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교공동체를 살리는 교권
나연찬 변호사
권위주의는 문제지만, 꼭 필요한 권위도 있다
군사정권을 거치며 권위주의가 온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권위가 점차 사라져가는 시대가 되었지요. 대통령의 권위, 국가와 공권력의 권위, 가장과 부모로서의 권위....... 스승의 권위도 그 흐름을 비켜가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필자는 민변 소속 변호사로서 인권 옹호를 사명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권위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바로 성직자의 권위, 그리고 선생님의 권위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길러내는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교내에서 교사 보직 중 ‘학교폭력 담당’은 선생님들이 가장 기피하는 보직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그럴 법합니다.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시대에 그 자리는 ‘가해학생 및 학부모’와 ‘피해학생 및 학부모’ 사이에 끼어 양쪽의 원성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만 하는 자리이니까요. 그리고 그 부담과 고통은 아무도 맞들어주지 않습니다. 학교도, 교육청도.
꼭 학교폭력 담당교사가 아니라도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학급에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과 학부모 민원에서 온전히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필자는 강원도교육청에서 오랜 기간 교육행정심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육행정심판으로 올라오는 사건의 70~80% 정도는 바로 ‘학교폭력처분 취소’ 청구입니다. 그 중에는 반드시 학교폭력 사안으로 다루어져야 옳은 것들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도 드물지 않게 보입니다. 홍갑동 학생이 박을동 학생에게 ‘기억상실증에 걸렸으세요 이 자식아’라고 말한 것이 학교폭력에 해당한다며 서면사과 처분을 내리기도 합니다. 홍갑동 보호자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정도가 어떻게 학교폭력이냐며 극한으로 다투고, 반대로 박을동 보호자는 학교폭력 조치가 너무 가볍다며 격렬히 항의합니다.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검토의견서를 쓰노라면, ‘아 이런 일까지도 법의 잣대를 들이대게 만드는 우리네 시스템이 과연 옳은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법대로... 윤리와 규범은 어디에?
과거에는 어쩌면 선생님에게 손바닥 한 대 맞거나, 엎드려뻗쳐를 하거나, 복도에 나가 서 있다 들어오면 되었을 일이 지금은 쌍방의 극한대립의 법정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작은 사안조차 모두 법으로 다루는 문화’가 매우 큰 원인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필자도 법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법이 인간관계의 모든 일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결코 건강한 사회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과거에 비해 체벌이 금지되고 폭력이 줄었다고는 하나 실상 우리는 과거의 방식보다 더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학생과 교사 모두를 옭아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한발 더 들어가, 그처럼 모든 일에 법이 개입하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요. 아마도 ‘신뢰의 상실’ 때문은 아닐까요. 학생은 교사를, 교사는 학부모를 자칫 업무 상대방이자 대립당사자로만 바라보기 십상입니다. 임용 직후 누구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겠다며 열정을 보였던 선생님도, 선의와 적극성이 오히려 악결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몇 번 하고나면 회의를 느끼고 결국 다른 사람이 하던 대로 ‘직업’ 교사에 머무르게 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스런 결과겠지요.
제도적 보호는 기본, 그것을 넘어선 신뢰가 필요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사건을 바라보며, 그간 교사들이 학생 생활지도와 학부모 민원에 얼마나 고통을 받아왔는지 뼈아프게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이 ‘학생 인권만 강조하니 교권이 추락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그 방향은 결코 옳은 방향이 아닙니다. 이는 상대방을 더욱 대립당사자로만 대상화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대립당사자로 대상화하면 상대방 역시 나를 더욱 대상화하고,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악성민원과 아동학대법 남용으로부터 교사들을 보호할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원단체가 제안한 악성 민원인 교육감 고발제도 도입, 학교 민원창구 일원화, 아동학대법 남용에 대응할 교육청 전담조직과 인력 배치 등은 교사들이 과도하거나 부당한 ‘법과 절차’로 고통 받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이번 사건으로 공론화된 ‘교권침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아닐 것입니다. 제도적 보완과 함께, 교사와 학생, 학부모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함께 노력할 때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해나가는 것이 '모두가 특별한 교육'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매거진 여름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여름
1. 시론
2. 특집 : 학교 공동체를 살리는 교권
3. 학교이야기
4. 인터뷰_최이선 건축사
5. 책 이야기
6. 스케치_강원교육 평가와 전망 토론회