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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고 있을 때

「희극의 파편」41. 안톤 체홉 - 주머니 속 송곳 中

by 재준

포수딘


(목도리를 매만지면서 좌우를 살피며) 이걸 뒤집어쓰고... 내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마치 눈이 머리에 쌓인 것처럼... 그놈들, 방탕한 일과 빈축 살 일을 그렇게 많이 저지른 거도 모자라 이제는 잔치까지 벌인다는군. 아마도 그놈들, 모든 단서를 남김없이 없앴다고 자신하겠지... (서류 가방을 두드린다.) 그러나 여기 익명의 편지가 있단 말씀이지! 하하... 한껏 흥이 올랐을 때 '포수딘이 감찰을 나왔어요!" 라는 소리에 다들 공포에 떨며 놀라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큰 소동이 될 거야! 하하. (미소 지으며 마부의 소매를 당긴다.) 자네는 포수딘을 아는가?



마부


(돌아보며, 가볍게 웃음 지으며) 어떻게 그를 모를 수 있겠습니까요? 우리 모두 다 안다굽쇼!



포수딘


(놀라워하며) 자네는 왜 나를 비웃나?



마부


신기한 일이니깐 그렇죠! 나리께서 포수딘을 모른다니 말이죠! 그가 만약 이곳에 나타난다면 모두가 단숨에 그를 알아볼 겁니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다시 사유해보는 비평적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마흔한 번째 작품은 안톤 체홉의 '주머니 속 송곳'입니다.

<수요일에는 체홉 작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체홉작품 모음 1 , 2 , 3 , 4 , 5 , 6 , 7 , 8 >


내용은 정말 간단합니다.


감찰관 포수딘이 불시점검을 하고자 어느 마을에 떴습니다. 그리고 어느 마부에게 포수딘이란 사람을 아느냐고 물어봅니다. 그가 포수딘인지 모르는 마부는 면전에서 그의 뒷담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했으니 앞담화네요ㅎㅎ)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마부


(하품을 하며) 아무렴요. 자신의 일을 잘 아는 훌륭한 양반입죠... 그가 이곳으로 온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아, 벌써 많은 일들을 해치웠습죠.



포수딘


아, 그래? 그가 무슨 특별한 일을 하기라도 했는가?



마부


많은 선행을 했죠. 신이 그에게 복을 내리시길. 철도를 깔았고요. 그리고 우리 영지에서 호흐류코프를 퇴출시켰죠. 그는 사기꾼이었는데 예전에는 모든 것들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답니다. 포수딘이 온 이후 호흐류코프는 악마에게 내던져졌죠. 그래서 이제 그는 없는 사람이나 다음없습니다요... 보세요, 나리! 포수딘을 매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꿈도 꾸지 못할 일입죠! 나리가 백을 주든 천을 주든 그는 나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겁니다... 안 되죠! (말을 향해 다시 몸을 돌리고 채찍질을 한다.)



포수딘


(고개를 돌려) 오, 신이여! 이런 곳에서도 나를 잘 알고 있다니! 좋은 일이야.



마부


(생략) 물론, 예전이 좋았습죠. 그런데... 그런데 내,외적인 업무 분야에서 요즈음 그 사람은 정말 교묘해졌습니다요. 워워! (말을 세운 후 마부석에서 내려 뒤쪽 마을 살핀다.) 요즘 그 사람은 뇌가 백 배나 더 커졌을 겁니다. 딱 하나 흠이 있다면... 정말 좋은 사람인데, 한 가지 문제라면... 바로 술꾼이라는 것입죠! (말에게 몸을 기울인다.)



포수딘


(옆으로 고개를 돌려) 이런, 큰일났군! (마부에게) 자네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는가? 내가, 아니 그 사람이 술꾼이라는 사실을?



마부


(담배를 말며) 나리,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만 사람들이 전부 그렇게 말합니다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초대받아 간 자리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죠. 다만 집에서 홀짝대며 마십죠. 아침에 일어나면 눈 비비자마자 가장 먼저 보드카를 찾는다고 합지요.


포수딘


(가슴팍으로 가방을 꼭 껴안자 병이 부딪혀 쨍그랑거린다. 승객석에서 내려와 흥분한 걸음걸이로 서성인다.) 그들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맙소사! 더욱이 잘 알려진 사실이라지 않는가! 이런 불쾌한 일이 다 있나.



