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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Sep 17. 2022

알랭바디우 처럼 사랑하자

하나가 아닌 둘이 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인가? 술이든, 커피든 상관없다. 예술이든, 거지 같은 일상이든 상관없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 사랑. 그런 건 없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냥 어떻게 살다 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냈다. 자녀가 성인이 된 이 마당에 여태 같이 산다는 것만으로도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속내는 나도 모르겠다. 같이 사는 것이 경제적이라 사는 건지, 뭔지… 이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철학자는 어떤 의미에서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 


기억 속 저편, 어딘가로 사라진 우리 부부의 첫 만남은 강렬했으리라. 조작된 기억의 파편을 구질구질하게 맞추고 있는 걸 보니,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지 못한 것 같다.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데요~’가 아닌 건 확실하다. 각자의 일상으로 바쁘게 살면서, 첫 만남의 추억도 모두 잊은 우리 부부는 과연 아직도 사랑하는 것일까. 알랭 바디우를 만나고 사랑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을 얻었다. 



여기 두 커플이 있다. 한 커플은 막돼먹은 말괄량이 스타일의 여자와 시골에서 갓 상경한 불도저 같은 남자이다.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고 안전해 보이지 않는 이 둘은 위험을 감수하고 사랑하게 된다. 다른 한 커플은 조용하고 상냥한 스타일의 여자와 성실하고 가정적인 남자이다. 잘 어울릴 거 같고 안전해 보이는 이 둘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위험이 없는 상태로 사랑하게 된다.


두 커플이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안전한 사랑을 한 커플은 자신들이 사랑에 바쳐야 할 열정을 쾌락으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 끝없는 욕망은 그 갈증을 참지 못해 더 큰 쾌락 앞에 무릎을 꿇는다. 더불어 온실 안에서 성실하게 준비한 그들은, 서로에게 맞지 않는 타인을 더 이상 사랑의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사랑의 대상 자격을 상실한 누군가가 고통을 겪는다 한들, 그것은 자신과 무슨 상관이 되겠는가. 그저 칠칠치 못하게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아마추어가 된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간 커플은 새로운 삶을 알게 된다. 자신들의 사랑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절벽을 뛰어내리고 굴러먹으며 삶을 계속 재발명할 것이다. 때론 그것을 즐기기도 한다. 이 둘은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맞지 않는 차이를 그대로 안고 분리된 상태로 있게 된다. 그 차이를 유지한 채, 둘로 존재하며, 하나의 무대를 연출하게 된다.  


바디우는 하나가 아닌 둘이 존재하는 사랑을 말한다.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성관계 조차도 타인을 도구로 전략시키는 자위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성격차이로 탈바꿈한 성적 차이를 이별의 사유라고 말한다면 사랑의 대상을 기능 상실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그냥 그 자체로 빛나게 된다. 그 빛나는 곳이 둘의 무대이다.


그럼, 우리 부부는 사랑하고 있다는 말인가? 판타지와 낭만의 입장이 아닌 둘이 존재하는 실존적 의미에서, 특히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예찬을 듣고 있자니,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다.(확언하지는 못한다.)


 유치원 학생들의 자기 말 대잔치를 방불케 하는 우리의 대화는 각자의 표정으로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자의 방에서 뭐 그리 바쁘다고,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경쾌한 소리에 발맞추지 않는다. 그저  ‘어 왔어~’라는 간단한 말짓의 알은 채뿐이다. 일 년에 단 하루뿐인 기념일이 있다. 결혼기념일, 각자의 생일을 스케줄에 맞춰 정한 어느 날이다. 그 외에도 우리 부부의 격한 실존적인 가정 세계의 생활상은 많이 있다. 


우리의 실존은 프리즘을 통해 분산된 빛처럼 여러 가지 색을 거쳐 새롭게 나타난다.  존재할 것 같지 않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노년을 상상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따로, 또 같이 노년의 상상계를 만들어가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다. 이렇게 사이좋게 가 아닌, 이렇게 따로국밥으로 영원을 향해서 조금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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