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나는 세상을 편견 없이 보고 있는가?
《유라시아 견문》
이병한 저 | 서해문집 | 2016년 9월 12일
중학교 시절 세계사를 처음 배웠다. 세계사라고 부르지만 실상 세계사가 아닌 유럽사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리스와 로마로 시작한 유럽의 문명사가 장황하게 펼쳐지지만,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고 하는 게 옳겠다. 우리는 세계사 시간 에게해와, 지중해를 배웠지만 베트남이 왜 베트남인지, 파키스탄이 인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운 비폭력 무저항(사실 ‘저항’이라고 해야 옳다.) 운동의 아이콘 간디의 독립운동은 어땠는지 등에 대해 상세히 배우지 못했다. 아마 당신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면 당신이 역사를 좋아해서 따로 공부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자동차를 타고 온 가족이 유라시아를 횡단해 유럽을 찍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1년에 걸쳐 화제가 된 가족이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동경해 “나도 한 번?”하며 비슷한 자동차 여행을 모방한 영상이 유튜브에 제법 많아지기도 했다. ‘유라시아 견문’의 작가 이병한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유라시아 여행을 한 것은 아니다. 책과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직접 두 눈과 귀로, 그리고 발로 재차 확인하고자 비행기로 차로 때로는 걸어서 이동했다.
이 책은 3년간 자신이 보고 들은 것(見聞)에 ‘깨달음’을 더해 완성됐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 일반적이지 않다. 특별하고 귀하다고 하는 게 좋겠다. 3권의 두꺼운 책은 모두 2000쪽에 달하는데 처음 그 두께에 압도되지만, 일단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지루할 틈 없이 빠져들게 된다.
대체로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우호적이나 중국에는 그렇진 않다. 범죄도시나 청년경찰 등 영화나 미디어만 봐도 확실히 그렇다. 나름의 이유도 있고 그 이유는 꽤나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판단한 결과를 분석해보건대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정보’들이 편중되진 않았는지 의심해볼 필요는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정답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데 이러한 시각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으면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의 정치 체제를 선택한 나라는 수준 미달이라는 등 합리적이지 못한 결론을 내리기 쉽다. 이러한 판단은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인들은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 불교, 이슬람교 중 유독 이슬람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러한 인식의 배경, 원인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으레 그렇다고, 그럴 것이라고 여겼던 우리의 ‘생각’이 사실 우리의 생각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의도된 결과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 ‘유라시아 견문’이다. 주체적인 ‘나’로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 주체적인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비틀어 보는 법을 배운다. 세상과 현상을.
작가는 의문이 생기면 질문을 던지고, 궁금하면 찾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행하라고 나에게 가르친다. 공부를 마치고 순탄하게 안착할 수 있는 꽃길을 마다하고, 3여 년에 걸쳐 새 길을 내기 위해 떠난 저자의 실행력, 용기를 통해 사그라든 불씨 아니 쪼그라든 꿈과 이상이 다시 피어오르는 경험을 맛보게 할 것이다. 나아가 역사에 대한 관심, 특히 주목받지 못한 역사와 존재 대한 관심과 그에 대한 공부를 통해 새롭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지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어떤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가?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저 | 시대의창 | 2018년 4월 27일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삼계탕을 점심으로 먹었다. 저녁에는 국가대표 축구를 응원하기 위해 치맥이 진리라며 배달 앱으로 주문을 한다. 한국인은 1년간 얼마나 많은 닭을 먹을까? 놀라지 마시라. 10억 마리에 육박하고, 1인당 약 20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많은 닭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길러지고 있을까? 닭갈비, 치킨, 삼계탕, 닭도리탕, 치킨 버거, 너겟으로 만나는 닭의 출처(?)에 관한 꺼림칙한 비밀이 한승태 작가의 실제 체험으로 완성된 ‘고기로 태어나서’에서 찾을 수 있다.
한승태 작가는 ‘노동’에 대해 책을 쓰는 작가이다. 적어도 내가 읽은 그의 책들은 그랬다. ‘노동’이 본래 험한 뜻을 지니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에서 ‘노동’은 험한 무언가를 내포하는 단어로 취급된다.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이 어쩌면 많은 이들의 노동과 희생 위에 이뤄진 것이 아닐까 끝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한승태 작가를 김민식 MBC PD가 평했는데 그 말에 박수치며 격하게 동의한다.
전작 ‘인간의 조건’에서 꽃게잡이 어선을 타고, 주유소 알바를 하고, 돼지 농장에 갔다가 자동차 부품공장에 일하러 다니더니, 돼지 농장에서 일한 것이 성이 차지 않았는지 ‘고기로 태어나서’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닭고기, 돼지고기, 개고기를 키우는 농장에서 일을 하며 축산 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공장식 축산이 사실 이런 것이라는 진실을 여러분도 알아야 해.”라고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굴러가는 우리의 삶이 사실은 아무 일 없지는 않다는 것, 우리가 그것에 대해 들여다볼 생각조차 못했거나, 들여다보면 괜히 후회만 할까봐 의도적으로 피했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현실을 잠깐이나마 마주하길 기대하는 심정이 있을 뿐이다.
