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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연 Aug 02. 2020

나이가 들며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요?

젊음을 부러워하는 노인이 되고 말까 봐 염려된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특이하게도 완주했다는 증서를 준다. 증서는 돌돌 말린 마법 주문서 같은 형태로 제공되는데 열어보면 멋들어진 필기체 글씨가 적혀 있다. 이는 힘들게 걸어온 여행자들에게 꽤 그럴 듯 한 기념품이 된다.


증서는 나처럼 800km 너머로부터 걸어온 사람도 받을 수 있지만 100km 이상을 걸어온 누구에게나 준다. 800km는 한 달도 넘게  걸리지만 100km는 단 5일만 걸으면 된다.


지점이 사리아(Saria)라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사리아에 도착하면 여러 나라의 언어가 적혀있는 팻말을 볼 수 있다.  



여러 언어로 적힌 팻말들, 안녕하세요! 가 제일 반가운 건 저만 그런가요? :)



사리아에서부터는 갑자기 많은 수의 새로운 순례자들이 합류해서 걷게 된다. 그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헤진 곳 하나 없는 가방을 메고 있다. 짐도 많지 않아 걸음걸이도 가볍다.


그들은 묘하게 눈길을 끌어당긴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도 문득 내 꼴을 펴보게 된다. 아무리 좋은 말로 꾸며내도 뭐랄까, 나는 늙은 거지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사리아에 도착할 때쯤 나는 노쇠한 사람의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산티아고 길을 인생길로 비유했을 때 사리아가 7/8 지점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이제 이 길을 거의 다 걸은 것이다.



다만 희한했던 것은
실제로 늙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야말로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노인이 된 기분.  


장점도 많았다. 나는 노련했고 여유가 있었다. 특별히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픈 곳이 많아졌고 옷은 해져서 너덜너덜 보풀이 송송 올라와있었다. 등산화의 선명한 붉은 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돈도 거의 다 썼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도착할 때까지 생존할 어느 정도의 돈만 있으면 더는 욕심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미라클이다.)


반면에 사리아에서부터 합류한 이들실제 나이와 관계없이 젊고 생기가 있었다. 그들은 별 것도 아닌 것에 까르르 웃고 무엇이든 궁금해했다. 물론 등산화의 색도 선명했다. 그들은 마치... 아이들 같았다.


참으로 멋진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함을 단박에 해소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여행 질문서

"나이가 들며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요?"

"젊음을 부러워할까 봐 두렵습니다. 아무리 부러워한다 해도 절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여행 후반에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노인이 된 나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 젊음을 부러워하게 될까 봐. 그런 종류의 부러움은 죄악이다. 단지 상상할 뿐인데도 고통스럽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다시 젊어질 수는 없다.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부러워해 봤자 자신의 멍청함을 인증할 뿐이니 두배로 괴롭다.


그러나 멍청하다고 욕을 들어먹어도
때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대다수의 좋은 날들이 과거에 존재하듯 젊음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곤 했다. 지나치게 부러워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사리아에서 만난 타인의 젊음을 경험하며 나는 새로운 답을 얻었다.


1. 반드시 부럽지도 않을 것이고

2. 부럽다고 해서 꼭 괴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노련함이 좋았고, 내 헤진 티셔츠가 자랑스러웠다. 그들의 호기심 넘치는 눈빛과 모험과 로맨스가 가득한 여정이 부럽지 않았다.


그들의 우주와 내 우주는 다르기 때문이다.    



여행 질문서 추가 질문

"두려움 대신 무엇을 얻었나요?"

"오히려 흐뭇함을 얻었습니다. 제가 언젠가 노인이 되어 젊음을 대했을 때 부러워하는 대신 흐뭇해할 수 있다면 인생을 잘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앞으로도 젊은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정성껏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티아고 인생길에서 마침내 노인이 된 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에너지도, 호기심도, 깨끗한 옷과 배낭도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흐뭇했다. 앞으로 겪을 모험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나를 보며 느끼는 점이 있었을 테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주에서 연결되어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다.



여행 질문서

"나이가 들며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요?"


여행 질문서 추가 질문

"두려움 대신 무엇을 얻었나요?"


 

송수연 코치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현재는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강연과 코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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