들자 쨍하니 어지러워 더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는 벌거벗은 느낌으로 길 위에 우두커니 서있게 되었다. 


길 위에는 그저 내가 믿는 신과 나
둘만 있었을 뿐인데도...



분명한건, 내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어 낱낱이 고백한다 해도 이 곳에서는 그 고백을 아무도 듣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무 고백이나 해보자 결심도 했다. 그런데도 내게서는 단 한마디 말도 나오질 않았다. 그저 입 안에서 웅웅 멤돌뿐이었다. 정확히 뭐라 표현해야 할까? 죄스러움과 합리화 중간 어디쯤에서 헤메는 양심의 소리?


그래, 그까짓 양심, 눈 한번 질끈 감고 대충 타협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껴졌으므로 계속 싸웠다. 태양이 점점 더 뜨거워질수록 나도 점점 더 어지러웠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사라지는 느낌




그 감정이 무엇이던 똑바로 마주해야 원인을 찾을 수 있더랬다. 마치 거짓말 하는 어린애를 닥달하듯이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그러나 엄마 눈을 흘낏 보는 것 마저도 버거운 어린 아이처럼 나는 쪼그라져갔다. 만일 떠나 오지 않았더라면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해결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갑갑함을 가슴 속 어딘가 구겨 넣은 채로 살아갔겠지. 



그러나 직면해야만 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찾아온다.


나를 억누르고 있는 불편함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할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평생을 살아간다면 자기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훌훌 털어내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인생은 훨씬 더 풍요로와진다.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나일때 가장 빛나는 법이므로 저마다 제 스타일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며 산다. 자신에게 당당할 때 비로소 자신감도 불끈 차오르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확히 무엇이 불편한 것일까?' 

'그것이 대체 왜 불편한 것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계속 길을 걸었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걸었다. 배낭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슬펐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외로움과 서러움 때문에. 

 


그게 꼭 지금이어야 한다고? 


Castildelgado에서 겨우 10km쯤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지도를 보고 Belorado라는 마을을 찾아 들어섰다. 그곳에서 머물거라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마을 중앙에 있는 카페에 의자에 주저앉았다. 척추를 타고 들어간 태양의 에너지가 온 혈관들을 타고 다니는 듯했다. 토할 것 같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마당에 작은 수영장이 있는 곳이었다. 리셥센에는 서글서글하게 웃는 아가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신은 일찍 왔지만 1층 침대 자리는 나이가 많은 분들을 위해 남겨둬야 해요." 그런 당당함이 좋았다.


내 침대는 창가 바로 옆에 있었다. 정오를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서야 해가 머리 위로 솟아 오르고 있었다. 대충 짐을 풀고 말끔히 샤워를 한 후 창틀에 걸 터 앉았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샤워를 마쳤는데도 날이 밝다니. 


창 밖으로 재잘재잘 떠들며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속에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감격하려는 찰나, 저 멀리 스페인의 파랗고 넓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넓다....' 


인생의 끝이라고 불리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우주 속 작은 존재인 나. 나는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한다. 작은 나는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비난한다. 


이게 대체 뭐 하는 걸까?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나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을까?

왜 나를 닦달하고 있을까?


무언가를 지키려는 작은 강아지처럼... 사실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꽉 움켜잡고는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광활한 우주 속의 아주 아주 작은 존재…. 그게 바로 나였다. 


이 사실을 깨닫고 보니 어느 무엇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이 아니어도 괜찮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으니 나를 닥달하며 괴롭힐 이유는 전혀 없다. 



벨로라도 의 알베르게 창가에 앉아서



젖은 머리가 바람에 닿아 시원했다. 동시에 창을 통해 내리쬐는 태양이 따스했다. 

몽롱한 기분에 눈을 감으니 그동안 듣지 못했던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새처럼 너무 작고 가여운 내가 눈 앞에 둥실 떠올랐다. 

스스로도 믿지 못해 불안에 떨고 있는 외로운 나.


내 스스로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 질문서

당신 스스로를 얼마나 믿고 기다려주고 있나요? 

저는 종종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야 더 성장할 것 같았거든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지만 기다리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제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머뭇거리는 제 자신이 밉고 답답하기도 했으니까요...  


여행 질문서 추가 질문

스스로를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다면 당신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제가 스스로를 단단히 믿고 기다려준다면 좀 더 현명하게,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문제에 직면하고자 하는 목적은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다시 평화로운 상태가 되는 것이지 고통스럽기 위해서가 아니니까요.  




 

사실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여야 한다는 것을.

그제서야 오히려 안심하고 내려놓을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왜일까? 

나는 늘 그럴 여유가 없었다. 토닥이는 대신 비난했다.  


'그러면 안되지. 그래 가지고 무슨 일을 한다고…' 


닦달하고 괴롭히고 돌을 던졌다.

돌을 던진 자리에는 피 흘리는 가엽고 작은 내가 있다. 


사실은 충분히 잘하고 있고,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운 작은 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산티아고는 나를 온전히 포용해주고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다. 

나는 그 길에서 무한히 사랑받았다. 


과연 나는 스스로를 그만큼 사랑하고 있었을까?

내가 이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을거라고, 행복해지는 것을 끝내 포기하지 않을거라고 믿고 있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를 단단히 믿기로 결심했다. 



벨로라도에서 쉬길 참말로 잘했다. 벨로라도 알베르게에는 작은 수영장이 있었으니까. 작은 수영장이었지만 지친 여행자들의 고단함을 녹여주기엔 충분했다. 


수영도 제대로 할 줄 몰라 물속에서 다리를 달랑거리며 걸을 뿐이지만 백조 못지않게 우아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틀림없었다. 


지금 이 순간의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승무원 시절 생존 수영을 한답시고 50m를 숨도 안 쉬고 냅다 수영했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항상 긴장해 있었을까? 그렇게 긴장한 채로 수영하고 나면 몸에 힘이 다 빠졌었다. 


그렇게 전력질주하며 살았다. 

어째서 무리하게 자기 자신을 닦달하며 행복을 뒤로 미뤄가며 살아온 것일까? 그때의 나에게 오늘의 여유를 두 컵 정도 보내주고 싶다. 아니 세 컵?


수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닭들에게 풀을 뜯어 주었다. 똑같은 풀이 지천에 깔려있었는데도 닭들은 내가 뜯어준 풀을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닭들에게 풀을 뜯어 먹이고 있으니 조금씩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부정적인 감정들과 마주할 만큼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건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사랑임에 틀림없다. 



송수연 코치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현재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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