나아가 우리가 의도적으로 외면한 ‘공장식 축산’의 진실 외에도 의도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험한 노동’에 대해 들여다볼 용기를 가질 것을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젊어서 놀았으나 나이 들어 고생한다는 삐뚤어진 말이나 내가 더 능력이 있으니 더 많은 돈과 혜택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능력 만능주의적 사고방식 대신 우리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점’들의 삶에 대해 알고, 생각하고 나아가 이러한 착취 구조가 발생하게 된 사회 시스템에 대해 반성적 시각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길 바라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통해 자본주의의 승리로 냉전 종식을 선언했지만, 현재 지구의 모습은 체제 전쟁에서 승리한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 우리가 기대한 그런 것인지 의심스럽다. 더 이상의 도전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종언’을 선언했지만 그것은 섣부른 행동이었다는 것만 확인되었다. 체제의 싸움에서는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은 지구촌의 다양한 사회·경제적·환경적 문제를 초래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강하게 의심받고 있다.
한승태 작가는 노동을 매개로 사회를 이야기하지만 독자들은 이를 통해 인류가 당면한 사회·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간다. 조효제 교수의 ‘탄소사회의 종말’,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고기로 태어나서’나 ‘인간의 조건’과 장르도 다르고 서술 방법도 다르지만 사실 같은 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러 책들, 김찬호 교수의 ‘모멸감’이나 김태호 작가의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등이 떠오르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작가가 실제 축산 농가에서 일한 경험을 서술한 것에 불과하지만 거기에서 효율성 중심의 경제 체제에 기인한 노동, 환경, 사회 문제를 복합적으로 발견한다.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 정상이기에 한 번에 읽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책이다. 글 어디에도 꾸며 쓴 곳이 없는데 화려한 수사로 단장을 한 그 어떤 글보다 수사적이고 자극적일 것이다.
최종 질문: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주목받지 못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남들이 걸어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장서서 그 길을 낼 때 수많은 비판과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비판과 비난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가시밭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는데, 자신이 옳다고 걸어가는 길에 대한 믿음, 확신이 바로 그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고 얌전히 살길 우리 부모님은 대부분 기대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코 새 길을 낼 수 없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외부의 시선과 같은 사회적 압력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것에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돼지 농장에 취업해 몇 달을 돼지 똥을 치울 자신도, 승진이나 연봉 인상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 유학을 갈 단호한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독서는, 나는 내지 못했던 그 용기와 도전을 행한 사람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비록 그들처럼 살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삶에서 작은 용기나마 끌어내는 자극을 주기도 한다. 무료한 일상에 변화를 더해주는 용기를 통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진다. 삶의 큰 균열을 내기도 하지만 미세한 균열, 비틀림을 통해 우리의 삶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에너지를 공급해주기도 하고.
저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르다. 재미, 정보 획득, 자격증 취득 등. 모두가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읽는 것도 아니다. 부모의 강요에 의해, 사회적 압력에 의해 억지로 독서를 하는 경우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떤 이유에서 책을 접하는 책을 가까이 하다보면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의 매력을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책과 함께 있는 시간 우리는 편안함, 놀라움,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마다 책을 통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다를지라도.
중학교 이후 입시와 졸업을 위해 책을 멀리하고 살았던 내가 다시 책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20대 후반이 들어서였다. 곡기를 끊듯 십여 년이 넘게 책을 멀리하던 내가 다시 책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책을 다시 만났고 무료했던 내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고, 책을 통해 내 자녀를 기르는 법을 배웠으며,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 결과 책을 통해 성장하는 나를 발견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미디어에서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다. 더 많은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어그로를 끌기 위해) 더 자극적으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 속도감 있는 영상이 오늘도 몰아친다. 거기에서 우리가 잠시 멈추고 생각할 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제공되는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기도 어렵고, 판별할 시간이 우리에게 넉넉히 주어진 것도 아니다.
책은 다르다. 저마다의 속도로 책을 읽고, 잠시 멈추며 책의 내용을 곱씹기도 한다. 책은 숙고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쫓기듯,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고, 성장할 수 있다.
눈부신 속도로 세상은 변해간다. 그 흐름에 쫓기듯 무턱대고 뒤만 쫓다 보면 결국 ‘나는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맹목적으로 그 변화 속도에 내 몸을 맡기기보다 변화를 관찰하고 자신만의 삶의 속도로 세상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믿는다.
글쓴이: 황경재. '잘 살기' 위해 늘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횡성 성남초에서 근무 중이다.
매거진 여름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여름
1. 시론
2. 특집 : 학교 공동체를 살리는 교권
3. 학교이야기
4. 인터뷰_최이선 건축사
5. 책 이야기
6. 스케치_강원교육 평가와 전망 토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