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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Jul 29. 2019

살려고 시작한 운동, 일상이 되다

뒤늦게 운동을 시작한 30대의 이야기

호치민에 오고 나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꾸준히 뭘 해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게 잘 이어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퇴근 시간이 너무 늦고 운동할 곳을 찾아 또 이동을 해야 했고, 날씨 때문에 야외 운동은 할 수 있는 날이 제한적이었다. (막상 쓰고 보니 다 핑계 같지만...) 


평생 쓸 근육은 20대에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체육시간에 제일 높은 점수를 받은 건 구르기였을 만큼 운동신경이 없었다. (....) 또 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정말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회초년생 때 체력과 정신력만 믿고 몸을 혹사시켰더니 30대가 되는 순간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계절 바뀔 때마다 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렇게 내게 '운동 부채'가 쌓인 것이었다. 최소한으로 채워야 할 운동량이 있는데 그걸 하지 못하고, 이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운동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 나이가 들면 대사량이 점점 떨어지고 근육을 만들기가 힘들다는데,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해야 하는 거구나.  


호치민에 온 다음부터 일상생활 속 활동량이 급격하게 줄어들다 보니 (도어 투 도어 택시/그랩으로만 움직임) 평소 먹는 만큼 먹어도 우리 부부는 점진적으로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살이 문제가 아니라 건강검진 결과지가 두려워지는 상황이 돼서 자연스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다지는 아쉬탕가 요가
풍경이 아름다운 호치민 타오디엔의 요가원 (Yogapod) _아름다운만큼 모기도 많음...

작년 초쯤 다니던 회사 건물에 요가원이 하나 생겼는데, 나는 평범한 요가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간 해 왔던 요가와는 다르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나고 온몸은 부들부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공인된 아쉬탕가 요가 선생님이 가르치는 요가원이었다. (당시 요가원 다닐 때 글은 여기) 1년 정도 다니면서 아쉬탕가 요가에 재미를 느꼈고 꽤 열심히 다녔는데 호치민에 오느라 그만둔 게 좀 아쉬울 정도였다. 


요가하다가 만난 무지개

호치민에서도 여기저기 요가원을 찾아다녔지만 영어로 강의를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했던 요가와도 좀 달랐고, 잘 따라가지 못하니 버벅버벅. 그러다가 2달 전쯤 한국인 아쉬탕가 요가 선생님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수업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등록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요가를 하고 있다. (주 2회는 소그룹 강습, 주 1회는 요가원) 역시 모국어로 수업을 들으니 버퍼링도 좀 줄어들고 오롯이 요가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여기가 더운 곳이라 그런지 조금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에어컨 없는 경우도 있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서 그런지 확실히 예전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요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운독 자세는 몸이 좀 풀려야 제대로 된다는... 나의 햄스트링은 언제쯤 늘어날 것인가. 20대 때 운동 안 한 벌을 이렇게 받고 있나이다. 


요가하기 전 나의 상태

요가를 하다 보니 잡념, 특히 걱정이 많이 줄었다. 일단 아쉬탕가 요가를 하면 힘들어서 (....) 다른 생각이 안 들고 내 몸뚱이를 지지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걱정은 걱정이 아닌 것이 되어 씻겨나가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다. 또 예전보다 말린 어깨가 좀 펴진 느낌이고 자세도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체중은 줄지 않았습니다. (...!!) 


여름 나라 사는 우리를 위한 즐거운 운동, 수영


수영장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여름 나라에 살면서 좋은 건 일 년 내내 언제든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 아파트 1층에는 멋진 수영장이 있고 우리가 내는 비싼 렌트비에 이 수영장 이용비도 포함돼 있다. 사실 나는 운알못답게 호치민 오기 전까지는 수영을 아예 할 줄 몰랐다. 물에 머리를 담그는 것도 싫어할 정도였다. (제주도 출신이 모두 수영을 잘할 거라는 건 편견입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다음 우리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뭐 없을까 하다가 찾은 게 수영이다. 나는 수영을 전혀 못하고, 남편은 영법을 제대로 익히고 싶어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꾸준히 수영을 한 결과, 놀랍게도 나는 이제 자유형과 평영을 할 줄 안다. 배영까지는 아니지만 수영장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수 있고 물속에 있는 게 재밌어졌다. 게다가 수영장 끝에서 끝까지 쉬지 않고 '수영'으로 갈 수 있다는 것 또한 놀라운 발전이다. (속도는 말잇못... 아주 천천히 움직입니다) 


수영을 배우고 나니 날 좀 더우면 우리는 같이 수영장에 들어가서 빈둥빈둥거린다. 우리 부부 모두 부담 없이, 언제든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긴 것이다. 또 휴양지 리조트를 고를 때 그간 우선순위에 오르지 않았던 '멋진 수영장'이 선택지에 있으며, 나는 이제 어디를 가든 평화롭게 수영을 하고 (단, 내 키보다 깊으면 안 됨) 신나게 논다. 


대회 나갈 것 아니니 편하게 하세요

우리 수영 선생님이 늘 하는 말이다. 빨리 수영하라고 독촉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기록을 깨야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수영장에서 한가로이 지낼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 


운동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 PT

수영에 익숙해질 때쯤, 우리 부부 모두 근육을 좀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남편 매니저님이 퍼스널 트레이닝 (PT)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트레이너를 소개받아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 PT를 받고 있다. (수영장처럼 헬스장이 아파트 내에 있어서 편히 갈 수 있다는 게 장점!)


평소에 잘 못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주로 하는데 내가 얼마나 근육이 모자란 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처음에는 부끄럽게도 바벨 없이 봉만 드는 것도 힘들어서 부들부들. 보다 못한 트레이너가 나는 가벼운 덤벨로 대체해서 운동하라고 했었다. (....) 


다행히 요즘은 웬만한 건 트레이너가 하라는 대로 쫓아가고 있다. 옆에서 하나 더! 외쳐주는 사람이 있으니 포기하지 않게 되고 또 남편과 같이 하는 운동도 있어서 나름 재미도 있고. 쓰고 보니 세 가지 운동 중에 PT를 가장 대충 하는 것 같아서 뜨끔. 앞으로 열심히 해야지... 


PT 하면서 내 몸 어디에 근육이 모자란 지 알게 되고,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도 정확하게 익힐 수 있어서 좋았다. 또 트레이너가 중국/베트남계 미국인이라(!)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늘었습니다. (.... 힘들고 아픈 건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니까요) 



운동하면서 가장 힘든 게 '운동하러 가는 일'이라고 한다. 핑계는 많고 본인에게 관대 해지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지. 하지만 운동하는 게 어느 정도 루틴이 되고 보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게 된다.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그냥 밥 먹고 차 마시고 하는 것처럼 일상이 됐다. 물론 나도 어떤 순간에는 진짜 가기 싫을 때도 있지만 가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운동량은 채우기 때문에 그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성취감을 느끼는 것 또한 인생의 또 다른 재미! 


또 힘들게 운동을 하고나면 먹는 것도 좀 신경쓰게 된다.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이왕 운동하는 거 몸매도 같이 좋아지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예전보다 탄수화물을 좀 줄이고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려고 한다. 또 평소에 당류를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탄산음료, 과자, 간식 등을 안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

여튼 내일도 그냥 요가하고 수영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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