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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Sep 03. 2022

불편한 놈이 내 안에 있다

불편한 놈아 꺼져줄래?



나를 붙잡는 놈이 있다. 



앞으로 나아갈 때, 변화를 시도할 때 꼭 등장하는 놈이다. 

그놈이 나를 흔들어댄다. 그놈이랑 내가 통속극을 벌인다. 

그러다가 얽히섥히 내가 그놈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숫자놀음으로 빌어먹는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숫자의 열병을 앓는다. 154 콤마 689 콤마 000 숫자들은 나팔 불며 내 머리를 파고든다. 시간당 만몇천원의 초과근무수당에 영혼을 팔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몇 달 후 벚꽃이 머리 위로 흩어지면 숫자들은 더 이상 내 머리를 쪼아대지 않는다. 그래, 그때쯤이었다. 그놈이 나타났다. 


이제 사람들의 눈과 코가 보이기 시작한 나는 사람 구실 좀 해보려 한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선생님에게 제법 인사다운 인사를 해본다.   때마침 사회 선생님에게 가벼운 목례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사회 선생님도 나도 이제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한다. 커피를 권하는 선생님을 따라 도서관으로 갔다. 


여학생들의 손때와 영혼이 아로새겨진 책들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는 근로기준법의 휴게시간이 아닌 진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벚꽃의 엔트로피가 사회 선생님의 글을 보여주었다. 나는 자연스러움을 애써 부정하며, 부자연스럽게 4월의 잔인함에 대한 글을 읽었다. 



불편한 놈이 설렁을 울린다



그때 불편한 놈이 설렁을 울리는 거다. 그 소리가 계속 나를 불편하게 한다. 나는 설렁소리가 불편한 라스콜리니코프가 되었다.


 TS.  앨리엇이 뉘신지 모르는 나는 무식함이 탄로 나서 불편하다.

역사의식은 커녕 역사를 알지도 못하니 불편하다. 

알지 못하면 소망하면 될 것을… 그조차도 싫으니 불편하다.

죄책감을 느껴야 할 마당에 오히려 수치심이 일어나니 불편하다.


전쟁 같은 내 삶에 이따위 것들을 생각하기 싫다. 감각만으로 숨 쉬고 밥 먹고 자기만 해도 피곤한 나의 일상을 저주한다.


소망하기도 귀찮은 역사의식은 내 근처에 올 생각이 없다. 의식은 사회 선생님을 택하여 세례를 베풀었다. 선생님에겐 축복을 나에겐 벌을 내린다. 나는 벌을 받아 이리 불편한 것인가.


나를 이렇게 흔들어 놓은 불편한 놈이 잠쉬 쉰다. 진짜 내가 등장해 말한다. 


"솔직히 부럽다. 멋지다.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 어쩜 불편한 놈을 몰아내고 시간의 세례를 받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어엿한 주체이기에, 시간에게 순종하면 시간은 신의 대리자로서 나를 선택하고 나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의식을 담아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불편한 놈과 나는 엎치락뒤치락거린다. 사회 선생님을 시기하고 포기하게 만들었다가 부러움에 절어 도전하게 된다.  불편한 놈을 인정하고 그놈을 밟고 일어나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멋진 글로 나를 변화시켜주신데 대한 감사의 메시지를…


이제 연극이 끝났으니 불편한 놈아~꺼져줄래?




글을 읽기 힘든 분을 위한 오디오파일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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