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환상 문학 8]다자이 오사무 원작 待つ
기다림 (待つ)
원작: 다자이 오사무 | 번역: 유은경
국철이 다니는 그 작은 역으로, 나는 매일 누군가를 마중하러 갑니다.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을 마중하러.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역에 들러, 역의 차가운 벤치에 앉아 장바구니를 무릎 위에 올린 채 멍하니 개찰구를 바라봅니다. 상행선, 하행선 전철이 승강장에 도착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전철 문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우르르 개찰구로 몰려와서는 한결같이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정기권을 내밀거나 승차권을 건넵니다. 그러고는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빠르게 걸어서 내가 앉아 있는 벤치 앞을 지나 역 앞 광장으로 나가서는 저마다가 갈 곳으로 흩어져 갑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오, 무서워라. 아아, 난감해. 가슴이 두근거린다. 생각만 해도 등에 찬물을 끼얹은 듯 소름이 돋고 숨이 막힌다. 그렇지만 나는 역시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도대체 나는 매일 여기에 앉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어떤 사람을? 아니요, 내가 기다리는 것은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나는 인간이 싫습니다. 아니요, 무섭습니다.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별일 없으시죠", "날씨가 추워졌네요" 따위, 하고 싶지도 않은 인사를 적당히 건네다 보면, 왠지 나 같은 거짓말쟁이가 세상에 또 없을 것 같아, 괴로운 마음이 들어 죽고 싶어집니다. 그러면 상대방 역시 나를 몹시 경계하며, 적당히 거리 두는 아첨이나 거들먹거리는 거짓 감상 따위를 늘어놓습니다. 나는 그것을 들으며 상대방의 그 치졸한 신중함이 슬퍼서, 점점 더 세상이 싫어져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란 서로 뻣뻣한 인사를 나누고, 경계하다가, 그렇게 서로 지쳐가며 일생을 보내는 것일까요?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싫습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 놀자고 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말없이 바느질하고 있자면 그때가 가장 마음 편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큰 전쟁이 시작되어 주위 모든 것이 지독하게 긴장하면서부터는, 나만이 집에서 매일 멍하니 있는 것이 무척이나 잘못된 일처럼 느껴져, 왠지 불안해서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해서 직접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 생활에 자신감을 잃고 만 겁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되지 싶은 마음에 밖에 나가 보지만, 막상 나가 본들 내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역에 들러 멍하니 역의 차가운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누군가 불쑥하고 나타난다면!' 하는 기대와, '아아, 나타나면 곤란해, 어쩌지' 하는 공포와, '그래도 나타났을 때는 어쩔 수 없어, 그 사람에게 내 목숨을 바치자, 내 운명이 그때 정해지는 거야'하는 체념 섞인 각오, 그 밖에 갖가지 불온한 공상 등이 기묘하게 얽히고설켜 가슴을 죄어와 질식할 것처럼 괴로워집니다.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알 수 없는 듯한, 대낮인데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어딘지 미덥지 못한 기분이 됩니다. 역 앞에서 사람들 오가는 모습도, 망원경을 거꾸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작고 멀게 느껴져 세계가 적막해집니다. 아아,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나는 매우 음란한 여자인지도 모릅니다. 큰 전쟁이 시작되어 왠지 불안해서,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해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고, 사실은 그런 그럴싸한 구실을 만들어 자신의 경박한 공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좋은 기회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 이렇게 앉아, 멍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슴 속에서는 불온한 계획이 가느다랗게 타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뚜렷한 형태를 갖춘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저 몽글몽글 흐릿할 뿐이야.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큰 전쟁이 시작된 뒤로는 매일매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역에 들러, 이 차가운 벤치에 앉아 기다린다. 누군가 한 사람, 웃으며 내게 말을 건다. 오, 무서워라. 아아, 난감해. 내가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 아니야.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남편. 아니야. 연인. 아닙니다. 친구. 싫어. 돈. 설마. 망령. 오, 싫어.
더 온화하고 확 밝아지는, 멋진 것. 그게 뭔지 몰라. 이를테면 봄 같은 것. 아니, 틀려. 푸른 잎. 오월. 보리밭을 흐르는 맑은 물. 역시 틀려. 아아, 그래도 나는 기다립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눈앞을 수많은 사람이 지나간다. 저 사람도 아니야, 이 사람도 아니야. 나는 장바구니를 품에 안고 가늘게 떨면서 온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나를 잊지 말아요. 매일매일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가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스무 살 처녀를 비웃지 말고 부디 기억해 주세요. 그 작은 역의 이름은 일부러 가르쳐 드리지 않겠습니다. 가르쳐 드리지 않아도 당신은 언젠가 나를 보게 될 테니까.
(1942년 6월)
*AI로 이미지 생성했습니다.
"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구원입니까?"
실존적 공포와 갈망의 변주곡: 이 소설은 1942년 태평양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국 앞에서 쓰였습니다. 스무 살 여성이 매일 기차역 벤치에 앉아 '누구인지도 모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는, 전쟁이라는 불안한 일상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파멸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복합적인 심리를 대변합니다.
역설의 공간, 기차역: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지만 정작 누구와도 닿지 못하는 기차역은, 타인과의 관계에 서툰 소녀에게 가장 '고독하면서도 안전한' 장소입니다. 그녀가 느끼는 인간 공포증은 가식적인 인사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합니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소녀가 기다리는 대상은 남편도, 연인도, 돈도 아닙니다. "봄 같은 것, 맑은 물 같은 것"으로 묘사되는 그 막연한 대상은 독자 저마다의 '기다림'으로 치환됩니다. 마지막에 독자를 향해 던지는 "당신은 언젠가 나를 보게 될 테니까"라는 말은, 이 기다림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임을 선포하는 전율 돋는 반전입니다.
"파멸의 미학 속에서 인간의 진실을 길어 올린 무뢰파의 거장"
약자의 문학: 다자이는 스스로를 '부적격자'라 부르며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가식 없는 진실을 파헤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청춘의 영혼을 위로하는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고백의 달인: 그는 마치 일기를 엿보는 듯한 내밀한 고백체(구어체)의 달인입니다. 특히 여성을 화자로 내세운 '여성 독백체' 작품들은 섬세한 심리 묘사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시대의 불안을 읽다: 전후 허무주의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의 문장 속에는 역설적으로 '누구보다 절실하게 살고 싶어 했던' 한 인간의 뜨거운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독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자이 오사무, 작가 본인과 가장 닮은 부분은 자살 지향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하지만, 그렇게 밝은 성격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유튜브에서 일본어 원작을 자막, 한국어 낭독으로 들어 보세요~! <여기를 클릭, 0210, 10시에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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