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지난 4개월 동안 매일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써 올리던 걸 큰맘 먹고 멈추었다.
진행하는 책 출간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한 글쓰기 챌린지가 역으로 집필에 쏟아야 할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 같아서다. 덕분에 글쓰기 루틴도 몸에 배였고 속도도 좀 붙었으니 이 정도면 흡족한 챌린지 결과였다. 이번 2월엔 책 집필에 집중해 진도를 나간 뒤 3월에 글쓰기 챌린지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매일 글쓰기를 내려놓은 한 달은 어땠냐고?
1. 편해졌다
매일 지켜야 하는 마감시간이 없는 하루하루는 확실히 편했다. 난 한 달에 한 번은 꼭 감기몸살을 앓는데 그럴 때마다 글쓰기 챌린지는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일정이 빡빡한 출장이 잡힐 때도 글쓰기는 너무 귀찮은 일과 중 하나였다. '오늘은 뭐 쓰지?'란 고민 없이 시작하는 아침은 학교 가지 않아도 되는 방학과 같았다. 유후 난 자유다!
2. 독서 시간이 많아졌다
글을 구상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던 아침 산책은 오디오 콘텐츠를 듣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오래전에 시작한 장편 소설 A Suitable Boy 오디오북 진도도 꽤나 나갔고 팟캐스트도 이것저것 많이 챙겨 들었다.
3. 머리가 복잡해졌다
난 그렇게 꾸역꾸역, 내 하루 구석구석을 예전 버릇대로 온갖 미디어 콘텐츠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산책할 땐 땐 이어폰을 귀에 꽂았고, 집안일을 할 땐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틀어두었다. 뉴스를 듣던 리얼리티쇼를 틀어두던 뭐라도 켜두지 않으면 집안이 허전했다. 이렇게 종일 백그라운드에 노이즈를 틀어둔 날엔 어김없이 정신이 혼미했다. 이런 버릇이 글쓰기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글을 쓰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글주제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해야 하는 일 수 백 가지에 신경을 의식적으로 끄고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는 행위는 일상 속에서 고요함을 맛보게 해 주었고, 그렇게 만난 고요함은 절제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 중심이자 원천이었던 글쓰기가 없어져버리자 내 일상은 다시 스크린을 통한 자극을 쫓아 헐떡거리게 됐다.
4. 생기가 사라졌다
글을 쓸 땐 일상 모든 게 글감이 됐고 동료 작가님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플랫폼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게 반짝 거리는 아이디어로 변신해 글 한편으로 탄생했고, 그 순간들은 매번 경이로웠다. 하루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던 순간들이 사라져 버리자 나의 하루는 생존을 위한 시간으로 전략해 버렸다. 돈을 벌어야 하니 일을 하고, 배고프지 않아야 하니 요리를 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그저 그런 하루. 글쓰기를 그만두었을 뿐인데, 하루가 이렇게 재미 없어지다니.
5. 매일 글쓰기를 멈춘 대신 책 집필엔 진도를 나갔냐고? 예상했겠지만 아니올시다. 시간을 얻기 위해 멈춘 챌린진데, 그 시간을 지난 한 달 무엇으로 채웠는지 기억이 도통 나질 않는다. 글쓰기를 멈추고 자유와 편안함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활력과 삶의 균형을 지불했으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한 달이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매일 글쓰기. 다시 만나서 반가워.
글쓰기를 통해 만난 일상속 고요함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