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환상 문학 9]에도가와 란포 指
환자는 수술 마취에서 깨어나 내 얼굴을 보았다.
오른손에 두툼하게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손목이 절단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그에게 오른쪽 손목을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었다. 범인은 그의 명성을 시기한 같은 직종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두운 밤길을 걷다가 우연히 스쳐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흉기로 오른쪽 손목 관절 윗부분이 베인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사건이 우리 병원 근처에서 일어나서 그는 실신한 채로 이 병원으로 실려 왔고, 나는 가능한 모든 처치를 했다.
“아, 자네가 돌봐준 건가. 고맙네… 술에 취해서 말이야, 길이 어두워서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당했어… 오른손이로군. 손가락은 괜찮겠지?”
“괜찮네. 팔을 조금 다치긴 했지만, 뭐, 곧 나을 거야.”
나는 차마 친한 친구를 낙담시킬 수 없어 조금 더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그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손가락도 말인가? 손가락도 예전처럼 움직일 수 있겠지?”
“괜찮다니까.”
나는 도망치듯 침대에서 물러서 병실을 나왔다.
곁을 지키고 있던 간호사에게도 당분간은 손목이 절단되어 없다는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쯤 지나 나는 다시 그의 병실을 찾았다.
환자는 다소 기운을 되찾은 듯했다. 하지만 아직 자기 오른손을 살펴볼 힘은 없는 듯했다. 손목이 절단됐다는 사실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통증은 좀 어때?”
나는 그의 얼굴 가까이로 몸을 숙여 물었다.
“응, 훨씬 좋아졌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불 위로 내놓은 왼손 손가락을 피아노 치는 모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찮을까? 오른손 손가락을 조금 움직여 봐도… 새로운 곡을 썼는데, 그걸 하루에 한 번이라도 쳐 보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를 않거든.”
나는 흠칫했으나 순간적으로 묘안이 떠올라, 환부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는 척하면서 그의 위팔 안쪽의 척골신경 부위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곳을 압박하면 비록 손가락이 없어도 마치 있는 듯한 감각을 뇌 중추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불 위로 드러난 왼손 손가락을 기분 좋은 듯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아아, 오른쪽 손가락도 괜찮군. 잘 움직여.”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가상의 곡을 연주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차마 더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간호사에게 환자의 오른팔 척골신경을 계속 누르고 있어 달라고 눈짓으로 지시하고는 발소리를 죽여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수술실 앞을 지나갈 때였다. 간호사 한 사람이 그 방 벽에 부착된 선반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비정상적으로 크게 뜬 채로 선반 위에 놓인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수술실로 들어가 그 선반을 보았다. 거기에는 커다란 유리병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친구의 손목이 알코올 액체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본 순간 온몸이 굳는 듯했다.
병 속의 알코올 안에서 그의 손목이, 아니, 그의 다섯 손가락이, 하얀 게 다리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박자에 맞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그러나 실제 움직임보다 훨씬 작게, 어린아이처럼 힘없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1960)
<번역가의 한마디>
대가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한편이다. 이 짧은 글 안에 추리소설적인 요소와 환상소설적인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의 손목이 잘린 사건을 파헤치는 소설인가 싶었는데, 결말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허를 찌른다. 추리소설가로 잘 알려진 에도가와 란포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소품이 아닐까 한다.
"일본 장르 문학의 아버지, 기괴와 환상의 미학을 완성하다"
일본 추리 소설의 시조: 필명 자체가 추리 소설의 거장 '에드거 앨런 포'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했을 만큼, 서구 장르 문학을 일본적 감성으로 치환해낸 선구자입니다.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 단순한 범죄 수사를 넘어 인간 내면의 뒤틀린 욕망, 기괴한 상상력, 신체의 변주 등을 다루며 '란포풍(乱歩風)'이라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심리적 공포의 대가: 초자연적인 현상보다는 인간의 병적인 심리나 착각, 혹은 감각의 왜곡을 통해 독자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감각과 보이는 실체 사이, 그 기묘한 틈새에 대하여"
신체 소외의 공포: 피아니스트에게 생명과도 같은 '손가락'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뇌는 여전히 그 존재를 느끼는 '환상통(Phantom limb)' 혹은 '환상 감각'을 소재로 한 수작입니다.
의학적 리얼리티와 환상의 결합: 의사인 주인공이 친구를 위해 '척골 신경'을 압박해 거짓 감각을 만들어내는 설정은 매우 과학적이고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이 이성적인 설정이 마지막 장면에서 유리병 속 손가락의 '초자연적인 움직임'과 충돌하며 폭발적인 공포를 선사합니다.
예술적 집념의 기괴함: 몸을 떠난 손가락이 여전히 피아노 건반의 박자를 타며 움직인다는 설정은, 예술가의 집념이 신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란포가 추구했던 기괴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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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근대환상문학]시리즈
01. 하라 다미키, 〈지붕 위에서〉 보러 가기
02. 니이미 난키치,〈빨간 양초〉 보러 가기
03. 오가와 미메이, 〈달밤과 안경〉 보러 가기
04. 하라 다미키, 〈휘파람새〉 보러 가기
05. 니이미 난키치, 〈사탕〉 보러 가기
06. 오가와 미메이, 〈까마귀와 허수아비〉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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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나쓰메 소세키, 〈열흘 밤의 꿈-첫날 밤〉 보러 가기
09.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묘한 이야기〉 보러 가기
10. 다자이 오사무, 〈기다림〉 보러 가기
[[동심과 성장] 시리즈
01. 유메노 규사쿠, 〈캐러멜과 눈깔사탕〉 보러 가기
02. 아리시마 다케오, 〈한 송이 포도〉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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