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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mit Aug 23. 2019

#11 독일 회사에서 하는 회식

여름에 하는 회식, Sommerfest

팀워크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한 달에 한두 번 있던 한국에서의 직장 회식은 정말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였다. 원래 체질 상 술을 잘 안 받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일하면 그런 종류의 회식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독일 회사에서는 대부분 크게 일 년에 두 번 직장 동료들끼리 모여서 하는 회식이 있다. 여름에 한 번(Sommerfest), 겨울에 한 번(Weihnachtsfest). 참석 여부는 자율적이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참석 안 하는 사람들에 대해 뒷말을 좀 하는 걸 보니 되도록이면 참석하는 게 좋은 거 같기는 하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왔다. 




이번에는 여름 회식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볼까 한다. 일정은 대략 이렇다. 대략 회식이 있기 한 달 전부터 공지가 전체 메일을 통해 전해진다. 이때 참석여부를 알려줘야 한다. 참석여부가 결정된다면 회식 장소와 시간이 적힌 초대장이 교부된다. 우리 회사는 거의 목요일 퇴근 후 시간에 일정을 잡는 듯하다. 금요일은 장소 빌리는 비용이 비싸다나 뭐라나. 우리네 회식처럼 저 세상 끝까지 가는 일이 거의  없기에 이 일정이 가능하지 않나라고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일정은 아니다. 어쨌든 담날에 출근해야 하지 않나. 작년에는 와인 시음투어를 했었는데 올 해는 여름 회식으로 축구 골프를 한다고 했다.


발로 공을 차서 홀에 넣는 말 그대로 골프룰을 따르는 축구다.


회식 장소를 정하는 기준은 민주적이지 못하 사장님 취향 위주인 모양이다. 어느 회사는 레이저총을 쏘거나 방탈출 게임을 같이 했다는 둥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일정으로 진행했다던데 (둘 다 엄청 내 취향♡) 축구도 싫어하고 골프도 싫어하고 땡볕도 엄청 싫어하는 나는 어쩌나. 게다가 회식하는 날은 낮에 40도 가까이 될 거라고 일기예보에서 주의를 줬다. 이런 날씨가 될 줄 미리 알았으면 안 간다고 하는 거였는데 이미 늦었다. 호구지책으로 양산을 챙기고 얇은 긴 팔 옷과 선크림을 챙겼다. 도움이 되어야 할터인데.


여느 하루와 같이 일과를 마무리한 후 동료의 자동차를 얻어 타고 외각에 위치한 모임 장소에 모여 누가 왔나 확인하는데 회사에서 입지 않는 옷들로 바꿔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하와이완 티셔츠나 밀짚모자, 운동복 등으로 말이다. 다들 손에 형형 색깔의 칵테일 잔을 들고 회사 안에서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흥미로웠다. 너무 덥지 않냐는 둥의 의례적인 인사들을 나누고 다들 둘러앉아 가볍게 음료수나 샴페인을 마시며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온통 너무 덥다는 생각뿐. 냉장고에서 꺼낸 물이 20분 내로 뜨뜻미지근해지는 경험을 연달아한 이후 벌써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한 30분을 기다렸을까 사장님께서 인사말을 하시고 중국의 협력회사에서 온 초대 손님들을 소개하셨다. 다음에 축구 골프에 대한 룰을 독일어와 영어로 번갈아 듣고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았다. 나는 8번 팀으로 프랑스 동료 카린, 독일 동료 니코와 안드레아스와 같은 팀이 되었다. 가벼운 축구공을 배급받고 서로 뒤엉키지 않게 팀마다 다른 출발선에 섰다.12번 코스까지 있었지만 그렇게 진행하면 인명 피해가 있을 것 같은 날씨였기에 8번 코스까지로 줄여서 진행하기로 했다. 공은 역시나 내 맘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줬지만 사실 게임 자체는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생각 외로 어려운 코스에 다른 팀의 일정 천천히 진행되어서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했고 은근히 동료들과 함께 나이스 샷을 외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나 공이랑 함께 하는 모든 종류의 스포츠에 약한 나는 예상대로 우리 팀의 꼴찌를 차지했고 결국 게임이 끝날쯤에는 햇빛으로 인한 두통까지 생겼다. 뭐를 좀 먹으면 두통이 가실까 싶어서 식욕이 별로 없는데도 저녁을 먹었다. 그러나 내가 앉은 자리에 파라솔이 없었던 관계로 식사를 마친 후에도 두통이 가시지 않아서 결국 일찍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음식이 엄청 고급이었는데 디저트를 못 먹고 온 게 좀 슬프달까.

나중에 그 날 찍은 사진들을 나중에 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11시 가까이 그곳에 머물렀던 거 같다.




결론적으로 느낀 건 내가 정말 다른 문화권에서 일하고 있구나라는 점. 작년엔 회식 날 갑자기 아파서 올해 처음으로 여름 회식을 경험해봤다. 신선하긴 하다. 한국 회식이랑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은 강요의 느낌이 강하지만 회식이 끝나고 나면 끈끈해지는 동료애를 경험할 수 있는 반면 독일은 술을 마시는 것도 본인이 알아서 컨트롤할 일이지 우리처럼 다 같이 마셔야 한다는 개념이 약하고 그래서인지 회식을 하기 전이나 한 후나 기본적인 느낌의 변화는 없는 거 같다. 애초에 회사 내 인간관계에서 끈끈함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해야 하나? 좀 친해졌다 싶으면 다시 서먹해지는 도돌이표를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요새는 나도 어느 정도 선을 긋고 대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 그렇게 하고 있다.




사실 회사 안에서의 나는 좀 외롭다, 맘에 안드는 것에 대해 신나게 뒷담화도 하고 요새 관심가는 테마로 얘기도 하고 싶은데 그런 거에 공감해 줄 마음이 통하는 사람도 없고 나이대도 안맞아서 관심사도 너무 다르고 여튼 나는 회사 안에 작은 섬 같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부분이니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일 하고 있다.


과연 이 회사 안에서 진짜 친구를 발견할 기회가 생기려나?

그런 일이 생기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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