마부


(포수딘이 흥분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비웃으며 머리를 흔든다.) 여인네들에 관해서라면 그렇습죠. 협잡꾼 같은 놈이 있는뎁쇼! 그에게는 아름다운 마누라가 열 명이나 있는데, 두 명은 그와 함께 살죠. (생략) 다른 여자는 이름이 뭐더라... 아, 류드밀라 세묘노브나. 그녀는 서기 같은 일을 하죠. 그래도 가장 중요한 인물은 나스타샤입죠. 그녀가 원하는 거라면 그는 뭐든 다 들어주죠. 그를 살살 꾀는 게 마치 여우 같다니까요. 대단한 권력을 가진 여자죠. 세 번째는 카탈나야 거리에 사는... 아, 사르모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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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포수딘을 향해 몸을 돌리며) 포수딘이 어떻게 숨어다니는지 방법도 벌써 알아차렸습죠. 들은 대로 말씀드리자면, 그는 아무도 못 보고 아무도 모르게 도착하려고 조용하지만 재빠르게 출발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합니다. 하하하! 관리들이 알아차라지 못하게 집에서 살짝 나온 후, 가장 가까운 역까지 차를 타고 가서 우체부나 관리를 부르는 게 아니라 일꾼들을 고용하여 일을 처리합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노인네처럼 몸을 감싸고는 늙은 개처럼 온 거리를 쌕쌕거리며 다닙죠.

(포수딘은 열이 나는 듯 목도리를 풀어던진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으면 정말 배꼽 잡고 넘어갈 정도로 웃긴답니다. 그는 바보같이 사람들이 자기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지나갑죠. 그러나 이런 점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기란 정말 식은 죽 먹기입죠. 누구라도 포수딘을 바로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보통 승객은 자신의 목적지를 말하죠. 그러나 포수딘은 그러지 않습죠. 그가 우편 역으로 간다고 칩시다요. 냄새가 난다, 덥다, 춥다, 영계를 가져와라, 오만가지 잼을 가져와라 이렇게 시작을 해대죠. 그러니 역에서 그를 알아볼 수밖에요. 한겨울에 잼이나 과일을 찾아댈 사람이 포수딘밖에 더 있겠습니까요... (생략)


포수딘이 오면 그들을 제자리에서 치워버리기 위해 재판에 회부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바꿔치기 해버립죠. 좀 더 말씀드리자면, 나리, 그가 조용히 와서 보고 있을 때는 이미 우리 마을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말씀입죠. 그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다, 왔던 것처럼 똑같이 조용히 돌아가죠.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하죠. 나리, 생각이나 해보셨습니까? 이렇게 간계한 인간들이 있다는 걸? 악마나 다름없죠! 오늘만 하더라도... 오늘 아침에 약속이 있어 빈 차로 가고 있었는데 역에서 우체부가 바삐 지나가지 않겠습니까? 자네 어디 가는 길인가? 이렇게 물어봤더니 글쎄 아,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죠. '도시로 포도주와 안주를 나르고 있다네. 거기서는 지금쯤 포수딘을 기다리고 있을 걸세.' 포수딘은 아마도 막 출발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면 자신을 못 알아보게 얼굴을 가리고 있든가요. 포수딘은 아마도 벌써 이곳으로 오고 있으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죠. 누구도 자신이 온다는 사실을 모를 거라고 말입죠. 그러나 그를 보면 전해줍쇼. 벌써 그를 위해 포도주와 연어와 치즈, 그리고 다양한 안주가 준비되어 있다고......네? 그는 도착해서 생각하겠지요. 당신들에게 지붕이 되겠소! 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불시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고통받을 일은 거의 없습지요. 오게 내버려두라죠! 그들은 벌써 예전에 모든 걸 숨겨둔걸요!



포수딘


(쉰 목소리로) 돌아가! 다시 돌아가자고, 빌어먹을 놈!



마부는 놀란 얼굴로 포수딘을 바라본다.


막.



어떤가요? 대중들은 참 똑똑합니다.ㅎㅎ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타인에게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나의 컴플렉스는 뭔가요?


2. 그것은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인가요? 만약 숨길 수 없다면 어떡하나요?


3.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오만하게 살고 있을까요?


4. 해결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5. 해결이 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가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 거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나을 병인가? 안 나을 병인가?

나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안 나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죽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거 같은가? 지옥에 갈 거 같은가?

천국에 갈 거 같으면 걱정하지 말고, 지옥에 갈 거 같으면

지옥에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퇴옹 성철


오늘의 음악입니다.



Just a Chill Guy - 피아노 버전

(출처 : The Magical Piano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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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홀짝대며 마시는 감찰관, 응시하는 열 명의 아내, 문득 마부의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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